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우리가 몰랐던 또 다른 세상이 있다
에드 용 지음, 양병찬 옮김
어크로스, 624쪽, 2만9000원
수중 포식자가 물고기 떼를 향해 돌진하면, 물고기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그들은 아무 방향으로나 도망치지 않으며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그들은 공격자의 주위를 마치 물처럼 흐른다. 이 기적 같은 조종의 위업은 부분적으로 시각에 달려 있다. 그러나 물고기 옆면에 있는 ‘측선’이라고 불리는 센서 시스템도 단단히 한몫을 한다. 실험은 눈 먼 물고기가 측선을 사용해 근처에서 움직이는 물체에 의해 생성된 물결을 탐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생쥐는 얼굴의 수염을 1초에 여러 번씩 앞뒤로 휘저으며 주변을 지도화(mapping) 한다. 뱀은 열을 효과적으로 감지하므로 앞에 있는 생쥐의 몸을 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느낀다. 거미의 세계는 거의 전적으로 거미줄을 통해 전달되는 진동에 의해 정의된다.
동물이 세계를 감각하는 방식은 오랫동안 호기심을 끌어왔다. 동물은 인간이 감각할 수 없는 미세한 냄새, 열, 소리, 진동 등을 감각하며 그것에 의존해 살아간다. 인간은 바다표범이 추적하는, 헤엄치는 물고기의 보이지 않는 흔적을 감지할 수 없다. 우리는 거미가 느끼는, 윙윙거리는 파리가 만드는 기류를 느낄 수 없다. 설치류와 벌새의 초음속 외침이나 코끼리와 고래의 초저주파 울부짖음을 들을 수 없다. 방울뱀이 탐지하는 적외선이나 새와 벌이 감지할 수 있는 자외선도 볼 수 없다.
인간과 동물은 지구라는 동일한 물리적 공간에서 살아가지만 서로 다른 걸 감각하며 다른 세계를 각각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과학저널리스트로 2016년 미생물 세계를 다룬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로 퓰리처상을 받은 에드 용(Ed Yong)은 새 책 ‘이토록 굉장한 세계’에서 동물들의 경이로운 감각 세계를 탐구한다. 저자는 전 세계 동물학자들의 연구실로 독자들을 데려가 여전히 미스터리가 수두룩한 동물의 감각을 최신의 과학과 흥미로운 서사로 소개한다.
철새들은 이주 시기가 되면 폐쇄된 실험실 방에서도 밤마다 남서쪽으로 뛰어간다. 철새들은 이주할 때를 알고 길도 안다. 그들은 별 외에 제2의 단서를 활용하는 게 틀림없는데, 그 후보 중 하나는 지구의 자기장이다.
뱀은 혀가 두 갈래다. 혀의 도움으로 냄새를 맡고, 냄새로 지도를 그린다. “만약 두 개의 혀끝 모두에서 흔적 페로몬이 탐지됐다면, 뱀은 진로를 계속 유지한다. 오른쪽에서는 탐지됐지만 왼쪽에서는 탐지되지 않았다면, 뱀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박쥐의 울음소리는 주변의 모든 사물들에 퍼져나간 후 반사되고, 박쥐는 반사되는 메아리를 탐지해 해석한다. 돌고래 역시 음파를 사용한다. 박쥐는 목표물의 외형과 질감을 감지할 수 있지만, 돌고래는 그 내부까지 들여다 볼 수 있다. 돌고래는 참치 안에 든 낚시바늘도 알아낼 수 있다.
동물들의 감각을 통해 우리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디딜 수 있다. 우리가 어둠이라고 부르는 것 속에 빛이 있고, 고요함 속에 소음이 있고, 텅 비어 있는 것 속에 놀랄 만한 풍요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바다는 그저 물이 가득찬 공간처럼 보이지만 물의 흐름을 감각하는 바다표범은 그 물 속에서 도로와 오솔길, 산, 계곡 등을 본다. 동물의 감각으로 보면 빛 속에 자외선이나 적외선이 있고, 해안 모래밭이나 지하에 풍부한 먹이가 있으며, 우리가 들을 수 없는 수많은 소리가 있다.
우리가 아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다. 동물들이 감각하는 세계, 우리가 몰랐던 또 다른 세계가 있다. 인간이 감지할 수 없는 수많은 신호와 감각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동물들이 그것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음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가 동물의 감각 세계를 심각하게 오염시켜 놓았다는 저자의 지적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인간은 밤을 빛으로, 고요함을 소음으로, 토양과 물을 낯선 분자와 냄새로 가득 채웠다. 동물들이 의존하는 신호와 자극을 오염시켰고, 그들의 감각을 교란시켰다. 가장 심각한 건 ‘밤의 빛’이다. 날곤충들은 가로등을 천체의 빛으로 착각해 그 아래에 몰려들어 탈진할 때까지 맴돈다. 도시와 산업의 소음은 새들의 짝짓기를 방해한다. 바닷새들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이로 오인해 삼킨다.
저자는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이뤄진 봉쇄 조치로 “평소에는 잘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좀더 분명해져, 전 세계의 도시 거주자들은 갑자기 노래하는 새들을 발견하기도 했다”면서 동물들을 위해 “고요함을 되찾고 어둠을 보존하라”고 촉구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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