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의 문화의 창] 우리 생애 다시 없을 백자의 대향연

2023. 4. 13. 01: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리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조선의 백자, 군자(君子)지향’(5월 28일까지)은 조선백자의 명품 185점이 전시된 사상 최대 규모의 특별전이다. 조선백자 중 국보·보물로 지정된 유물은 총 59점인데, 그중 절반이 넘는 31점이 전시되어 있다. 이를 위하여 리움미술관 자체 소장품뿐만 아니라 국립중앙박물관, 호림박물관, 이화여대박물관, 간송미술관, 서울역사박물관, 부산박물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국립경주박물관 등의 명품들이 총출동하였고, 일본의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도쿄국립박물관, 이데미츠미술관, 야마도문화관, 일본민예관, 고려미술관, 거기에다 개인소장의 비장품들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 역대 최대 규모의 백자전
유명 컬렉션들의 총집결
초기·중기·후기 미감의 변화
K컬처의 원류로서 백자

이 전시회를 보면서 나는 세 번 놀랐다. 첫 번째는 박물관을 운영해 본 입장에서 이렇게 많은 유물을 대여하기 위해 지불한 보험료가 도대체 얼마일까 상상도 가지 않는 것이었다. 이런 방대한 규모의 전시는 모르긴 해도 우리 생애엔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두 번째 놀라움은 감상자 입장에서다. 모든 유물을 독립 진열장에 전시하여 사방에서 전모를 볼 수 있게 디스플레이했다. ‘백자청화 조어문 떡매병’에서 낚시꾼을 그린 뒷면에는 한 쌍의 오리가 아름답게 그려진 것을 처음 보았다. 그러면서 또 생각게 되는 것은 도대체 이 전시회 디스플레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예산이 책정되었을까 하는 놀라움과 부러움이었다.

‘백자청화 인물문병’ 19세기, 높이 20㎝, 개인 소장.

세 번째 놀라움은 이렇게 명품들을 한 자리에 놓고 보니 조선백자의 다양한 아름다움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다. 순백자, 코발트 무늬의 청화백자, 갈색 무늬의 철화백자, 화사한 붉은 빛 무늬의 동화(銅畫)백자, 거기에 지방 가마의 소탈한 도예품까지 한데 어우러져 차분한 가운데 은은히 풍겨오는 조선 선비문화의 ‘군자지향’을 절감케 한다.

조선백자 500년 역사는 시대마다 독특한 미적 특질을 보여준다. 도자기 아름다움의 세 가지 관점인 빛깔, 기형, 문양이 시대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조선 전기 백자는 새로운 이상 국가를 건설하는 왕실과 사대부의 기상이 들어 있다. ‘백자청화 매죽문 항아리’에서 보이듯 아이보리 백색에 기형이 당당하고 매화 문양에 기품이 있다. 한마디로 귀(貴)티가 역력하다.

조선 중기의 백자는 ‘백자청화 사군자문사각병’에서 보이듯 따뜻한 유백색에 기형은 단아하고 대나무·난초가 소담하게 그려져 있어 조선 선비의 취향을 여실히 느끼게 한다. 한마디로 문기(文氣)가 가득하다.

조선 후기의 백자는 ‘백자청화 모란문 병’에서 보이듯 푸르름을 머금은 백색에 기형은 푸짐하고 문양은 화려하다. 한마디로 부(富)티가 넘쳐흐른다. 그리고 이러한 조선백자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한 몸에 지닌 것이 저 유명한 ‘백자 달항아리’다.

개인적으로 임진왜란 이전 조선 전기의 청화백자들이 정녕 이렇게 아름다운 줄 미처 몰랐다. 한국 미술사에서 조선백자의 전성기는 대체로 18세기 영정조 시대 분원리 가마 때라고 생각되고 있지만, 조선 전기의 ‘백자청화 매죽문항아리’들이 오히려 절정이 아닐까 하는 인상을 준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사랑스러운 작품을 꼽으라고 하면 버드나무에 매단 그네를 뛰는 처녀를 귀엽게 그려 넣은 ‘백자청화 인물문 병’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생활용기 중 백자를 능가하는 것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 처음 시작된 백자는 15세기 조선왕조가 이어받았고, 뒤이어 16세기엔 베트남의 안남백자, 17세기엔 일본의 아리타 야끼, 18세기엔 독일 드레스덴의 마이센 백자를 필두로 전 유럽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백자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모든 나라가 화려함을 지향하여 백자 위에 에나멜 안료로 채색을 가한 유상채(釉上彩)와 금속기까지 결합하여 기발함을 추구하고 있을 때, 조선은 변함없이 품위 있고, 단아하고, 넉넉한 여백의 미를 보여주는 고고한 백자의 세계로 나아갔다. 이것이 한국미의 특질이다.

한류가 세계로 퍼져나가는 K컬처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우리 것을 기반으로 하면서 세계 문화를 소화하여 다시 세계로 나아간 것임을 생각할 때,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은 어제의 미학이 아니라 오늘날에서 작용하는 우리의 미의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비근한 예로 지금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단색조 회화’의 뿌리가 조선백자에 있다고 하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군자지향’의 DNA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몸속에 흐르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이 사상 최대의 조선백자 대향연이 더욱 자랑스럽게 다가오기만 한다.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 교수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