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좋은 인간이 된 것 같다" '특급 누나' 김희애의 자아찾기

이준목 2023. 4. 1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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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뷰]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이준목 기자]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일당백', 한 명이 백 명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을 의미하며, 그만큼 어려운 상황도 기꺼이 감당해낼 수 있는 초인 혹은 장인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4월 12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는 그야말로 일당백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명배우 김희애, 한정숙 국가대표선수촌 영양사, 장혜진-윤수빈 약사가 출연하여 자신들의 일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갓마더'로 불리우는 한정숙 영양사는 1987년 진해선수촌에 입사하여 경력을 시작한 이래 1988 서울올림픽부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까지 무려 36년간 국가대표 선수들의 삼시세끼를 책임졌던 인물이다. 9번의 하계올림픽, 10번의 동계올림픽을 지나는 동안 한국 올림픽사의 숨은 산 증인이자 밥상의 국가대표였다.

선수촌 식당은 365일 상시 운영된다. 올림픽 준비 때는 300~400인분, 아시안게임 때는 700~800인분을 한 끼에 준비해야 한다고. 한정숙 영양사는 "메뉴 짜는 게 제일 힘들다. 하루에 70여 가지 메뉴를 겹치지 않게 해야 한다. 요즘 트렌드에 맞는 음식도 반영해야 한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장미란(역도), 팀킴(컬링) 등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들도 '선수촌 밥'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온갖 찬사와 미담을 쏟아내기로 유명했다. 한정숙 영양사는 국가대표 선수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장미란은 빨리 와서 천천히 오래 먹는 스타일"이라면서 "허재는 선수 시절에 문이 열리기도 전에 제일 먼저 와서 열어달라고 두드리는 스타일"이라고 회상했다.

최근에는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에서 열리는 국제대회마다 급식지원팀을 파견한다. 한 영양사는 2012 런던올림픽부터 책임 영양사로 출장을 나가며 선수들의 컨디션을 고려한 맞춤형 식단을 제공하는 데 앞장섰다.

급식지원파트에서 해야 할 역할은 단순히 요리를 만들고 식단을 짜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일단 개최지가 선정되면 대회 1년 전부터 준비에 돌입하여 식당 선정, 재료 구매, 운송 방법 등을 사전에 꼼꼼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심지어 국가별로 다른 세관법같은 법 체계나 문화도 일일이 고려해야 한다. 현지에서 필요한 재료를 구할 수가 없어서 재래용 솥이나 불고기용 고기 써는 기계를 한국에서 공수하기도 하고, 서양의 현지 소방법상으로 불가능한 강한 화력의 화로를 따로 설치해야 했던 일도 있었다.

한 영양사는 선수들과 올림픽 당시의 추억들을 회상했다. 평창 올림픽에서 윤성빈(스켈레톤)의 "시합하기 전에 녹차생크림빵을 먹으면 성적 잘 낼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를 듣자 한 영양사는 "가만 있을 수가 없더라. 음식을 싸가지고 주방팀의 사랑을 담아 평창까지 갔다"는 일화를 언급했다. 그 덕분인지 윤성빈은 금메달을 따며 기대에 부응했고, 이후 한 영양사를 만나 감사를 전했다고.

코로나19 시기에 열린 도쿄올림픽에서는 후쿠시마 방사능에 대한 불안감과, 현지의 부실 도시락 논란 속에 당시 도쿄의 한 호텔을 통째로 빌려 고급 도시락을 만들어 선수들에게 제공한 것이 극찬을 받았다. 당시 평소 친분이 있었던 '배구여제' 김연경에게 감사의 문자를 받고 났을 때는 "피로가 다 풀리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어느덧 '선수촌의 엄마', '대모'로 불린다는 한 영양사는 자연스럽게 선수들과 가족같은 정서적 유대감이 쌓이게 됐다. 한 영양사는 선수들의 고민을 들어주기도 하고, 생일 때면 미역국을 챙겨주기도 했다고. 한 영양사는 "선수들은 합숙생활을 오래하다보니 집밥을 잘 못 먹으니까, 엄마같은 마음으로 챙겨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한 영양사는 어느덧 내년 7월에 퇴임을 앞두고 있다. 최근에 진천에서 태릉선수촌으로 돌아왔다는 한 영양사는 "마지막은 스포츠의 요람인 태릉에서 마무리하고 싶어서 자원했다. 긴 세월동안 '그래, 참 많은 일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선수들에게도 감사하다"는 소감을 전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 약 먹으면 살 수 있나요" 익숙해지지 않는 질문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매일 1만 2000명의 환자들이 드나는 대학병원에서 2만 건 이상의 약을 조제한다는 서울대학교병원 약제부 윤수빈-장혜진 약사가 다음 자기님으로 출연했다.

병원하면 흔히 의사나 간호사만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약사들은 약 제조는 물론, 무려 2300여 가지에 이르는 약품들의 재고 및 품질관리를 담당하며 하루 2교대로 바쁜 격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민감한 마약류까지도 취급하는 만큼 시설 내에는 이중금고까지 설치되어 있고, 하루에도 수차례나 점검과 기록을 거듭할 만큼 엄격한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수많은 약재 중에서도 가장 비싼 것은 역시 항암제다.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몇천만원~억대에 달하는 제품들도 있다. 환자들의 생명과 희망을 살리는 신약은 개발도 어렵지만, 막대한 비용 때문에 환자들이 사용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어느덧 10년 차인 장혜진 약사에게는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질문이 있다고 한다. "이 약을 먹으면 치료될 수 있나요, 살 수 있나요?"라는 환자들의 질문이다. 장혜진 약사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먹먹해진다.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라고 고백했다. 환자들은 처방을 받아 약을 타면서 약값에 대한 부담이 크다. 또한 그것이 가족들에게 부담이 될까 더욱 걱정하게 된다.

장혜진 역사는 혈액암 환자의 보호자로 약을 받으러 왔던 한 40대 주부와의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장 약사는 "이 약 먹으면 우리 남편 살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받고 잠시 고민하다가 "이 약을 받아가신 분들, 제가 몇 달 뒤에 또 보고 또 보고 있다"며 격려했고, 여성은 그만 눈물을 터뜨렸다고 한다. 장 약사의 위로에 마음을 추스른 여성은 "눈물 닦고 남편 앞에서는 괜찮은 척하고 올라가겠다"고 다짐하고 떠났다며 "그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최근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이하여 약사라는 직업은 미래에 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윤수빈 약사는 "전문가의 전문성은 책임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약에 대하여 책임지고 환자를 상담하는 건 AI가 할 수 없으니까. 변화된 시대에 맞춰 사람이 필요한 일을 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밝혔다.

장혜진 약사는 "약을 짓는 행위는 똑같을 수 있는데, 짓는 사람이 만약에 조금 더 환자를 위하는 마음으로 지으면, 영화같은 이야기겠지만 좀더 괜찮은 약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밝히며 미소를 지었다.

김희애 "힘들었던 시간들 다 담아두고 싶지는 않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연기, 노래, DJ, 개그 그리고 엄마이자 주부의 삶까지, 무엇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던 '영원한 특급누나' 김희애가 마지막 자기님으로 출연했다. 품격 넘치는 우아함에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겸비한 김희애는 1982년 데뷔 이래 하이틴스타를 거쳐 40여 년간 변함없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배우로 자리잡았다.

차기작 <퀸메이커>를 준비중인 김희애는 "촬영 현장이 음악으로 치면 재즈같았다"라고 표현하며 함께 공연한 문소리와 동료배우들을 극찬했다. 김희애는 "연기는 물론이고 너무들 열심히 준비를 잘 해왔다. 연기로 뭐를 줘도 이렇게 딱 받아주고 이런 재미가 있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JTBC 드라마에 단골로 출연하며 'J사의 1등공신'이라는 별명까지 생긴 김희애는, 전작인 치정멜로 <부부의 세계> 역시 28.4%라는 기록적인 시청률을 올리며 뜨거운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김희애는 "기록은 깨지기 위하여 있는 것"이라며 크게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 인기작 중에서 <재벌집 막내아들>을 인상깊게 봤다는 김희애는 특히 진양철 회장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이성민의 연기에 감탄하며 "대단한 배우"라고 극찬했다.

젊은 세대에게는 명품배우로만 알려졌지만 사실 김희애는 만능 엔터테이너의 원조 격인 인물이기도 하다. 이덕화와 함께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예능 MC로 활약했고 라디오 DJ와 가수로도 활동했다. 추억의 영상을 돌아보며 김희애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열심히 살았네요"라고 너스레를 떨며 "그런데 하고 나니 좋다. 이렇게 기록에 남아있고, 안 그랬으면 그냥 버리는 시간이었을 텐데"라며 미소를 지었다.

당시 라디오 DJ들의 기념 앨범 수록곡으로 김희애가 열창한 '나를 잊지말아요'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 3위까지 오를 만큼 뜨거운 인기를 누렸다. 또한 김희애는 당시의 학생들에게 인기 지표로써 '굿즈'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책받침 여신'으로 김혜수-소피 마르소-왕조현 등과 한 시대를 풍미했다.

처음부터 배우가 될 상상은 해보지 못 했다는 김희애는 고등학생이던 1982년, 학교 무용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의류광고 모델로 운명처럼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영화 <스무해 첫째날>로 처음 연기자로 데뷔하게 된 김희애는 20세에 첫 주연 드라마인 <여심>으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주목받는 배우의 반열에 올라선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반듯한 우등생 이미지와 달리 공부는 잘하지 못 했다는 김희애는 "공상과 딴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학창시절을 회상했다. 또한 이미지와 달리 술을 무척 즐기는 애주가라는 색다른 면모도 고백했다. "저는 모든 술맛을 다 안다. 특히 코냑의 향기를 맡으면 그 컵에다 코를 박고 싶다"며 텐션이 급격히 올라가는 반전 면모로 웃음을 자아냈다. 김희애는 "술을 마시면 너무 행복하다. 자연이 주신 선물이니까"라는 소신을 밝히며 "지금은 하루 일을 다 끝내고 내게 주는 선물처럼 즐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희애는 1993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아들과 딸>에서 후남 역을 열연하며 당시 국민적 응원을 받았다. <아들과 딸>은 당시 '남아선호사상'의 폐해를 정면으로 지적하며 큰 화제가 됐다. 특히 김희애가 연기한 후남이 딸이라는 이유로 같은 여성인 어머니에게 차별과 구박을 받는 모습은 수많은 시청자들, 특히 동시대 여성들의 절절한 공감을 얻었다.

그런데 김희애는 한창 인기를 누리던 1996년 돌연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며 약 7년간의 공백기가 있었다. 현재 20대 자녀들을 두고 있는 결혼 27년 차 주부가 된 김희애는 "우리 집 식구들은 엄마가 배우라고 인지를 안 하는 것 같다. 제가 출연한 작품도 잘 보지 않는다"라고 의외의 반응을 밝혔다.

언젠가 김희애가 엄마가 배우라서 불편한 상황을 겪지는 않는지 질문하자, 자녀들은 "전혀, 엄마는 배우라는 직업으로서 하는 건데 왜 그런 생각을 해?"라고 오히려 성숙하게 반응했다고. 김희애는 "그 적당한 무관심이 너무 고마웠다"며 미소를 지었다.

김희애는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인한 장기 공백기 동안 다른 배우들이 출연한 TV나 영화를 보며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거리감을 느꼈다는 일화를 털어놨다. "그때 일이란 건 생활의 수단인 동시에 굉장히 소중한 거구나"라고 깨달았다는 김희애는 7년의 공백을 거쳐 <아내>를 통하여 다시 연기활동에 복귀했다.

김희애는 "저한테 너무 소중한 작품이라 너무 귀하게 일을 했다. 사람이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게 굉장히 자존감을 키워준다. 일은 저에게 존재의 이유를 느끼게 해주는 거라 더 열심히 했다"고 고백했다.

착한 현모양처 이미지의 대명사였던 김희애는 <내 남자의 여자>에서는 친구의 남편을 빼앗는 불륜녀 이화영으로 파격 변신을 시도하며 연기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당시 김수현 작가의 제안으로 톡톡 튀는 현대여성 이미지의 대표주자였던 배종옥과 이미지를 서로 뒤바꾼 '역발상 캐스팅'은 신의 한 수가 됐다.

<아들과 딸>의 후남이 이후의 착한 역할로만 이미지가 고정되어 왔던 김희애는 "<내 남자의 여자> 덕분에 제 역할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고 자평했다. 김희애는 김수현 작가에 대하여 "카리스마가 있다"면서도 실제로는 굉장히 인간적이고 너무 멋진 분"이라고 극찬했다.

이어 김희애는 <나의 해방일지>를 보고 배우 손석구에 대한 팬심을 고백했다. 우연히 옆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하다가 인사를 하러 온 손석구와 사진을 찍은 일화를 밝히며 "매너가 좋고 센스가 있더라. 사진을 찍자고 하니 '저도 찍어도 될까요?'라고 하더라"며 자칫 쑥스러울 수 있는 선배의 체면을 살려준 손석구의 배려를 칭찬했다.

"제게 드라마는 선생님이자 학교였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데뷔 42년 차인 김희애의 연기인생에서 '드라마'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김희애는 "너무 힘들었고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고통스러웠던 만큼 지금의 저에게 행복을 줬다"고 회상하며 "제게 드라마는 선생님이자 학교였다. 덕분에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고 정의했다.

김희애는 "괴로웠다. 너무 어릴 때부터 해서. 하기 싫었던 적도 많다"면서도 "그 힘든 부분을 반드시 지나가야 한다. 그 힘듦만큼 성취감이 있고 행복이 오더라"고 회상했다. 이어 김희애는 "힘들었던 시간들을 다 담아두고 싶지는 않다"고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리다가 잠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힘들었던 제가 100% 올인하지 않으면 누가 제 작품을 사랑해줬겠나. 그런 마음으로 저로서는 최선을 다했던 지난 날이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김희애 특유의 나른하면서도 품위있는 독특한 말투와 연기톤은 김준호-김영철 등 수많은 코미디언들의 패러디와 성대모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김희애는 "내 거를 유심히 해주고 봐줬다는 게 고맙다"면서도 오직 김영철에게만큼은 미묘한 감정을 드러내 폭소를 자아냈다.

"약간 뒷담화같기도 하면서, 뭔가 다르다"고 의미심장한 평가를 내린 김희애는 "그래도 결론은 최선을 다하는 게 귀엽다. 귀엽자나~"라고 본인의 유행어로 좋게 마무리했다. 다만 "살은 좀 붙이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자기 흉내를 내서 좋아한다는둥, 그런 말을 하지 말라. 그건 아니다"라고 김영철을 향한 뼈있는 경고도 덧붙였다.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공격적으로 제 삶에 더 집중해서 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동안 우직할만큼 일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삶의 밸런스를 잘 유지하고 싶다는 것. "허무하더라. 일이 끝나고 나면 다 지나가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저의 행복이고, 시청자들도 '건강한 김희애'를 원하지, 어둡고 찌그러진 배우의 캐릭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희애는 "저도 한 인간으로서 온전히 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된 후, 그 다음에 배우로 서는 거고, 그래야 더 좋은 연기도 나올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혼란스럽고 좌충우돌의 20대를 보냈다는 김희애는 "그래서 지금의 자신이 너무 좋다"면서 한편으로 자기관리를 잘하는 똑똑한 젊은 세대에 대한 부러움도 드러냈다.

"배우가 아닌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껍데기만 남아있는 느낌이 늘 괴로웠다"고 회상한 김희애는 "일찍 일어나고 공부를 하는 사소한 루틴들로 자신을 찾아가기 시작하면서 연기도 더 잘되더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밝혔다.

김희애는 "인간 김희애로서 바로 설 수 있게 되니까. 그전의 빛이 안은 썩고 비어있는 가짜 빛이었다면, 지금은 빛이 안 나도 제 속은 힘이 생겼다. 지구의 땅을 밟고 서 있는, 이제야 진짜 좋은 인간이 된 것 같다"며 배우로서도 인간으로서도 한층 성숙해진 현재의 삶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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