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일상을 인생을 바쳐 할 만한가?!

박순영 2023. 4. 1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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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피아노 리사이틀 'Masterpiece'

[박순영 기자]

 일리야 라쉬코프스키가 류재준 작곡가의 'Lament'를 열정적으로 연주하고 있다.
ⓒ 오푸스
음악, 과연 일상과 인생을 바칠 만한가?!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피아노 리사이틀 'Masterpiece'가 지난 4월 12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렸다. 이번 공연은 한마디로 음악의 힘과 위로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연주회였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31번>의 사색적이고 집중 어린 연주로 포문을 열었다. 이어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32번>은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이니만큼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는데, 듣다보니 "난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다"라고 끝없이 외치는 것만 같았다. 또한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강한 타건과 속주하는 템포로 인해 베토벤을 후반부 프로그램인 리스트와도 기교적으로 연결시켜 주었다.

일리야 라쉬코프스키가 연주하는 낭만이나 현대곡을 주로 보았는데, 그의 베토벤 후기소나타 연주는 베토벤을 참 베토벤답게 해주었다. 격렬히 투쟁한 후 내면의 고요와 안정을 인정미있게 드러내는 독신남 베토벤. 조카 카를을 키우며 인생을 이겨낸 말년의 음악가를 느끼게 하는 연주였다. 성부진행에서 외성과 내성이 각자의 역할로 뚜렷하게 색채를 주면서 조화롭게 채워지는 그의 연주가 감탄스럽고 빛깔이 참 좋았기에, 곡이 끝나자 관객들은 열화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2부 첫곡은 류재준의 <애가(Lament)>였다. 인터미션 때 마침 프로그램지를 읽었다. 세계 역사와 오늘날 도처의 전쟁에 대해 탄식을 넘어 "흩어지지 않고 연대하며" 행동으로 애도를 표현하고자 했다는 작곡가의 의지가 이날 연주자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연주속도와 볼륨을 통해 더욱 잘 드러났다.

눈물이 떨어지듯, 혹은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듯 하는 4음 주제는 처음에는 천천히, 그리고 점차로 화음이 입혀지고, 물결을 동반하며 요동치고 굽이친다. 깊은 슬픔은 그렇지만 주저앉지 않고, 나락으로 추락하지 않으며 결국은 날아올라 승리한다. 종결부에 왼손 옥타브 하행하는 연타를 보며, 작곡가도 연주자도 저걸 위해 일상을 일생을 바치지 않는가, 과연 내가 모든 일상을 떨치고 음악회에 올 이유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가(Lament)'연주 후 류재준 작곡가가 일리야라쉬코프스키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 박순영
 
이 정도만 해도 나의 음악회 행차는 충분히 복 받았다. 그런데 이날의 파이널인 리스트 <소나타 B 단조>는 그간의 내 일상의 시름을 단숨에 떨쳐버리고 새로운 에너지를 가져다 주었다.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는 이 곡의 처음에는 앞 류재준 '애가' 마지막 부분의 감흥이 남아있는 듯한 터치였지만, 이내 리스트의 음들을 짚으며 몰입되었다.

흔히 연주비평에서 '논리적이고도 설득력 있는 연주'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날 제대로 다시 느꼈다. 작곡가가 써 놓은 주제의 연결 모습을 연주자가 "난 이래서 이래. 너도 그렇지?"라고 논거를 딱딱 맞춰 전달해준다. Lento assai 매우 느린부분은 부드럽고, Allegro energico 빠르고 힘찬 부분은 우렁차게 돌진한다. 주제가 밀집도를 가지고 연결되어 있는 스트레토(Stretto) 부분의 연주도 아주 좋았다.

설득의 최고 지점에서 E 장조로 전환되며 평안해질 때는, 마치 어릴적 손목을 막았다 빙글돌리며 풀면 찌릿 전기가 왔던 것처럼, 꽉 조였다 사악 풀어지는 안도감이 들었다. 또한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에 의해 작곡가 리스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궁금해지고, 피아노 음악에서의 트릴과 아르페지오 용법을 다시 알게 되는 그런 강렬한 연주였다. 

이번 공연을 보며 생각했다. 클래식 음악을 감상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음악을 들으며 나이를 먹고 세월도 흐른다. 음의 진동수가 내게로 통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주파수를 가지는데 나는 무엇을 택할 것인가. 음악은 우리 신경과 세포를 제대로 된 방법으로 흥분시키고, 안정시키고 재배열한다. 음악이 내가 되고 내가 음악이 되고, 이번 공연 제목처럼 걸작(Masterpiece)를 듣는 내가 걸작이 된다.

쇼팽 녹턴과 바흐-부조니 코랄 프렐루드 이 두 곡의 앵콜까지 이렇게 선물받으니, 음악은 일상을, 일생을 바쳐 참으로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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