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도청 파문…韓 우크라 무기 지원 문제 수면 위로
폴란드총리 "韓 우크라 포탄지원에 美개입해야"
우크라 무기 지원시 러 반발 예상…韓 '곤혹'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 대통령실을 도청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기밀 문건에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논의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개입해 한국이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도청 의혹 파문이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린 모습이다.
12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보다 훨씬 더 많은 포탄을 보유하고, 매달 전장에서 훨씬 더 많은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며 "한국이 포탄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어 (우크라이나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거래(지원)를 성사시키기 위해선 중국이나 러시아의 공격적인 대응에 맞서 미국이 지원을 제공할 것이란 확신을 한국에 주기 위해 바이든 대통령의 보다 직접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폴란드는 러시아를 주적으로 삼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자 우크라이나와 약 600㎞가량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토 최전방 국가다. 폴란드는 지정학적 위치 탓에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공이 잦았는데, 특히 러시아의 침략과 간섭에 여러 차례 시달렸다.
폴란드 입장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자국이 우크라이나 다음 침공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이렇다 보니 폴란드는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는데, 최근엔 나토 회원국 중 처음으로 자국의 'MIG(미그)-29' 전투기 14대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지난해 7월에는 20조원 규모의 한국 무기를 사들이기도 했다. 이는 폴란드 2022년 국방비(145억달러, 약 19조원) 규모 이상의 수준이다.
폴란드는 전쟁 장기화에 따른 우크라이나의 탄약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기도 했다. 유럽연합(EU)이 역외 국가들에서 포탄 구매 시도를 방안을 내세운 것인데, 대상국으로 한국을 거론했다.
모라비에츠키 총리 지난달 2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 첫날 회의 후에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유럽평화기금(EPF)을 이용해 더 많은 탄약을 가진 국가들에서 공동구매를 추진할 계획인데 유럽에는 그런 나라들이 아주 적다"고 말했다. 이어 "예를 들어 한국은 전문가들의 평가에 따르면 아주 많은 포탄과 로켓탄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로, 우리는 그곳(한국)에서 탄약 구매를 시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위해 바이든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는 모라비에츠키 총리 발언 역시 이같은 주장의 연장선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미국 정보기관의 동맹국 도청 의혹과 함께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문제를 언급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을 계기로 한국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8일 뉴욕타임스는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 의혹을 보도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쓰일 포탄을 미국에 제공할지를 두고 한국 정부 내에서 논의됐다고 전한 바 있다.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경제·인도적 차원의 지원만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 지원을 할 경우 러시아가 반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미 블리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국의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면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파탄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발다이 클럽회의에서 "현재 우리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우리 관계를 파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과의 군사 협력 가능성도 내비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리가 그 분야(군사 분야)에서 북한과 협력을 재개하면 한국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라며 "이 점을 주목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살상 무기를 지원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28일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평화적 지원을 국제사회와 연대해왔다"며 "우리는 러시아를 포함한 세계 모든 나라와 평화적이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살상 무기를 공급한 사실이 없지만 어디까지나 우리 주권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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