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아트풀마인드] 신안 염전의 ‘태양광 수도자’

2023. 4. 14. 00:4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수진 문화예술기획자·한국외대 초빙교수

처음 대하는 상황,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물건이나 겪어보지 않은 사람을 대할 때, 우리는 탐색에 시간을 쓰고 나름 판단을 하게 된다. 한눈에 반해서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다)’가 될 것이냐 툴툴거리며 다가서는 ‘츤데레(겉으로는 엄한 척하지만 속마음은 따뜻한 사람)’가 될 것이냐는 각자 선택의 몫이다. 반복되는 선택의 패턴을 보면 그 사람의 태도를 알 수 있다. 같은 장면이라도 각자 다르게 느끼고 행동하는 것은 서로 다른 태도에서 비롯된다.

태도는 학습되고 경험에 따라 진화한다. 기술이 하루하루를 새롭게 이끄는 시대에 살면서, 따를 것이냐 거스를 것이냐는 어쩌면 더 이상 선택지가 없는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신기술에 전혀 호기심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기술이 만드는 변화의 대세를 거스르긴 어렵기 때문이다.

「 기술을 예술로 승화한 하석준
노동의 가치 새롭게 일깨워줘
신기술 수용하는 작가의 태도

하석준, 수도자(The Performer), 2020.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이 시대 예술가의 또 다른 초상이다. [사진 이철승]

휴대전화를 처음 접하고 나서 “그런 성가신 물건을 왜 들고 다니냐”는 사람들과 “이렇게 멋진 건 찬양받아 마땅하다”고 외쳤던 사람들 양쪽 다 지금은 스마트폰 라이프에 발을 깊이 담갔을 거다. 금사빠들이 대화형 인공지능 앱을 유행처럼 즐기는 사이, 자연지능과 인공지능의 결합은 이미 우리를 미지의 신세계로 밀어 넣었다.

하석준(52)은 예술과 기술이 만나는 지점을 적극적으로 탐색한다. 그의 작가적 실행력은 건축과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공부하고 대기업 전자회사에서 전 세계 가전박람회용 콘텐트를 만들었던 시간 동안 무르익었다. 자신도 회사원 체질인 줄 알았던 그는 작가 활동을 시작한 후에 자신의 주특기를 본격적으로 보여주게 된다.

크고 무거운 디지털 디스플레이 패널을 직접 등에 지고 대도시 번화가를 고행의 수도자처럼 걷고 또 걷는 퍼포먼스(‘수도자’, 2012), 수도자 형상에 두 대의 모니터를 천사의 날개처럼 뒤에 붙이고 관객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영상을 생성해서 보여주는 인터렉티브 미디어 아트(‘고통의 플랫폼’, 2015), 비너스의 얼굴이 알고리듬에 의해 자동으로 복제되는 3D 프린터 조각(‘실패한 알고리듬’, 2016)에서 하 작가는 노동의 가치, 조직의 규범, 개인의 자유의지에 대한 고민을 화려한 기술과 접목해 왔다.

하석준의 대표작 ‘수도자(The performer)’는 계속해서 변신하고 진화했다. 처음엔 스스로 수도자의 역할을 했고, 그다음엔 3D 프린터를 이용해서 형상을 만들었다. 고통스러운 수도의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디지털 패널을 짊어졌던 초기 작업은 여러 단계를 거쳐서 최근엔 태양광 패널을 머리 위에 들어 올린 형태로 바뀌었다.

앞으로도 그가 작품에 접목할 기술은 말 그대로 무궁무진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메타버스에 전시장을 짓고 환경단체와 거리 시위에 나서는 그에게 세상은 마땅히 숨 가쁘게 도전해야 할 일로 가득하다.

기술 앞에서 한 번도 주저한 적이 없는 작가답게 그는 장소적 제약을 뛰어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작품을 돋보이게 해 줄 배경이 되는 흰 벽이 없는 곳에서 그의 작품은 더 빛난다. 사진은 하석준 작가의 ‘수도자 시리즈’ 중 하나인데, 전라남도 신안군에 위치한 태평염전의 바람의 언덕에 설치된 장면을 보여준다. 땅과 물, 하늘의 끝이 맞닿는 곳, 드넓게 펼쳐진 소금밭에 어둠이 내리면 고된 노동의 시간을 뒤로하고 화려한 불빛으로 치장한 수도자의 시간이 찾아온다.

일조량이 많은 장소적 특성을 고려해서 태양광 패널로 낮 동안 전기 에너지를 모으도록 설계된 이 작품은 느리고 밋밋하게 흐르는 시간을 수집한다. 그리고 가로등도 없는 어둠 속에서 달과 별이 수도자를 비추면, 붉고 푸른 빛이 수도자의 전신을 돌며 변화무쌍하게 점멸한다. 자연의 빛에 화답하듯 밤의 수도자는 온몸으로 강렬한 색을 순환하게 한다. 염전과 예술, 태양광 패널과 3D 프린팅 조각, 달빛과 LED 전등처럼,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의 조합이 뻔한 것들을 멋지게 변신시켰다.

기술적 수월성, 즉 불가능했던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월등히 우수한 기술’은 오랫동안 예술의 원동력이 되어왔다. 고려청자가 그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랬다. 그래서 작가가 기술을 활용하는 것은 형식, 즉 표현 방법과 작품에 담긴 주제의식까지 아우르는 중요한 태도이다. 말해 뭐하랴.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나의 태도가 곧 나의 운명인 것이다.

신수진 문화예술기획자·한국외대 초빙교수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