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기에 4월도 늦지 않았다
[이정희 기자]
해가 바뀌면 라디오에서는 새해 결심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면, 슬쩍 작심삼일이란 사자성어가 등장한다. 아직 '구정'이 아니니 새해가 아니란 자구책도.
▲ 책 <다시 시작하는 너에게> |
ⓒ 북뱅크 |
하타 고시로가 그림을 그린 두 권의 그림책을 소개하겠다. 그 중 한 권이 하타 고시로가 그림을 그리고 유모토 가즈미가 글을 쓴 <다시 시작하는 너에게>이다.
하타 고시로의 그림은 아름답고 친숙하다. 최근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을 만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이 떠오르는 그림체에, 그림책의 구성도 흡사 한 편의 애니메이션 같은 짜임새를 가진다.
4월이 떠오르는 파란 하늘과 푸르른 들판을 건너 소녀가 커다란 나무를 타오른다. 높은 가지로 올라간 소녀, 거기에 유모토 가즈미의 글이 얹힌다.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이 나무는 얼마나 더 자라있을까.' 아이가 올라선 나무가 내려다 본 세상에는 이제 더는 날지 않는 비행기 위로, 폐허가 된 건물 위로 푸르른 잎들이 번져가고 있다.
▲ 책 <다시 시작하는 너에게> |
ⓒ 북뱅크 |
그런데 '다시 시작하는 너에게'라고 말을 건네는 이는 누구일까?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나는 먼 곳에 있을 지도 몰라. 너에게 이렇게 말 건넬 수 없을 만큼 멀리', 그 이는 말한다. '그래도 아침을 깨우는 새들은 노래하겠지. 수억 밤을 지나 단 한번 뿐인 오늘이 시작되는 그 신비로움을' 그런데 그 신비로운 순간, 소녀는 마치 <진격의 거인> 속 끝없는 방벽 같은 담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오늘'이란 그런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선물'같은 하루이지만, 그 시간은 그림책 속 소녀의 모습처럼 위태로운 순간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역설적 장면이 보여주는 '삶', 그런데 그 위태롭게 벽에 대롱거리던 소녀는 다음 페이지에서 새처럼 훌쩍 날아 그 벽을 뛰어내린다. 거침없이 거리를 달린다.
그림책 속 소녀는 에니메이션 속 활달한 주인공처럼 나무에도 올라가고, 숲으로 성큼성큼 내딛고, 높은 방벽도 오르지만, 사실, 진짜 '너'는 삶이란 숲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림책의 제목이 <다시 시작하는 너에게>가 아닐까.
▲ 책 <비오니까 참 좋다> |
ⓒ 나는 별 |
또 한 권의 그림책은 오나리 유코가 글을 쓴 <비오니까 참 좋다>이다. 비오는 날에 대한 그림책은 참 많다. 그렇게 많은 '비' 그림책 중 <비오니까 참 좋다>는 어떨까?
앞서 <다시 시작하는 너에게>가 그래도 살아볼만한 '공감'을 느끼게 해줄거라 했다. 거기에는 울림이 있는 유모토 가즈미의 글도 글이지만, 푸른 하늘, 파란 바다, 하얀 구름, 그리고 그 속에서 머리를 나풀거리며 바람을 맞는 소년과 소녀에게서 느껴지는 '생기'가 큰 몫을 차지하지 않는가라고 생각해 본다.
▲ 책 <비오니까 참 좋다> |
ⓒ 나는 별 |
미세먼지가 가득했던 날의 비에서 '먼지' 냄새를 느껴본 적이 있는지, 그 냄새가 이 시대의 '하늘 냄새'일까? 그림책은 '하늘 냄새', '땅 냄새'를 하늘과 땅을 잇는 빗방울로 표현해낸다. '토옹 통' 우산은 북도 되고, '우다닥 다다다다닥', 온세상에 가득 찬 비의 노랫소리. 하타 고시로는 '소리'를 그림으로 전한다. 거친 비에 우산이 무색해진 소년은 빗속으로 뛰어든다. '첨벙 처엄벙 처~얼썩!'
'그래, 주륵주륵 내려! 세게, 더 세게! 나한테 와봐!' 그 빗속에 온전히 자신을 맡긴 절정의 순간, 비와 함께 하는 소년의 시간이 그대로 보는 이의 시간으로 젖어든다.
'카타르시스', <비오니까 참 좋다>가 표현한 비오는 날은 이 표현이 가장 적절할 듯하다. 많은 '비' 그림책들이 말하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이 시간을. 그런데 그 중에서도 그 즐김의 쾌감에 있어 하타 고시로의 그림은 발군이다. 구구절절 의미부여보다, '기꺼이 즐겁게! 이 시간을', 책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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