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 대학 강의실 앞에 붙어 있는 작은 안내문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2023. 4. 1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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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차별과 성희롱 금지, 그저 말 뿐일지라도

[김찬호 기자]

뉴델리 역 뒤편 파하르간즈 골목에는 여행자들의 숙소가 모여 있습니다. 델리에 도착한 뒤 숙소에 짐을 풀고, 골목을 거닐다가 인상깊은 장면을 봤습니다. 인도 전통 복식을 입은 두 여성이,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를 몰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 없는 풍경입니다. 거리에는 오토바이가 아주 많고, 그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사람이 여성이라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지요. 여성의 운전을 규제하는 제도 같은 게 있을 리도 없고요.

그런데 그 장면은 왠지 눈에 띄었습니다. 내가 이제까지 인도에서,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여성을 본 적이 있던가? 물론 그저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한 달의 여행에서는 본 적이 없습니다. 문득 주변을 돌아봤습니다. 수많은 오토릭샤가 돌아다니지만, 그 많은 차 중에 여성이 운전하고 있는 차는 없습니다.
 
 뉴델리 역
ⓒ Widerstand
말할 필요도 없이 인도는 대도시입니다. 인도의 수도이면서, 뭄바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인구를 보유한 도시죠. 많은 대도시가 그렇듯 델리 역시 이주민의 땅입니다. 천만이 넘는 델리의 인구 가운데, 대대로 델리에서 거주한 인구는 많지 않을 테지요.
특히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단 과정에서 고향을 잃고 넘어온 이들은 많이들 수도인 델리에 정착했습니다. 출신도 지역도 다른 사람들이 모두 델리에 모였습니다. 꼭 이런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었더라도, 도시의 경제적 성장은 각지에서 이주민을 흡수했습니다.

카스트의 나라인 인도에서, 이방인들이 모이는 도시는 누습과 인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땅이었을 것입니다. 브라만도 불가촉천민도 같은 가게에서 음식을 사고, 같은 지하철에 서로 어깨를 부대끼며 타야 했을 테니까요.

물론 실질적이고 경제적인 차별이 완전히 타파될 순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복잡한 도시, 서로의 얼굴을 모르는 땅은 누군가에게는 분명 해방구였겠죠.
 
 델리대학교
ⓒ Widerstand
델리에 머무는 며칠 동안, 시간을 내 지하철을 타고 델리 대학교에 방문해 보았습니다. 이번 여행을 하는 동안, 캠퍼스와 학식 탐방을 자주 즐겼습니다. 델리 대학교에 방문한 것도, 그저 캠퍼스와 학생들을 한 번 구경해 보자는 가벼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캠퍼스를 돌아다니다, 어느 강의실 앞에 붙어 있는 작은 안내문을 보았습니다. 차별 금지, 성희롱 금지. 빛도 바래고 지저분해져, 아마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그 안내문을 저는 왠지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저 말 뿐일지도 모릅니다. 강의실 안에서도 어떠한 형태로든 차별과 폭력은 존재할 것입니다. 카스트에 따른 차별도, 성과 그 지항성에 대한 차별도 완전히 사라질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차별도 폭력도 여기서는 불가능하다고 선언할 수 있다는 것의 의미가 있겠죠. 그저 말 뿐일지라도 말이죠.
 
 델리대학교의 차별금지 표지
ⓒ Widerstand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캠퍼스 탐방을 빼놓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합니다. 캠퍼스 안에서는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거든요. 외국인이라도, 말이 통하지 않아도, 이곳은 왠지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안전할 것 같다는 감각이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진실인지를 탐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에서는 왠지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아무 근거는 없습니다. 캠퍼스 안에도 폭력과 차별은 상존합니다. 차별도 성희롱도 금지한다는 델리대의 표지판은, 오히려 차별과 폭력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차별과 폭력이 비윤리적인 일임을 선언할 수 있는 공간. 구성원들이 그 명제에, 그저 말뿐이라도 동의할 수 있는 공간.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공간마저 참 희소해지고 말았으니까요.
 
 마하트마 간디의 화장터, 라즈 가트
ⓒ Widerstand
인도는 헌법을 통해 카스트에 따른 공식적인 차별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차별을 금지할 뿐 아니라, 차별받는 집단에 대한 우대 정책을 헌법으로 규정하고 있죠. 각 주별로 '지정 카스트(Scheduled Caste)'와 '지정 부족(Scheduled Tribe)'을 설정해, 이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설계하도록 강제한 것입니다. 인도 헌법 46조는 이렇게 씁니다.
"국가는 약자, 특히 지정 카스트와 지정 부족의 교육과 경제적 이익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이를 증진해야 한다. 국가는 사회적 불평등과 모든 종류의 착취로부터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교육이나 정치제도 분야에서 관련 정책은 실제로 실시되고 있습니다. 대학 입시 정원의 일부 비율을 지정 카스트와 지정 부족에게 할당하는 것이죠.

인도 연방하원의원 543석 가운데 131석은 지정 카스트와 지정 부족 출신만이 당선될 수 있도록 할당되어 있습니다. 2011년 인구조사에서는 약 25%의 인구가 이 지정 카스트와 지정 부족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니, 인구 규모와 비례하는 수치죠.

교육 제도에서도 그렇습니다. 연방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는 고등교육기관은 정원의 최소 22.5%를 지정 카스트와 지정 부족에게 할당해야 합니다. 델리 대학교 역시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죠.

주에 따라서는 정부 기관의 직책에 할당제를 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정 카스트나 지정 부족이 아니더라도, 여성에 대한 할당제를 실시하는 경우도 많죠. 일부 주에서는 소수 종교에 대한 할당제를 실시하기도 합니다.
 
 라즈 가트 인근의 공원
ⓒ Widerstand
이런 할당 제도는 영국 지배 시절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1935년 영국 의회에서 인도 정부법이 통과되면서, 특정 카스트에 대한 차별 금지와 우대 정책을 처음 명문화했습니다. 
참 역설적인 일이었습니다. 영국의 지배는 인도를 착취하는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였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일률적인 국민을 만들려는 이 '근대적' 시도가 차별로부터의 해방이었습니다.
인도의 불가촉천민에게, 영국의 지배는 꼭 나쁘기만 한 것이었을까요? 식민지배와 제국주의를 옹호하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역사란 그렇게 단칼에 선악을 나눌 수 없는 역설을 안고 흘러가기 마련이지요.
 
 뉴델리, 코넛 플레이스
ⓒ Widerstand
델리라는 도시도 그렇습니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언급했듯 델리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단 과정에서 많은 이주민을 흡수했습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단은 많은 사람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이었습니다. 종교를 기반으로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단되면서, 최대 1500만 명에 달하는 이주민이 발생했습니다. 그 와중에 이주민과 소수 종교에 대해 막대한 폭력이 발생했죠.
델리는 그런 폭력적인 분단의 결과 많은 사람이 섞인 땅이었습니다. 1951년에는 델리 인구의 30%가 난민이었다는 통계도 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서로를 모르게 된 도시가, 어떤 이방인에게는 해방구가 되었습니다. 그런 역사의 역설입니다. 
 
 바하이 사원
ⓒ Widerstand
델리 일정의 마지막 날, 저는 '연꽃 사원'으로도 알려진 바하이 사원으로 향했습니다. 이 사원은 '바하이교'라는 종교의 사원입니다. 바하이교는 바하 울라(Baha Ullah)라는 선지자가 창시한 종교입니다. 바하이교는 이란에서 만들어졌지만, 인도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죠. 
바하이교는 그 신앙 체계가 이슬람교에 기반하고 있지만, 종교와 국가를 뛰어넘은 통합을 무엇보다 중시합니다. 부처도, 예수도, 무함마드도, 공자까지도 같은 신의 뜻을 알리는 것이었다고 말하죠. 그래서 어떤 방식이든, 어떤 이름이든, 어떤 형태든 종교는 서로를 존중하고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연꽃 모양으로 만들어진 이 사원 역시 모든 종교인을 환영합니다. 자신이 믿는 신에게 자신의 방식으로 기도를 드리면 됩니다. 그저 아무 말도 없이 침묵해야 한다는, 단 한 가지의 규칙만이 있을 뿐입니다.
 
 바하이 사원
ⓒ Widerstand
델리 대학교와 바하이 사원이 역사의 모순을 끌어안는 방식은 참 다릅니다. 학교는 지성과 제도로 역사의 모순을 끊어내고자 합니다. 사원은 신앙과 신념으로 역사의 모순을 치유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두 공간에서 제가 느낌 감정은 비슷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신념과 종교를 차별하지 않는 공간. 내 자리 옆에 누가 앉더라도, 종교도 계급도 성과 그 지향성도 묻지 않아도 되는 공간. 그런 안전한 공간.

차별 없는 지성과 차별 없는 신앙을 말하는 두 공간은 대조적이지만, 그들이 목표하는 세상은 아주 닮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이방인인 도시는 오늘도 복잡하고 번잡합니다. 하지만 그 도시에서만 만들어낼 수 있는 해방의 힘이 있었습니다. 그 해방과 진보를 위해 학교의 방식이 옳은지, 사원의 방식이 옳은지 저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도시의 곳곳에는 그 해방과 진보를 위해 노력한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저 말 뿐일지라도, 저는 그들이 만들 수 있는 델리와 인도의 모습을 여전히 희망으로 붙잡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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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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