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시집 <가재미>를 통해 느끼는 성찰과 위로

이준만 2023. 4. 1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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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만 기자]

시집 읽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내 주변에서는 시집 읽는 이가 거의 없는 듯하다. 주변에서 소설 읽는 사람을 본 적은 많은데, 시집 읽는 사람을 본 적은 손에 꼽을 만하다. 어려워서일까? 학생들과 수업하다 보면 학생들이 시를 어려워한다.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단다.

학생들은 시를 공부하고 나서 시험을 치러야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시험 볼 게 아니라면, 그냥 시를 시 그 자체로 오롯이 느끼면 된다. 오롯이 느끼며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가슴에 가만히 새기면 된다. 시 읽기의 시작이다. 이렇게 읽다 보면 자신만의 시 독법이 생길 터이다.
 
 시집 <가재미> 표지
ⓒ 이준만
 
각설하자. 서론이 길었다. 문태준 시인의 시집 <가재미> 이야기를 해 보자. 어느 평론가가 문태준 시인을 '2000년대 이후 최고의 서정 시인'이라고 평했다. '최고'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겠으나, 문태준 시인의 시에서 누구나 서정성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헌데 <가재미>를 읽다 보면 서정성은 물론이려니와 때로는 성찰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위로를 받기도 한다.

반쯤 감긴 눈가로 콧잔등으로 골짜기가 몰려드는 이 있지만 / 나를 이 세상으로 처음 데려온 그는 입가 사방에 골짜기가 몰려들었다 / 오물오물 밥을 씹을 때 그 입가는 골짜기는 참 아름답다 / 그는 골짜기에 사는 산새 소리와 꽃과 나물을 다 받아먹는다 / 맑은 샘물과 구름 그림자와 산뽕나무와 으름덩굴을 다 받아먹는다 / 서울 백반집에 마주 앉아 밥을 먹을 때 그는 골짜기를 다 데려와 / 오물오물 밥을 씹으며 참 아름다운 입가를 골짜기를 나에게 보여준다 - 시, '노모(老母)' 전문

입가 주변이 온통 주름으로 가득한 늙은 어머니가 오물오물 밥을 씹는 모습을 보고 참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이 참으로 서정적으로 전해져 온다. '그렇지, 그렇지. 어머니의 주름이 아름다울 수 있지.' 시인의 생각에 공감을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우리 늙은 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한테 미안한 마음이 여울져 온다. 나뿐만은 아니리라. 어머니께 전화라도 자주 드려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 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 그녀는 죽음만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 (중략) /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 시, '가재미' 일부

'그녀'가 누구인지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어머니이지 싶다. 가재미처럼 바짝 말라버린 그녀 옆에 화자도 가재미가 되어 나란히 눕는다. 화자는 '그녀'의 자식일 텐데, 암 투병 중인 어머니에 대한 자식의 안쓰러운 마음을 이보다 더 웅변할 수는 없을 성싶다. 가재미가 된 어머니처럼 바짝 말라버린 채 어머니 곁에 눕겠다니 말이다.

하지만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마음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다. '그녀'는 자식의 마른 몸을 걱정하며 물을 적셔준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어머니는 못할 게 없는 존재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산소호흡기로 물을 들이마실 수도 있다. 팍팍한 세상에 어머니의 사랑을 떠올려 보라.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 또 있겠는가.

단 하나의 잠자리가 내 눈앞에 내려앉았다 / 염주알 같은 눈으로 나를 보면서 / 투명한 날개를 수평(水平)으로 펼쳤다 / (중략) / 나는 생각의 고개를 돌려 좌우를 보는데 / 가문 날 땅벌레가 봉긋이 지어놓은 땅구멍도 보고 / 마당을 점점 덮어오는 잡풀의 억센 손도 더듬어보는데 / 내 생각이 좌우로 두리번거려 흔들리는 동안에도 / 잠자리는 여전히 고요한 수평이다 / 한 마리 잠자리가 만들어놓은 이 수평 앞에 / 내가 세워놓았던 수많은 좌우의 병풍들이 쓰러진다 / 하늘은 이렇게 무서운 수평을 길러내신다 - 시, '수평(水平)' 일부

잠자리는 날개를 수평으로 펼친 후 고요히 수평을 유지하고 있다. 화자의 생각은 계속 흔들리고 있고 화자가 만들어놓은 병풍들은 수평 앞에 무너져 내린다. 잠자리의 수평 앞에 화자의 수직이 쓰러지는 형국이다. 고요히 수평을, 균형을 유지하는 동료가 있다.

그의 수평을 바라보면서도 나는 여전히 나의 병풍을 붙들고 있다. 언제쯤 하늘이 길러낸 수평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가 붙들고 있는 병풍 때문에 불편해하는 사람들을 보며, 내 마음이 언짢아진다. 그러나 여전히 병풍을 허물지는 못하고 있다. 아, 참 못났다.

뜰이 고요하다 / 꽃이 피는 동안은 // 하루가 볕바른 마루 같다 // 맨살의 하늘이 / 해종일 / 꽃 속으로 들어간다 / 꽃의 입시울이 젖는다 // 하늘이 / 향기 나는 알을 / 꽃 속에 슬어놓는다 // 그리운 이 만나는 일 저처럼이면 좋다 - 시, '꽃이 핀다' 전문

그리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모름지기 이래야 할 듯하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하늘이 꽃 속으로 들어가 향기 나는 알을 넣어 놓는 것처럼, 정성을 다해야 할 듯하다. 나에게 이처럼 정성을 다해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꽉 찬다. 세상이 아무리 팍팍해도 이런 사람들을 떠올리면 위로가 된다. 하루에 한 번쯤, 어느 구석진 곳으로 가서, 마음을 고요히 하고 그리운 사람들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겠다.

문태준의 시집 <가재미>를 한번 읽어 보시라.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팍팍한 가슴에 한 줄기 서정의 샘물이 솟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성찰을 하든 위로를 받든 아니면 또 다른 어떤 감정을 느끼든 하면서 새로운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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