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덩치 전쟁’ 시작…“차세대 전기차 기술 경합장 열렸다”
전기차 시장에서 ‘덩치 전쟁’이 시작됐다. 대형 전기차 출시가 이어지면서다. 지난해 하반기 BMW i7와 메르세데스-벤츠의 EQS를 시작으로 최근엔 기아 EV9, 볼보 EX90, 벤츠 EQS SUV 등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전동화 모델이 속속 시장에 진입했다. 이에 차세대 전기차 기술 경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중소형 전기차가 초기 기술 경쟁이었다면 대형 전기차는 ‘진검승부’에 비유된다. 차체 무게만 2t이 넘는 대형 전기차는 대용량 배터리가 들어가기에 소형차보다 뛰어난 배터리 기술력이 요구된다. 가령 기아 EV6에는 58~77.4㎾h(킬로와트시) 배터리가 장착되지만 EV9에는 99.8㎾h 배터리가 들어간다.
소형 전기차에는 없는 고성능 모터도 필요하다. 차체 설계, 안전과 연관된 기술도 완전히 딴판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대형 전기차의 경우 단순히 배터리 용량을 늘리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배터리 관리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부터 고출력 모터 등 하드웨어까지 새로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산차 기업은 저마다 최신 기술을 대형 전기차에 도입했다고 자랑한다. 기아 EV9 GT-라인에는 레벨3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이 현대차그룹 양산차 중 최초로 적용됐다. 고속도로 등에서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앞차와 안전거리 및 차로를 유지하며 최고 시속 80㎞로 주행하는 기술이다.
볼보는 EX90에 브랜드 역사상 가장 수준 높은 안전 기술을 추가했다고 밝혔다. 카메라·레이더·초음파 센서를 통해 차량 내·외부를 360도로 모니터링해 탑승자를 보호한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은 “소형과 중형 전기차로 차례로 전동화 기술력을 쌓은 뒤 이를 대형 전기차에 적용하는 흐름”이라며 “대형 전기차가 양산차 기업의 기술력 경합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산차 기업에 대형 전기차는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쉽게 말해 ‘돈이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소형차보단 대형차가 수익성이 앞선다. 대형화할수록 고가 부품이 쓰이고 옵션 가격도 비싸게 책정할 수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소형차 2대를 파는 것보다 대형차 한 대를 파는 게 수익성 측면에서 낫다”며 “프리미엄 모델이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대형 전기차는 시장 주도자인 테슬라의 ‘약한 고리’ 중 하나다. 테슬라는 최근 상대적으로 저가인 모델3과 모델Y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 반면 준대형으로 분류되는 모델X 판매량은 정체된 상태다. 지난해 모델X와 모델S의 인도량 합계가 6만6705대로 2019년(6만6771대)과 비슷하다. 테슬라는 모델X 인도량을 별도로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모델S 생산량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초 한국 시장에서 선보인 모델X는 글로벌 시장에선 2015년 출시됐다. 그동안 주행거리를 늘리고 실내·외 디자인을 변경했지만 ‘올드카’란 이미지를 지우진 못했다. 테슬라가 미국 등에서 모델X 가격 인하에 나선 건 EV9 등 신차 견제를 위한 목적도 있다. 충분한 양산 시설을 갖추지 못한 것도 테슬라의 약점으로 꼽힌다. 반면 기아는 올해 EV9 생산량을 3만 대 이상으로 잡고 있다.
대형 전기차 시장 경쟁은 올해 내내 달아오를 전망이다. 테슬라가 새로운 대형 전기차를 발표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면서 기존 양산차 기업의 독주가 될 전망이다. 현대차는 내년 아이오닉7 출시를 예고했다. GM은 쉐보레 실버라도와 GMC 시에라 전기차를 발표하면서 전동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대형 전기차 기술력도 충분히 쌓였다”며 “올해는 본격적인 승부가 펼쳐지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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