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 대학 강의실 앞에 붙어 있는 작은 안내문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뉴델리 역 뒤편 파하르간즈 골목에는 여행자들의 숙소가 모여 있습니다. 델리에 도착한 뒤 숙소에 짐을 풀고, 골목을 거닐다가 인상깊은 장면을 봤습니다. 인도 전통 복식을 입은 두 여성이,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를 몰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 없는 풍경입니다. 거리에는 오토바이가 아주 많고, 그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사람이 여성이라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지요. 여성의 운전을 규제하는 제도 같은 게 있을 리도 없고요.
▲ 뉴델리 역 |
ⓒ Widerstand |
특히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단 과정에서 고향을 잃고 넘어온 이들은 많이들 수도인 델리에 정착했습니다. 출신도 지역도 다른 사람들이 모두 델리에 모였습니다. 꼭 이런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었더라도, 도시의 경제적 성장은 각지에서 이주민을 흡수했습니다.
카스트의 나라인 인도에서, 이방인들이 모이는 도시는 누습과 인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땅이었을 것입니다. 브라만도 불가촉천민도 같은 가게에서 음식을 사고, 같은 지하철에 서로 어깨를 부대끼며 타야 했을 테니까요.
▲ 델리대학교 |
ⓒ Widerstand |
그렇게 캠퍼스를 돌아다니다, 어느 강의실 앞에 붙어 있는 작은 안내문을 보았습니다. 차별 금지, 성희롱 금지. 빛도 바래고 지저분해져, 아마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그 안내문을 저는 왠지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 델리대학교의 차별금지 표지 |
ⓒ Widerstand |
물론 아무 근거는 없습니다. 캠퍼스 안에도 폭력과 차별은 상존합니다. 차별도 성희롱도 금지한다는 델리대의 표지판은, 오히려 차별과 폭력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차별과 폭력이 비윤리적인 일임을 선언할 수 있는 공간. 구성원들이 그 명제에, 그저 말뿐이라도 동의할 수 있는 공간.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공간마저 참 희소해지고 말았으니까요.
▲ 마하트마 간디의 화장터, 라즈 가트 |
ⓒ Widerstand |
"국가는 약자, 특히 지정 카스트와 지정 부족의 교육과 경제적 이익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이를 증진해야 한다. 국가는 사회적 불평등과 모든 종류의 착취로부터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교육이나 정치제도 분야에서 관련 정책은 실제로 실시되고 있습니다. 대학 입시 정원의 일부 비율을 지정 카스트와 지정 부족에게 할당하는 것이죠.
인도 연방하원의원 543석 가운데 131석은 지정 카스트와 지정 부족 출신만이 당선될 수 있도록 할당되어 있습니다. 2011년 인구조사에서는 약 25%의 인구가 이 지정 카스트와 지정 부족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니, 인구 규모와 비례하는 수치죠.
교육 제도에서도 그렇습니다. 연방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는 고등교육기관은 정원의 최소 22.5%를 지정 카스트와 지정 부족에게 할당해야 합니다. 델리 대학교 역시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죠.
▲ 라즈 가트 인근의 공원 |
ⓒ Widerstand |
참 역설적인 일이었습니다. 영국의 지배는 인도를 착취하는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였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일률적인 국민을 만들려는 이 '근대적' 시도가 차별로부터의 해방이었습니다.
▲ 뉴델리, 코넛 플레이스 |
ⓒ Widerstand |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단은 많은 사람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이었습니다. 종교를 기반으로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단되면서, 최대 1500만 명에 달하는 이주민이 발생했습니다. 그 와중에 이주민과 소수 종교에 대해 막대한 폭력이 발생했죠.
▲ 바하이 사원 |
ⓒ Widerstand |
바하이교는 그 신앙 체계가 이슬람교에 기반하고 있지만, 종교와 국가를 뛰어넘은 통합을 무엇보다 중시합니다. 부처도, 예수도, 무함마드도, 공자까지도 같은 신의 뜻을 알리는 것이었다고 말하죠. 그래서 어떤 방식이든, 어떤 이름이든, 어떤 형태든 종교는 서로를 존중하고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바하이 사원 |
ⓒ Widerstand |
하지만 두 공간에서 제가 느낌 감정은 비슷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신념과 종교를 차별하지 않는 공간. 내 자리 옆에 누가 앉더라도, 종교도 계급도 성과 그 지향성도 묻지 않아도 되는 공간. 그런 안전한 공간.
차별 없는 지성과 차별 없는 신앙을 말하는 두 공간은 대조적이지만, 그들이 목표하는 세상은 아주 닮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이방인인 도시는 오늘도 복잡하고 번잡합니다. 하지만 그 도시에서만 만들어낼 수 있는 해방의 힘이 있었습니다. 그 해방과 진보를 위해 학교의 방식이 옳은지, 사원의 방식이 옳은지 저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도시의 곳곳에는 그 해방과 진보를 위해 노력한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저 말 뿐일지라도, 저는 그들이 만들 수 있는 델리와 인도의 모습을 여전히 희망으로 붙잡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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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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