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다 지치는 토마토, 나눠주기 바쁜 상추... 무얼 심어야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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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미란(생태환경교육협동조합 숲과들)]
▲ 과일보다 꽃이 더 아름다운 과실수 |
ⓒ 용인시민신문 |
날이 풀리니 슬슬 바빠지기 시작한다. 마당에선 드문드문 올라오고 있는 잔디 싹 사이로 보란 듯 민들레가 이미 꽃봉오리를 내밀고 있다.
평소 같으면 바로 내쳐졌겠지만 따뜻한 햇볕을 쬐고 있노라니 이마저도 정겨워 보인다. 솔솔 부는 봄바람에 이웃의 밭에 뿌려진 거름 냄새가 요란하니 덩달아 올해에는 무얼 심을까 고민이 들었다.
매번 그러하듯 고구마, 옥수수, 상추, 고추, 토마토, 대파 등을 으레 심을 것인지 아니면 심고 싶은 다른 것이 있는지 가족들에게 물어봤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것저것 키워보자 요구했던 아이들은 훌쩍 커버린 탓인지 관심 밖이고, 남편은 매번 힘들게 본전도 뽑지 못할 농사를 짓지 말고 복숭아와 다래, 살구, 오디 등을 심고 남은 곳엔 수박과 딸기를 심자고 했다.
평소 심던 것보다 손이 더 많이 가는 것들이란 걸 아는지 모르는지, 작년에 좋아하는 복숭아와 수박을 맘껏 먹지 못한 것이 내심 아쉬웠던 듯 죄다 과실류만 나열했다.
텃밭 또한 마당(정원)의 일부라고 여기며 미적인 모습까지 고려하고자 하는데 남편이 심자고 나열하는 과실류로 둘러싸인 텃밭 모습을 상상하니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텃밭에 심고 다 먹지 못하는 것들도 만만찮게 많다.
▲ 들에는 농사를 위해 농민들이 뿌려놓은 거름 냄새가 가득하다. |
ⓒ 용인시민신문 |
지금은 사전에 의사를 물어보고 원하는 사람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물론 반대로 우리집 대문 앞에 누군지 모를 이웃이 놓고 간 상추를 보곤 즐거우면서도 난감해했던 적도 있다.
작년에 수확했던 팥으론 칼국수와 죽을 몇 번 쑤어 먹고도 많이 남았고, 받겠다는 사람도 없어 앙금으로 만들어 빵에 넣어 먹으려 마음먹었지만, 손이 너무 많이 가는 탓에 아직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집안 어딘가에 모셔져 있다.
땅콩은 수확 후 껍질을 까지 않은 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어 가족이 모두 모여 땅콩 껍질을 까다가 지치기도 했다. 고추는 손도 많이 가고 농약값으로 소진하는 비용이 더 많이 들어서, 감자는 가족들이 먹지 않아, 우엉은 캐기 힘들어서 등등 농사짓지 않을 작물 리스트 또한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같은 종류의 농작물들이 한창 자라고 있을 때 보여주는 풍성함은 그 열매나 수확물보다 더 큰 만족감을 주기에 다시 땅콩을 심고, 여러 개의 옥수수와 상추, 토마토 모종을 매년 심게 된다.
날이 더 따뜻해지면 동네 오일장을 기다리며 사고자 계획했던 모종에 더해 전혀 계획에 없던 모종까지 충동구매를 할 것이다. 심어야 할 나름의 이유를 나열하면서 말이다.
우렁각시처럼 집 앞에 놓인 농작물에 난감했지만, 한편으로 넘치는 정에 미소 짓던 지난 여름을 기억한다. 아마 올해 나도 누군가의 우렁각시가 되어줄 생각에 마음이 살짝 설렌다.
복숭아 열매보단 봄에 피는 복숭아꽃이 보고 싶고, 다래 열매보단 한여름에 등나무처럼 넝쿨이 주는 그늘에 앉아 여유를 즐기고 싶고, 넓게 퍼져 있는 수박 줄기와 잎을 보며 넉넉하니 부자가 된 기분을 즐기고 싶단 생각이 든다. 이웃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열매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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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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