시설 뜯어내고 문닫고, 방치하고…'세금낭비'로 얼룩진 방어진 [현장에서]

김윤호 2023. 4. 1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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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대교 아래 청소차량 주차장에 쌓아둔 '슬도피아' 관련 시설물. 김윤호 기자

울산 방어진은 잘 알려진 해양 관광지다. 푸른 바다에 항구 곳곳에 그럴듯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하지만 이곳은 고장 나 방치한 체험시설, 슬그머니 뜯어낸 관광시설, 휴관한 전시시설 등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수십억원씩 들여 만든 시설이 제 역할을 못 하자 세금 낭비 논란이 일고 있다.

방어진 박물관은 휴관 중

울산 방어진 박물관 앞에 붙은 임시휴관 현수막. 김윤호 기자
울산 방어진 박물관 내부 모습. 김윤호 기자

지난 13일 울산시 동구 방어진 적산가옥 골목 한편에 있는 방어진 박물관. 박물관 입구는 굳게 잠겨 있고, '내부 보수공사로 인한 임시휴관'이라는 안내문이 써 붙어 있었다. 박물관은 울산시 동구가 2021년 4월 14억원을 들여 지었다. 내부에는 방어진 과거 사진, 일본식 집 구조, 오래된 지도 등을 전시했다. 볼거리가 없는 사실상 이름만 박물관으로, 결국 최근 2년 만에 휴관에 들어갔다.

박물관 방문객은 문을 닫기 전인 지난 3월 하루 평균 15명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월평균 방문객은 300명 수준이었다. 울산시 동구 관계자는 "박물관 대신 다른 이름으로 바꾸기 위해 공모를 진행했고, 2000여만원을 들여 휴관하고 리모델링 중이다”고 전했다.

고장투성이 소리체험관

소리체험관 2층에 있는 고장난 시설. 김윤호 기자
울산 소리체험관 앞 조형물. 김윤호 기자

방어진항 인근 소리체험관은 고장이 문제다. 이곳은 울산 동구가 33억7000만원을 들여 2016년 지상 2층(연면적 654㎡) 규모로 지었다. 체험관은 운영중이지만, 제대로 작동되는 시설이 거의 없다. 고래 VR(증강현실) 상영관은 고장이 났고, 디지털 고래 체험장치도 작동 불가능 상태였다. 체험관 메인 콘텐트인 슬도(瑟島) 음향기도 제대로 작동되는 게 손에 꼽을 정도였다.

슬도는 방어진 항으로 들어오는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바위섬이다. '갯바람과 파도가 바위에 부딪칠 때 거문고 소리가 난다'고 해 슬도라 불린다. 오래된 축음기와 레코드 같은 일부 오디오 전시시설만 관광객 눈길을 잠시 붙잡는 수준이었다. 체험관 관계자는 "시설 고장 등으로 최근 관광객을 유입할만한 요인이 사라졌다. 그래서 이달 말이나 5월 초에 새로 공사를 해서 전체적인 콘텐트 등 시설을 개선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흔적도 없는 슬도피아

울산 방어진 소리체험관 입구. 김윤호 기자

아예 시설을 뜯어낸 것도 있다. 울산대교 아래 청소차 주차장에 가면 그 흔적을 볼 수 있는 해양체험장 '슬도피아'다. 슬도피아는 2020년 10억원을 들여 방어진 슬도 입구 방파제 안에 6000여㎡ 규모로 조성한 체험 시설이다. 바지선 같은 물에 뜨는 부유 시설로 바다에 공간을 설치하고, 바다 식물 관찰이나 스노클링 등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체험장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슬도피아는 17 일만 문을 닫았다. 슬도피아에 있던 부유 시설은 그렇게 지난해까지 하나둘 뜯겨 울산대교 아래 청소차 주차장 한편에 쌓아두게 됐다.

울산대교 아래 청소차량 주차장에 쌓아둔 '슬도피아' 관련 시설물. 김윤호 기자

현장에서 만난 한 청소업체 관계자는 "슬도피아 부유 시설이 쌓여 있어 청소 차 주차 공간이 부족하다. 녹이 다 슬어 쓰지도 못하는 시설이다"고 아쉬워했다. 해당 지자체엔 슬도피아 관련 부서도, 담당자도 사라진 상태다. 북구 한 관계자는 "부유 시설을 추후 재활용할 계획은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아름다운 방어진'이 밑천
이렇게 특정 장소에 있는 여러 시설이 동시 다발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것은 흔치 않은 것 같다. 이렇게 된 데는 일단 짓고 보자는 식으로 건설한 뒤 방치하거나 처음부터 콘텐트가 빈약한데 무리하게 추진한 게 요인일 수 있다. 지금이라도 시설을 점검하고 관련 콘텐트를 치열하게 고민한다면 그나마 세금낭비를 줄이고 '관광 방어진'명성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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