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 포기, 적자공사, 도산…벼랑 끝에 선 건설업계
“1년 만에 주택 사업이 4분의 1로 줄었어요. 요즘은 수주를 최대한 안 하고 버텨야 삽니다.”
국내 30위권대의 중견 건설사인 A사의 한 간부는 “요즘 건설사 분위기가 다 비슷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A사는 2021년 4개 단지를 분양했지만, 지난해 1개 단지로 쪼그라들었다. 건축 사업도 어렵다. 2021년 약 150억원에 수주한 ‘아주대 종합실험동 건립공사’는 30억원가량 손실을 안겼다. 그는 “원자재 가격이 뛴 탓에 결국 적자 공사를 했다”고 말했다.
건설업계가 삼중고(三重苦)에 빠졌다. 부동산 시장 침체에 자금 경색, 원자재 가격 급등이 겹치면서 ‘탈출구 없는 터널’로 진입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방아쇠는 고금리가 당겼다. 지난해 금리 인상 여파로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지방을 중심으로 미분양 물량이 쌓였다. 1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월 전국 미분양 주택은 7만5438가구로 1년 전보다 199% 급증했다. 전체의 83%가 지방 물량이다. 업계에서는 연내 미분양 물량이 10만 가구를 넘길 것으로 예상했는데, 건설사가 분양을 최대한 미뤄 증가세가 둔화했다.
미분양 우려는 이른바 ‘돈맥경화’를 불렀다. 부동산 개발 사업은 통상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로 자금을 마련하는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PF 대출이 사실상 중단됐다. 치솟는 공사비도 건설사를 옥죈다. 이미 공사 중인 현장에선 공사비 인상분이 반영되지 않아 ‘적자 공사’를 하는 사례까지 나온다.
미래 먹거리인 신규 수주를 포기하는 건설사도 늘고 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 1~2월 건설업체의 국내 주거용 건축 수주액은 7조350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6% 줄었다. 최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남성아파트 재건축 조합이 공사비를 당초 3.3㎡당 525만원에서 719만원으로 37% 올렸지만, 시공사 입찰엔 단 한 곳도 참여하지 않았다.
특히 중견 건설사는 사정이 더 심각하다. 토지 매입, 주택사업 수주가 ‘올스톱’된 곳이 많다. 한 중견 건설사 임원은 “민간 공사는 분양률에 따라 공사비를 못 받을 수 있는데, 요즘은 분양률과 상관없이 공사비를 다 주는 현장만 수주한다”며 “그러다 보니 일감이 없어 놀고 있다”고 했다. 박수헌 한국주택협회 정책본부장은 “대형사는 회사채 발행으로 돈을 마련하거나 사업 다각화를 통해 버틸 수 있지만, 주택 사업에 집중했던 중견·중소 건설사는 벼랑 끝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분양도 계속 미뤄진다. KB증권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전국 분양물량은 3만5000여 가구로, 전년 동기보다 64% 줄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분양 경기가 안 좋고 공사비 인상 같은 사업 리스크도 커져 무조건 분양을 미루는 게 업계 분위기”라고 말했다.
건설사의 위기는 수익성 악화로 드러난다. 코스피에 상장된 건설사 22곳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22% 감소했다. KCC건설은 지난해 적자 전환(-11억원)했고 태영·금호건설의 영업이익은 1년 새 반 토막 났다. 한국은행은 지방 중소 건설사의 16.7%가 연 수입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인 것으로 추정했다.
자금난을 못 견뎌 문 닫는 업체도 줄을 잇는다.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83위인 대우조선해양건설에 이어 대창기업(109위)과 에이치앤아이앤씨(133위)가 최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우석건설(202위)과 동원건설산업(388위)은 지난해 부도났다. 폐업 신고도 급증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13일까지 폐업 신고한 종합건설사는 135곳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7% 늘었다. 대형 건설사로부터 하도급을 받는 전문건설사(912곳)를 합치면 1047곳에 달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수주 공백 장기화와 PF 대출 중단 등으로 자금난을 겪는 건설사가 늘 수 있어서다. 박철한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까진 건설사가 2~3년 전 수주한 사업장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신규 수주가 계속 줄고 집이 안 팔리면 업계 상황이 갈수록 나빠질 것”이라며 “이대로 가면 중소 건설사의 줄도산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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