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조무사 가방끈 길면 안된다? 간호법 희한한 '학력 상한'
“간호조무사 국가시험 응시자격을 고졸로 한정해 놓은 이 부분은 ‘고졸 이상의 학력’으로 수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오히려 학력에 ‘상한’을 둔다는 것은 위헌이다.”(박형수 국민의힘 의원)
지난 2월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2소위원회에서 검사 출신의 박형수 의원은 간호법 제정안 5조(간호조무사 자격인정)를 문제삼았다.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 자격을 ‘간호특성화고 졸업자’ 또는 ‘고졸자로 간호학원을 수료한 자’로 제한한 게 위헌이란 주장이었다. 박 의원의 지적에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위헌적인 요소가 있다고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이 있다”고 동의를 표했다.
이처럼 국회 논의 과정에서 위헌성이 지적된 간호사법 제정안은 13일 국회 본회의 문턱 직전에 멈춰섰다. 169석의 거야(巨野)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여 통과시키려 했지만 국민의힘의 반발에 김진표 국회의장이 본회의 상정을 보류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9일 법사위를 거치지 않고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본회의로 직회부된 간호법을 둘러싼 쟁점은 다양하다. 지금까지 의료법의 적용을 받던 간호사에 관한 규정을 별도 분리해 규정하는 만큼 의사와 간호사 집단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고, 각자 나름의 논리 싸움도 펴고 있다.
다양한 쟁점 가운데 정치권에서 가장 심각하게 보는 부분은 제정안 5조 내용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전문대나 4년제 대학의 보건·의료 관련 학과를 졸업해도 간호조무사 시험을 볼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경우 다시 간호학원에 등록해 자격을 취득해야 한다. 통상 국가공인시험은 ‘고졸 이상’, ‘대졸 이상’ 같은 식의 ‘학력 하한’이 존재하는데, 유독 간호조무사 시험만 ‘학력 상한’이 존재하는 구조가 되는 셈이다. 실제 간호사 국가시험의 경우엔 응시 자격을 ‘간호교육의 전문대학 및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자’로 명시하고 있고, 응급구조사 1급 자격증 시험도 ‘대학 또는 전문대에서 응급구조학과를 전공하고 졸업한 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기술자격법에 따른 544종의 자격증 시험 응시자격 어디에도 간호법 제정안처럼 학력 상한을 두는 분야는 없다.
법사위 소속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어떤 직업도 학력의 상한을 제한하진 않는다”며 “법사위에서 이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와 토론을 하던 중에 (민주당이) 본회의 직회부를 결정하고 강행 처리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측은 “(간호법 5조는) 현행 의료법을 그대로 가져온 조항이라 문제 없다”며 “의료법을 문제삼아야지, 왜 간호법으로 딴지를 거냐”는 입장이다. 그러나 2012년 규제개혁위원회는 간호법 5조가 차용한 의료법 80조가 위헌적이라고 지적했다. 2016년 헌법재판소가 청구인이 고등학생이라는 점을 들어 ‘청구인의 자기관련성이 없다’며 헌법소원을 각하했지만, 의료법 80조가 합헙이라는 취지의 결정은 아니었다.
이런 논란의 여지가 큰 문제 조항이 간호법에 여과없이 들어간 건 대한간호사협회의 주장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간호사협회는 “간호조무사는 고졸이면 충분하다. 불필요한 학력 인플레이션을 조장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복지위 전문위원은 간호법 제정안 검토보고서에서 “간호조무사를 제외한 모든 직종은 학력 상한이 제한돼 있지 않음에도 간호조무사의 응시자격만 학원, 특성화고 졸업자로 제한하고 있다”는 대한간호조무사협회의 의견을 비중있게 실었다. 보건복지부도 간호조무사에 학력 상한을 두기보다는 2년제 전문학사 도입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국회에 냈다.
지난 11일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민주당의 간호법 강행 처리를 막기 위해 중재안을 냈고, 여기엔 ‘고졸 상한’을 ‘고졸 하한’으로 변경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보건복지위 소속 여당 의원은 “법안의 근본적 문제도 검토하지 않고 야당이 법안을 강행 처리하게 되면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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