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성지도 발길 '뚝'…'석탄돌리기' 희생양 된 강원, 무슨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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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황사·미세먼지 논란될수록 강릉은 분노
강원도 삼척시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최근 강원도에는 대형 석탄화력발전소 3기가 신규 가동을 앞두고 있다. 강릉안인화력 2호기와 삼척화력 1·2호기다. 최근 준공한 강릉안인화력 1호기까지 더하면 총 4호기(4180MW 용량)가 강원도 동해안에 새로 들어서는 것이다. 풀가동시 강원도 전체 인구(153만 여명)의 두 배가 넘는 367만여명에게 1년 동안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용량이지만, 석탄이 만들어낼 전기에 적지 않은 강원도민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석탄발전소로 인해 청정 도시 이미지가 깨질까 우려하는 것이다.
수도권의 황사와 미세먼지 문제가 부각되면 발전소 주변 민심은 더 흉흉해진다. 강릉시 안인면에서 30년 넘게 막국수 식당을 운영해 온 안영주(45)씨는 “요즘 서울에서 미세먼지를 피해서 강릉까지 온다는 데, 여기는 발전소가 생기고 관광객 발길이 뚝 끊겨서 폐업 직전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이 정부의 탈석탄 기조 속에서 진행된다는 점이다. 정부는 탈석탄 정책이 본격화된 2020년부터 대규모 석탄발전소가 밀집한 충남 보령 등에서 석탄화력발전소 6기의 가동을 중단했다. 다른 지역은 석탄발전소를 줄이는데, 강원도는 석탄발전소가 늘어나는 상황인 것이다. 이에 일각에선 강원도가 ‘석탄돌리기’의 희생양이 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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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에서 東으로 ‘석탄 돌리기’
왜 동해안에 석탄발전소 몰렸나
반면, 국내 최대 석탄발전소 밀집 지역인 충남 당진시에서는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를 지으려던 계획이 하나 둘 취소됐다. 2010년대 중반, 수도권의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해지면서다. 서해안 지역 석탄발전소가 수도권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꼽혔다. 2017년 충남 당진의 신규 민간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계획이 취소되고, 발전사인 SK가스는 석탄화력발전소를 지으려던 부지에 태양광 발전소를 지었다. 김정진 당진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수도권에 미세먼지가 강타해 민심이 악화하자 정치권에서 서부권 최대 화력발전소 폐지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강원도는 이미 민간 투자금이 투입된 데다 전력 수요는 늘고 탈원전 정책 등이 추진되면서 석탄발전소를 모두 취소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편서풍의 영향으로 동해안의 대기오염물질이 수도권으로 오기 어렵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계속되는 갈등…석탄 육상운송하려다 사과하기도
강원 동해안이 미세먼지를 피하는 ‘피미’ 여행지로 떠오르면서 주민들과 시민단체의 반대도 거세졌다. 맹방해변의 해안 침식이 발전소 때문이라는 논란이 불거져 2020년에는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항만 공사가 지연되자 삼척블루파워는 올해 초 시험 가동을 위해 동해항에서 석탄을 트럭으로 운송하는 방안을 추진했다가 시민단체의 반발과 삼척시의회의 철회 촉구에 맞딱뜨렸다. 결국, 삼척블루파워 대표는 최근 회사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
홍진원 강릉시민행동 운영위원장은 “엄청난 양의 석탄을 육상운송하려면 25톤 트럭이 1분마다 주택 밀집지역을 뚫고 가야 하기 때문에 정치인들도 기업 편을 들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항만 공사는 내년 여름이나 돼야 끝날 텐데 1년 가까이 준공이 연기되는 상황을 사업자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 90% 수도권 가는데, 주민은 산불 걱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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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사들, “탈석탄·탈원전 기조에 운송로 없이 제품 만든 격”
수조 원을 투입해 발전소를 지은 석탄 발전사는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동해시에서 석탄화력발전소를 운영 중인 GS동해전력 관계자는 “탈석탄·탈원전 기조에 따른 송전선로의 제약 때문에 현재도 50%밖에 가동을 못 하고 있다. 내년에는 30%밖에 가동을 못 할 것으로 보여 부도나는 업체가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 발전업계 관계자는 “송전선로를 추가하는 것이 지난 정부의 탈석탄·탈원전 기조와 배치돼 적극적으로 추진되지 않았다”며 “이런 정치적인 이유로 운송할 도로도 없이 공장에서 제품을 만드는 격이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석탄발전 역할 있다” “출구 전략 필요”
전력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돼 석탄화력발전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공급망이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석탄 발전은 안정적인 전력 발전원”이라며 “재생에너지 확대는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필요하지만, 안정적 전기 공급원인 석탄발전의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은혜 기자, 삼척=천권필 기자, 정상원 인턴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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