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장송곡 따라 불러요"…대기업 사옥 앞, 왜 '혐오 시위판' 됐나
해당 기업 직원 뿐 아니라 인근 시민·행인들까지 피해
기업 법적 대응에는 '꼼수' 동원해 피해가기
혐오스런 문구들로 가득한 현수막, 장송곡이 흘러나오는 고성능 스피커, 인도를 무단 점거한 불법 시설물들. 최근 서울시내 주요 대기업 사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삼성 서초사옥과 현대자동차 양재사옥, 한화 장교빌딩 등 주요 대기업 사옥 앞에서 벌어지는 무분별한 집회와 시위로 해당 기업 직원들은 물론, 인근 주민, 행인들까지 극심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연일 반복되는 고성능 확성기 소음에 따른 스트레스는 일상이 됐고, 인도에 무단으로 설치된 불법 천막 탓에 다수 보행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사옥 인근 도로 곳곳에 설치된 현수막과 보행로를 가로 막은 불법 천막은 교통사고 위험까지 높인다.
기업들은 사실 왜곡이나 명예훼손 및 모욕성 내용을 담은 현수막과 띠지 등으로 인한 기업 신뢰도 하락을 우려해 법적 대응에 나서보기도 하지만 법망을 피해가는 교묘한 시위 수법으로 인해 무용지물이다.
삼성 서초사옥이 위치한 서울 강남역 주변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진행되는 집회 시위로 인해 피해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고음의 장송곡 등 집회 소음은 기업은 물론 불특정 다수 시민들에게 불편을 넘어 불쾌감까지 주고 있다.
강남역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 씨는 “매일 반복되는 스피커 소리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시위 대상이나 내용과 상관이 없는데 왜 시달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그룹 사옥 주변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위도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큰 피해를 끼치고 있다.
판매대리점과 판매용역계약을 맺고 신차를 판매하다 계약 해지된 A씨는 본인 계약 해지와 무관한 기아를 향해 복직을 시키라며 10년 이상 막무가내식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현대차그룹 한 직원은 “10년 이상 매일같이 소음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 스트레스는 겪어본 사람만 안다”며 “주변에 식욕부진, 불면증, 신경쇠약 등을 호소하는 직원들도 있다”고 말했다.
한화그룹은 본사 장교빌딩에 입주한 서울고용노동청을 상대로 시위를 벌이는 이들로 인해 엉뚱한 피해를 입고 있다.
시위 소음을 견디다 못한 장교빌딩 입주사들은 최근 “장교빌딩은 고용노동청 단독 건물이 아니고 200여개의 입주업체가 있는 집합건물입니다. 시위로 인한 불편 및 고성방가로 개인재산권 침해 및 업무상 피해가 막대하니 시위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KT, 쿠팡등 다수 기업들의 사옥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에도 소음과 현수막, 천막 등이 등장해 기업과 인근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다.
이같은 집회 소음으로 인한 근처 어린이집의 피해는 특히 심각하다. 대기업들 사옥 내 직장어린이집은 물론, 인근 주거지역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낮잠을 자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장송곡을 따라 부르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한 직장 어린이집 관계자는 일부 어린이가 큰 소리가날 때마다 놀라는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고충을 호소했다.
집회 및 시위에관한 법률(집시법)은 교육시설인 초·중·고등학교 주변에서 집회로 인한 학습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으면 집회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어린이집은 교육시설에 포함되지 않아 집회로 인한 소음 피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시위자들이 설치한 현수막과 천막 등이 차량과 보행자의 이동에 불편을 초래하거나 안전을 위협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현대차그룹 인근 보행로는 출퇴근 시간마다 유동인구가 많이 몰리는 곳으로, 사옥 앞 시위자가 이곳에 천막을 설치하면서 혼잡이 가중되고 있다.
이 시위자가 도로 옆에 세운 배너형 현수막 등은 인근 사거리를 운행하는 차량의 안전까지 위협한다. 인근 고속도로 IC에서 진출한 차량이 전방에 위치한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할 때 불법 시위 천막과 배너형 현수막 등이 운전자의 시야를 가려 교통사고를 유발할 위험성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의 한 택시기사는 “운전자 시야를 방해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의 시위에 누가 공감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같은 막무가내식 시위의 가장 큰 피해자는 기업이다. 시위자들이 내건 혐오적 문구로 기업 이미지가 떨어지는 상황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형편이다.
시위자들은 자극적 상황을 연출할수록 전시효과도 크고 기업을 협상장으로 끌어들일 여지가 높다는 점을 노려 날이 갈수록 더 과격한 시위 행태를 보이고 있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모욕적인 내용이 담긴 형형색색의 현수막을 내걸고, 심할 경우에는 상여나 감옥 모형 등의 소품을 동원해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한다.
보다 못해 사실 왜곡과 명예훼손 등에 대응해 법적 대응에 나서는 기업들도 있지만, 법적 절차 진행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설령 기업이 승소하더라도 피해는 계속된다. 시위자는 법원이 지적한 표현만 수정한 후 현수막을 새로 제작해 시위를 재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법적 집회 소음 기준으로는 현실적으로 규제가 어렵다. 공권력이 불법 시위를 제어하는 역할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차그룹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A씨는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에서 대부분 패소했지만, 여전히 시위를 전개하고 있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는 무분별하고 자극적인 시위로 인한 신뢰도 및 이미지 하락을 근원적으로 방지할 수단이 없는 셈이다.
개별 기업들의 신뢰도 및 이미지 하락은 국가 이미지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대기업 사옥은 해외 거래처 관계자들의 방문이 잦고 외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도심지에 위치해 있어 무분별한 시위와 자극적 현수막 등은 해당 기업은 물론국가 이미지까지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외국 파트너사 클라이언트들이 시위 현수막을 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묻는 경우가 자주 있다”면서 “상황을 설명해 이해를 시키는 것도 껄끄러운 일이지만, 아예 질문을 하지 않거나 외국 관광객처럼 설명할 기회가 없는 경우 회사는 물론 한국에 대해 나쁜 인상을 가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처럼 막무가내식 시위의 폐해를 막고 올바른 시위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현행 집시법 개정을 통해 피해자들이 실질적인 대응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현행법은 시위에 따른 피해자보다 시위자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편”이라며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보장하되 이 과정에서 기업이나 일반 시민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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