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20년 만의 국회 전원위원회
국회 본회의가 열려도 국회의원 300명이 한자리에 다 모이긴 쉽지 않다. 올 1월 임시국회는 9일 시작했지만 본회의는 30일에야 잡혔다. 국회의장과 여야 의원 40여 명이 해외 출장 등으로 자리를 비워 시일이 늦춰졌다. 1991년 3월 7일자 중앙일보에 따르면 평민·민주당의 공동 요구로 임시국회 개회식이 열렸다. 그러나 민자당이 기초의회 선거기간이라는 이유로 개회식 직후 퇴장했다. 30여 년 전에도 사정은 똑같았다.
국회의원 전원이 모여 의안을 심사하도록 한 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국회 전원위원회(전원위)다. 상임위 중심으로 돌아가는 국회 특성상 주요 안건이 있을 때 함께 논의하자는 취지다. 1948년 국회법 제정 때 도입돼 다섯 차례나 열렸지만 1960년 4·19 혁명으로 들어선 2공화국이 국회법을 전부 개정하면서 폐지됐다. 그러다 2000년 2월 국회법을 개정하며 복원됐다. 심도 있는 안건 심사를 위해 일문일답식 대정부 질의 등이 함께 도입됐다.
부활한 전원위는 16대 국회에서 다시 열렸다. 이라크전 파병 문제로 2003년 3월 28~29일 이틀간 열린 전원위는 당시엔 하루에 2시간으로 회의가 제한됐다. 의원 1인당 질의 시간도 5분 정도에 불과했다. 파병동의안은 결국 통과됐지만, 첫날 13명, 둘째 날 12명이 찬반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국회가 전원위를 통해 고심한 흔적을 보인 만큼 의원들로선 여론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고 표결에 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 10일 나흘간 일정으로 소집된 국회 전원위가 13일 막을 내렸다. 내년 총선에 적용할 선거제 개편을 논의했다. 20년 만의 개최에 국회 안팎에선 “전체 의원이 모여서 공론화하면 덮어놓고 반대하긴 어려울 것”이란 기대감이 일었다. 그러나 현행 소선거구제 폐단을 개선해야 한다는데 큰 이견이 없었지만, 해법이 제각각이었다. 참여 의원도 100명으로 많아지고 발언 시간도 7분으로 길어졌지만 말 그대로 백가쟁명(百家爭鳴)에 그쳤다.
아쉬움이 크다. 3가지 개편안을 논의 테이블에 올렸는데 주제별로 발언을 모았다면 어땠을까. 개회 시점에 200명 정도 참석했던 의원들은 끝날 땐 50명 정도만 자리를 지켰다. 의회정치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릴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위문희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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