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탁의 인문지리기행] 독립운동부터 산업화까지, 한국현대사 거봉들
구미 금오산과 박정희·장택상·허위
6·25 쑥대밭에서 일어선 ‘역사의 땅’
낙동강 방어전의 요충지인 다부동을 책임졌던 백선엽 장군의 회고에 따르면 이 폭격으로 하늘이 울리고 땅이 흔들렸다고 한다. 이 폭격은 북한군 후방을 무력화하려 했던 건데 현재 구미공단을 포함해 구미시 상모동, 오태동, 임은동 일대이다. 당시 투하된 폭탄이 1000톤이었으니 분명히 쑥대밭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 현대사를 장식할 주요 인물을 한꺼번에 만난다. 상모동 출신의 박정희(朴正熙·1917~1979), 오태동 출신의 장택상(張澤相·1893~1969), 임은동 출신의 허위(許蔿·1855∼1908)가 그러하다. 이 동네들은 반경 3㎞ 안에 있어 서로가 이웃한다. 또 서쪽으로는 금오산이 있고 동쪽으로는 낙동강이 흘러서 세 동네 풍광이 모두 빼어나다. 게다가 금오산은 위치에 따라 산 정상이 다르게 보여 신비롭다. 동쪽 선산에서 보면 붓끝과 같아 필봉으로, 남쪽 칠곡에서 보면 관을 쓴 귀인의 모습과 같아 귀봉으로 불린다. 산 등허리는 부처님이 누워있는 모습을 해 와불상이라고 한다.
이런 산수에 반해 장택상과 허위의 조상은 일찌감치 여기로 이사를 왔다. 장택상 조상은 부근인 인동에 오래 살다 낙동강을 건너서 오태동에 터를 잡았다. 허위의 조상은 경남 김해에 살았는데 배를 타고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오다 이곳 풍광에 매료돼 임은동에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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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사늑약에 맞서 의병 이끈 허위
후손들도 서간도에서 무장 투쟁
항일운동 도운 초대외무 장택상
혼란스러운 해방정국 수습 평가
이념논란 끊이지 않았던 박정희
“잘살아보세” 경제성장 초석 다져
」
성주에서 구미로 온 박정희 조상
이에 반해 박정희 조상은 생활이 어려워서 고향 성주를 버리고 상모동으로 이사를 왔다. 또 이사 온 시간도 오래되지 않았다. 하급 군관이던 박정희 부친이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해 처형될 뻔했는데, 이로 인해 술로 세월을 보내다 가산을 탕진하자 아내가 상모동에 있는 친정 선산의 위토를 소작 받아 옮겨왔다.
장택상은 그 등장이 화려했다. 정부 수립 후 초대 외무장관을 역임한 데다 부산 피난 시절 총리에 올랐다. 총리에 취임하자 안동 병산서원에 들려 류성룡 위패 앞에 참배하면서 “대감 이후 영남에서 정승이 나오기는 제가 처음입니다”라고 해 인구에 회자했다. 당시 김영삼은 약관 26살의 나이로 장택상 총리 밑에서 비서관을 지냈다.
장택상 부친은 경북 최고 부자로 전국에서 열 번째 안에 드는 재산가였는데 장택상이 영국 에딘버그 대학에 유학 갈 수 있었던 것도 부친의 재력이 뒷받침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그의 부친은 친일의 대가로 약속한 독립운동 군자금을 대지 않아 박상진에 의해 살해됐다.
반면 박정희의 등장은 초라했다. 부모가 고향을 떠나 상모동으로 이사 왔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니 세끼 해결을 위해서도 이 일대 큰 부자인 장택상 집에 신세를 졌을 거다. 실제로 박정희 둘째 형은 장택상 집의 땅을 소작했다. 장택상 부친의 땅이 오태동은 물론이고, 이웃 임은동과 상모동까지 뻗어 있어서다.
한편 박정희는 그가 처한 어려운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사범학교에 진학해 교사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에 만족하지 못해 군인의 길을 걷고자 일제가 세운 만주 군관학교에 입학했다. 따라서 박정희는 일제 치하에 순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창씨개명 반대하며 칩거한 장택상
이에 반해 장택상은 소학교 시절 조선 조정의 어용 관리 연설을 중단시킨 일이 있을 정도로 어릴 적부터 일제에 적대감을 보였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을 때 도쿄 조선공사관에서 파견된 한 시학관이 훈시 중에 안중근의 의거를 폄훼하는 발언을 하자 소년 장택상은 의병 행위를 어떻게 폭도로 몰아갈 수 있느냐고 따지면서 동료들과 함께 그를 단상에서 끌어 내렸다. 그의 이런 저항정신은 커서도 변치 않아 창씨개명을 거절하고 고향에 칩거하면서 독립운동가를 자기 집에 숨겨주거나 독립자금을 비밀리에 지원했다. 그러다가 청구구락부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1945년 해방이 됐어도 두 사람은 이념상 차이로 또다시 다른 길을 걸었다. 장택상은 미군정청 수도청장에 임명되면서 좌파 숙청에 앞장섰다. 좌우 대립이 극심했던 상황에서 수도청장 역할은 중요했는데 그는 일방적으로 우익 편을 든 데다 친일 경찰을 끌어들였다는 오점을 남겼다.
그렇지만 그를 고문해 보복을 두려워했던 한 경찰에 대해 일제강점기 때는 어쩔 수 없었다면서 직무능력을 오히려 치하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그래선지 경무부장 조병옥과 함께 혼란스러운 해방 정국을 잘 수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박정희는 여순반란사건 때 좌익으로 몰려 사형 선고를 받아 간신히 살아났지만, 앞길을 예측할 수 없었다.
흥미로운 건 이념에 대한 두 사람의 상반된 태도이다. 장택상은 여운형·조봉암 등 중도파 내지는 좌익계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워 이념을 초월해서 교유했다. 또 조봉암이 이승만에 의해 좌파로 몰려 사법 살인을 당할 때 그를 구하는 데 앞장섰다. 게다가 딸 장병민과 사위 채항석은 조선공산당 당원으로 골수 공산주의자였다.
반면 박정희는 이념의 틀에서 자유롭지가 못했다. 셋째 형의 친구이자 젊었을 때 그가 멘토로 삼았던 황태성이 5·16 직후 남북평화협상을 위해서 북의 밀사로 왔는데도 간첩혐의를 씌워 총살했다. 또 집권 내내 반공을 국시로 삼은 것도 그의 이런 정신세계가 반영된 거로 본다.
서대문교도소 첫 사형수 허위
허위는 박정희나 장택상보다 한 세대 위에 속하는 인물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죽기를 결심한 병사 300명을 이끌고서 동대문 밖 10㎞까지 진출해 남산의 통감부를 부수려고 일본군과 장시간에 걸쳐 접전을 벌였다. 동대문에서 청량리로 뻗은 도로명이 왕산로인 건 그의 호 왕산(旺山)에서 따와서다.
당시 총리대신 이완용은 경기도 연천에 피신한 그에게 관찰사나 내무대신 자리로 그의 마음을 돌리려고 했지만, 왕산은 심부름 온 사람을 크게 꾸짖어서 보냈다. 결국은 체포돼 사형을 선고받고 서대문교도소에서 사형이 집행된 첫 번째 인물이 되엇다.
왕산 일가는 그 후 일제 탄압을 견디지 못해 70여 명이 집단으로 압록강을 건너 서간도로 이주했다. 서간도로 간 건 먼저 정착해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사돈 석주(石洲) 이상룡 때문이다. 이들은 석주 일가와 함께 독립운동을 벌였다. 그렇지만 남은 건 가난에 가족의 이산뿐이다.
왕산 자손은 대부분 실종되고, 남은 가족은 키르기스스탄·우크라이나·러시아·중국·북한 등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이 집안사람 허은이 구술한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를 읽으면 안타까워서 눈물이 저절로 고인다. 애국시인 이육사도 이 집안 사위이다. 그의 이름은 원록인데, 감옥에서 수인번호가 264번이어서 이를 호로 삼았다.
6·25 융단폭격 딛고 일어선 땅
이렇게 보면 허위는 물론이고 장택상도 비교적 떳떳한 삶을 살았다. 이에 비해 박정희는 그렇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대통령이 되고서 이뤄낸 그의 공은 부끄러운 삶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또 설령 부끄러운 삶일지라도 비정상적인 시대에 태어나 비정상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의 처지를 이해하는 아량이 필요하다.
한국전 때 3000m 높이에서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진 구미시 일대의 폭격은 그야말로 비정상적이어서 미 공군도 크게 반대했다. 그런데도 감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건 당시 전황이 긴박해서다. 마찬가지로 박정희도 상모동에서 비정상적일 정도로 힘든 삶을 살았기에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몸부림쳤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눈부신 번영은 융단폭격의 폐허 속에서 기적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허위의 올곧은 마음, 관념에 지배되지 않는 장택상의 실용주의적 태도,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라는 박정희의 절규가 뒷받침되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육사가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라고 읊은 초인이 혹시 이들일 수 있지 않을까.
김정탁 노장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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