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의 이야기로 고통 속 노예 생활 이겨냈던 '흑인영가'의 세계
서울시합창단 2023 ‘마스터 시리즈’
흑인 노예의 고통과 슬픔 담긴 '흑인 영가'
백인의 이야기로 고통과 희망 풀어낸 흑인 노예들의 애환 그려
미국 최고의 합창 지휘자로 손꼽히는 안드레 토마스는 미국을 비롯해 유럽, 아시아, 호주, 아프리카 등 세계 전역에서 합창 지휘자와 디렉터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거장이다. 코로나19로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그는 13~14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서울시 합창단 '마스터 시리즈' 무대에 올라 흑인 작곡가 작품들로 만나는 '미국 현대 합창' 공연을 선보인다.
그는 11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공연에서는 흑인영가를 비롯해 초기 흑인 클래식 작곡가들의 작품들, 그리고 미래적 이상향을 꿈꾸는 현대곡들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미국 합창음악은 백인 작곡가 작품 중심으로 국내에 소개돼왔다. 토마스 교수는 이번 공연에서 첫 흑인 여성 작곡가 플로렌스 프라이스를 비롯해 흑인영가에 19세기 낭만 양식을 더 해 합창 음악·오라토리오 등을 작곡한 흑인 클래식 작곡가 나타니엘 데트를 조명할 예정이다.
다인종 국가인 미국은 음악에서도 다양한 장르와 흐름을 형성해왔다. 이번 공연은 그중 흑인 작곡가들의 합창곡을 통해 미국 합창 음악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중요성과 역사, 그리고 흑인 중심의 미국 합창 음악 문화를 소개한다.
토마스 교수는 "미국에서 흑인 숫자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문화를 형성한 데 반해 흑인 중심 작곡가 작품과 합창음악에 대해서는 그동안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며 "이번 공연에서는 흑인 문화와 음악에 초점을 두고 미국 합창음악을 소개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에 노예로 잡혀 온 흑인에게 백인은 종교를 허락했다. 강제로 끌려와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흑인들은 자신들의 유전자 속 리듬으로 성경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이렇게 탄생한 흑인영가(black sprituals)는 하나의 장르로, 전 세계 기독교인들의 사랑을 받는 음악으로 자리매김했다.
성경 누가복음 속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는 구절에서 유래한 노래 '킵 유어 램프(Keep your lamps·너의 등불을 밝히어라)'를 두고 토마스 교수는 "단조로 표현된 이 곡은 당시 흑인 노예의 어두운 삶과 역사를 표현한 곡"이라고 설명했다.
성경 구절에서는 주인을 기다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은 쇠사슬로 다리가 한 줄로 엮인 흑인 노예들이 한 줄로 서서 걸으며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부른 노래로 승화됐다. 토마스 교수는 "흑인 영가는 흑인을 더 흑인답게 만든다"고 말한다. 지난 11일 진행한 '흑인영가의 이해와 연주법' 세미나에서 그는 그들의 어두운 역사와 고통의 시간이 녹아있는 곡들을 통해 그 삶을 이해하고, 이후 다양한 장르로 발전한 흑인 음악의 원천을 확인하는 시간을 선사했다.
현실의 괴로움으로부터의 해방을 바라던 흑인 노예들은 구약성서 속 절망 속에서 구세주를 찾는 유대인들의 삶에 자신을 투영했고 이를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힘들고 고된 순간이 올 때마다 이들은 성경 속 이야기를 노래로 부르며 고통을 잊고 또 이겨내려 노력했다. 그렇다면 노동요와 흑인영가는 비슷한 곡일까?
토마스 교수는 그 둘은 엄연히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흑인영가는 일할 때도 불렸기 때문에 노동요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곡을 만들 때 노동자의 사기 진작을 위해 만든 곡은 아니었다"고 설명한 그는 "자신들의 힘든 삶을 성경 속 이야기를 통해 부른 곡으로 이 둘은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흑인영가를 구약성서, 신약성서, 개인의 감정 이 세 가지 주제로 창작됐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노래들이 민속음악처럼 전승되면서 발전돼 현재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휘자이자 반주자, 또 작곡가로도 활동한 그는 이번 공연에서 자신의 곡도 함께 선보인다. 흑인영가, 흑인 작곡가의 클래식, 그리고 현대의 흑인 아티스트들의 곡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토마스 교수는 "내 조상의 음악을 나누는 시간"이라며 "이번 공연이 흑인 문화 속에 이런 다양한 종류의 음악이 있음을 한국 관객에게 알리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공연장을 찾는 관객에게 "편하게 앉아 등을 기대고 낯설면서도 친숙한 이 음악들을 제대로 즐기시길 바란다"고도 전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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