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 열전]②금융권 '최고참'…허윤 하나금융지주 사외이사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 금융사 사외이사 중에서도 최고참에 속한다. 2015년부터 2023년까지 9년을 내리 하나금융에서 사외이사를 맡아왔다.
지난 3월, 하나금융지주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과 세계 최대 의결권자문사 ISS는 허 교수를 비롯해 기존 사외이사들의 유임을 반대한 바 있다. 이들이 문제 있는 경영진에 '면죄부'를 줬다는 것이 이유였다. "라임·DLF 사모펀드 불완전 판매에 대한 책임으로 법률적 우려가 있는 경영진을 '집단적 무대응(collective inaction)'으로 용인한 게 잘못됐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국민연금과 ISS의 반대의견은 허 교수 재연임에 걸림돌이 되진 않았다. 그는 3월 24일 주주총회에서 하나금융지주 사외이사로 재선임됐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법에서는 최대 9년까지 사외이사를 할 수 있다. 올해로 허 교수는 법정 최고임기를 채우게 됐다.
박근혜 정부 싱크탱크에서 활동
허 교수와 하나금융과의 인연은 지난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허 교수는 그해 3월 외환은행 사외이사로 처음 이름을 올렸다. 같은 해 9월 하나은행이 외환은행을 합병하며 하나은행 사외이사로 명함이 바뀌었다. 은행에서 3년 동안 사외이사를 지내다가 지주로 한 번 더 이동한 건 2018년이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김정태 전(前) 회장 체제에서 7년, 현재 함영주 회장 체제에서 2년을 사외이사로 머문 셈"이라며 "허 교수가 지주로 옮겨온 다음인 2021년에 김 전 회장은 4연임까지 성공했는데 당시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허 교수를 비롯한 사외이사들로 꾸려졌다"고 했다. 허 교수의 고향은 부산으로, 김 전 회장과 고향이 같다. 부산남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 경제학과를 거쳐 조지워싱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땄다.
서강대 국제대학원 원장을 지내며 명성을 높인 허 교수는 박근혜 정부에서 대외활동을 활발히 했다. 하나은행 사외이사로 합류하던 때인 2015년부터 2년 동안 박근혜 정부의 싱크탱크인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을 맡았다. 그즈음 산업통상자원부 자체 평가위원회 위원도 했다. 2016년에는 국책연구기관들을 관장하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이사를 지냈다. 같은 해 유일호 전(前)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도한 국제금융발전심의회 1기 위원으로 선발됐다.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도 기획재정부 정책성과평가위원회 위원, 외교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등을 맡아 나랏일을 도왔다.
저명한 통상전문가, 젊었을 땐 '소설 쓰는 경제학자'
허 교수는 저명한 통상전문가이다. 세부 전공도 통상정책·경제 안보·FTA(자유무역협정) 전략이다. 최근엔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관심을 쏟았다. 그가 2021년에 낸 책인 '역사의 시작'을 보면 알 수 있다. 모두가 미국과 중국 간 싸움의 원인 제공자로 트럼프를 지목할 때 허 교수는 중국이라고 판단했다. "중국은 미국 기업의 중국 내 법인설립 시 기술이전을 요구하고 데이터 현지화를 강제했다. 중국은 주로 미국 기업 인수와 합작투자로 강제적 기술이전을 도모했다. 미국의 기술기업 인수는 중국 정부와 공산당이 개입된 것으로 미국은 판단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불법적인 기술침탈이 미국의 안보와 재산권을 위협한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미·중 무역 전쟁의 원인 제공자는 바로 중국이다."
허 교수는 미·중 무역전쟁이 종식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봤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다자주의 시스템의 복원이 절실하다. 혼수상태에 빠진 세계무역기구(WTO)를 대체할 메가 FTA 활성화에 앞장설 때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CP)은 미국의 무역전쟁과 보호주의에 맞선 자유무역 전쟁의 '국지적 승리'로 해석된다"는 게 책에서 내놓은 허 교수의 답이었다. 미국과 중국 간 대리싸움이 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대만 침공 위협 속에서 여전히 새겨들어야 할 우리나라의 생존 전략이다.
언론을 통해 전달된 소신 발언도 눈에 띈다. 지난 2020년 7월 WTO가 "한국인 후쿠시마현 등 일본 8개 현 수산물을 수입 금지한 조치는 WTO 협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판결을 했을 때다. 당시 허 교수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일본 정부가 과학적으로 수산물 안전성을 충분히 입증했기 때문에 이번 판정은 의외"라며 "이번 판정으로 일본산 수산물 수입이 계속 금지되면 한일 관계 경색될 우려가 있다"며 외교 통상의 중요성에 무게를 실었다.
이처럼 통상 전문가이자 경제학자라는 것이 장점이라는 게 동료 사외이사들의 평가다. 하나금융지주의 한 사외이사는 "허 교수는 국제적인 이슈에 대한 식견과 금융지식까지 겸비하고 있어 여러 방면에서 풍부한 의견을 제시한다"고 소개했다. 젊은 시절엔 '소설 쓰는 경제학자'이기도 했다. 1990년대에 통일된 한반도를 배경으로 국내 정치 상황과 국제적인 역학관계를 그린 내용을 담은 '울 밑에선 봉선화야'라는 장편소설을 낸 바 있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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