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기에 4월도 늦지 않았다

이정희 2023. 4. 1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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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다시 시작하는 너에게> , <비 오니까 참 좋다>

[이정희 기자]

해가 바뀌면 라디오에서는 새해 결심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면, 슬쩍 작심삼일이란 사자성어가 등장한다. 아직 '구정'이 아니니 새해가 아니란 자구책도.

그 중 재밌었던 이야기는 새해도 지나고, 구정도 놓치면, 삼월은 신학기니까 그때가 적기가 되고, 삼월이 안되면 꽃 피는 사월이 딱이라고. 마음만 먹으면 그 언제라도 '시작'할 수 있다는 거겠지. 벚꽃 놀이철인가 싶었는데 모진 비바람이 치곤 한다. 봄이 끝났나? 그런데 꽃이 지니 비로소 연두색의 잎들이 드러난다. 그 여리여리한 연두빛을 눈녹색이라고 하는데 아시는지. 눈녹색의 잎들이 화사하게 물드는 계절, 다시 시작이다.
 
 책 <다시 시작하는 너에게>
ⓒ 북뱅크
머뭇거리거나 주춤거리고 있는 당신에게 

하타 고시로가 그림을 그린 두 권의 그림책을 소개하겠다. 그 중 한 권이 하타 고시로가 그림을 그리고 유모토 가즈미가 글을 쓴 <다시 시작하는 너에게>이다. 

하타 고시로의 그림은 아름답고 친숙하다. 최근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을 만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이 떠오르는 그림체에, 그림책의 구성도 흡사 한 편의 애니메이션 같은 짜임새를 가진다.

4월이 떠오르는 파란 하늘과 푸르른 들판을 건너 소녀가 커다란 나무를 타오른다. 높은 가지로 올라간 소녀, 거기에 유모토 가즈미의 글이 얹힌다.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이 나무는 얼마나 더 자라있을까.' 아이가 올라선 나무가 내려다 본 세상에는 이제 더는 날지 않는 비행기 위로, 폐허가 된 건물 위로 푸르른 잎들이 번져가고 있다.

'하늘이 지금처럼 파랄까'라는 작가의 언어를 하타 고시로의 그림이 무한 확장시킨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세상은 정말 어떨까? 석유문명이 고갈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했던 에니메이션 <미래 소년 코난>의 상상력을 맞먹는다.
 
 책 <다시 시작하는 너에게>
ⓒ 북뱅크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소녀, 아이들로 북적이는 학교,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너는 남몰래 혼자 울기도 하겠지. 그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 그런데 혼자 울 일이 어른이 되었을 때 뿐일까, 그림은 말해준다. '생각지도 못한 슬픔, 생각지도 못한 기쁨, 삶이란 생각지 못한 일들로 가득찬 숲', 녹음이 우거진 그 끝을 알 수 없는 인생의 숲, 그런데 소녀는 성큼성큼 그곳으로 향한다.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너는 언제든 달려가 쉬고 싶은 장소'는 하얀 백사장의 파란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곳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다시 시작하는 너에게'라고 말을 건네는 이는 누구일까?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나는 먼 곳에 있을 지도 몰라. 너에게 이렇게 말 건넬 수 없을 만큼 멀리', 그 이는 말한다. '그래도 아침을 깨우는 새들은 노래하겠지. 수억 밤을 지나 단 한번 뿐인 오늘이 시작되는 그 신비로움을' 그런데 그 신비로운 순간, 소녀는 마치 <진격의 거인> 속 끝없는 방벽 같은 담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오늘'이란 그런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선물'같은 하루이지만, 그 시간은 그림책 속 소녀의 모습처럼 위태로운 순간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역설적 장면이 보여주는 '삶', 그런데 그 위태롭게 벽에 대롱거리던 소녀는 다음 페이지에서 새처럼 훌쩍 날아 그 벽을 뛰어내린다. 거침없이 거리를 달린다.

그림책 속 소녀는 에니메이션 속 활달한 주인공처럼 나무에도 올라가고, 숲으로 성큼성큼 내딛고, 높은 방벽도 오르지만, 사실, 진짜 '너'는 삶이란 숲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림책의 제목이 <다시 시작하는 너에게>가 아닐까.

뒷걸음치거나, 혹은 머뭇거리고 있는 이에게 어떤 말을 전하면 좋을까? 흔히 우리는 '다 잘 될 거야'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말을 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안다. '다 잘 되는 삶'은 없다는 것을. <다시 시작하는 너에게>를 권해보면 어떨까. '어른'이 된 그 시간이 어떨지는 몰라도, 아니 '어른'이 될 그때까지는 커녕, 지금 당장도 삶이 만만하진 않겠지만,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노라면 그래도 살아볼만하지 않은가라는 '공감'을 느끼도록 만들테니.
 
 책 <비오니까 참 좋다>
ⓒ 나는 별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또 한 권의 그림책은 오나리 유코가 글을 쓴 <비오니까 참 좋다>이다. 비오는 날에 대한 그림책은 참 많다. 그렇게 많은 '비' 그림책 중 <비오니까 참 좋다>는 어떨까?

앞서 <다시 시작하는 너에게>가 그래도 살아볼만한 '공감'을 느끼게 해줄거라 했다. 거기에는 울림이 있는 유모토 가즈미의 글도 글이지만, 푸른 하늘, 파란 바다, 하얀 구름, 그리고 그 속에서 머리를 나풀거리며 바람을 맞는 소년과 소녀에게서 느껴지는 '생기'가 큰 몫을 차지하지 않는가라고 생각해 본다.

마찬가지로 <비오니까 참 좋다> 역시 '통 토동 통통 토동' 리드미컬한 오나리 유코의 글(그리고 그걸 실감나게 번역해준 황진희 작가)을 더 실감나게 표현해준 하타 고시로 그림의 몫이 크다 하겠다.
 
 책 <비오니까 참 좋다>
ⓒ 나는 별
'빼꼼', 집 밖으로 나온 아이, '어휴, 더워! 땅이 뜨끈뜨끈', <귀를 기울이면>이나, <섬머 위즈> 같은 영화를 보면 착각하게 된다. 우리나라보다 위도상 남쪽인 일본이 상식적으로 훨씬 더 덥고 습할 텐데도, 그곳의 여름이 청량하다고. 보는 이로 하여금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름답게 묘사된 풍광, <비오니까 참 좋다>도 그렇게 파란 하늘에 뭉게뭉게 구름이 피어오르며 시작된다. 그런데 하얀 구름이 회색빛으로, 다시 시커멓게 돌변하더니 '톡!, 톡! 톡!' 비다!'

미세먼지가 가득했던 날의 비에서 '먼지' 냄새를 느껴본 적이 있는지, 그 냄새가 이 시대의 '하늘 냄새'일까? 그림책은 '하늘 냄새', '땅 냄새'를 하늘과 땅을 잇는 빗방울로 표현해낸다. '토옹 통' 우산은 북도 되고, '우다닥 다다다다닥', 온세상에 가득 찬 비의 노랫소리. 하타 고시로는 '소리'를 그림으로 전한다. 거친 비에 우산이 무색해진 소년은 빗속으로 뛰어든다. '첨벙 처엄벙 처~얼썩!'

'그래, 주륵주륵 내려! 세게, 더 세게! 나한테 와봐!' 그 빗속에 온전히 자신을 맡긴 절정의 순간, 비와 함께 하는 소년의 시간이 그대로 보는 이의 시간으로 젖어든다.

'카타르시스', <비오니까 참 좋다>가 표현한 비오는 날은 이 표현이 가장 적절할 듯하다. 많은 '비' 그림책들이 말하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이 시간을. 그런데 그 중에서도 그 즐김의 쾌감에 있어 하타 고시로의 그림은 발군이다. 구구절절 의미부여보다, '기꺼이 즐겁게! 이 시간을', 책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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