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해명하다 화 불렀다…여당도 허탈한 '용산발 돌출발언'
통상 논란이 발생하면 고도의 정무적 판단에 기반한 해명이 이를 해소하고, 다른 공세적 이슈로 국면을 전환해 국정을 주도해 나가는 게 집권 세력의 로직이다. 그 어떤 정부를 막론하고 논란 자체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윤석열 정부에선 해명이 되려 화를 부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렇다할 큰 실책이 없음에도 지지율이 완만한 내리막길을 걷다가 30%대로 고착화하는 양상인 것도 이 때문이라는 지적이 여권 안팎에서 이어지고 있다. 논란을 키운 해명의 발원지가 대통령실인 경우도 잦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1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 인근 덜레스 공항에서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나 설화 논란에 휩싸였다.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에 대한 미국의 도·감청 의혹에 “미국이 어떤 악의를 가지고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관련 질문이 이어지자 김 차장은 “같은 주제로 물어보시려면 저는 떠나겠다”며 회피하는 모습도 보였다. 김 차장의 발언에 대해 야당뿐 아니라 여당에서도 “도청(盜聽)의 도(盜)는 ‘도둑 도’인데, 선의를 가진 도둑질도 있느냐(국민의힘 초선 의원)”는 반응이 나왔다. 외신 보도로 불거진 도청 의혹 그 자체보다 김 차장의 해명을 둘러싼 논란이 SNS와 커뮤니티를 뒤덮었다.
김 차장의 발언을 두고 한 대통령실 참모는 “공항에서 개인이 말한 걸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며 “돌출 발언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의 해명이 기름을 끼얹은 경우는 더러 있었다. ‘주당 69시간 근무’에서 촉발된 노동시간 개편안과 관련한 대통령실의 대응이 대표적이다.
69시간과 관련한 MZ세대의 반발이 거세지자 윤 대통령은 지난달 일본을 방문하기 직전 “주 60시간 이상 근무는 무리(3.16)”라고 말했다. 당시 안상훈 사회수석은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입법 예고된 정부안에 적절한 상한 캡을 씌우지 않은 것을 유감이라 여기며 보완 지시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며칠 뒤 대통령실은 “주60시간이 가이드라인은 아니다(3.20)”고 밝혀 번복 논란이 일었다. 당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대통령의 말씀은 장시간 근로에 대한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시고 여러 가지 면에서 다 의견을 들어보라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메시지 혼선으로 노동시간 유연화라는 본질은 사라지고, 논의의 초점이 '69시간이냐 60시간 이냐'로 좁혀졌다. 이 논란은 윤 대통령이 브리핑 다음날 국무회의에서 “주 60시간 이상 근무는 무리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3.21)”고 밝히고서야 일단락이 됐다. 여당의 한 의원은 “윤 대통령의 진짜 의중이 무엇인지 당에서도 혼란스러웠던 순간”이라고 기억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주요 현안에 대해선 매일 비서실장과 수석들이 모여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메시지를 조율해 ‘원보이스’를 내려 노력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대통령실 내에서도 “정무적 조율이 되지 않은 설익은 정책 발표나 메시지 발신이 이어지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특히 외교·안보의 경우 정부 기조의 정당성만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보안상 이유로 사전 조율도 어려워 민심과 동떨어진 돌출 발언이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현대 외교의 가장 큰 특징은 국내 문제의 국제화이자, 국제 문제의 국내화”라며 “안보실도 칸막이를 내리고 적극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당·정 협의를 늘려 엇박자를 줄이고 여론을 반영한 정책을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당 내부에선 당·정 협의가 실질적 해법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당정 일체를 강조한 지도부인데 엇박자가 문제겠냐”며 “메시지 혼선부터 줄이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업체 에스티아이의 이준호 대표는 “윤 대통령은 서둘러 지지율의 반등 모멘텀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돌출 발언이 나올 때마다 그 모멘텀이 꺾이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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