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민의 퍼스펙티브] “인권보호는 철저히, 임금·고용 체계는 다양화할 필요”
외국인 가사 도우미 제도가 성공하려면
통계청 집계에 의하면 작년 한해동안 직장을 포기한 경력단절 여성은 139만7000명이다. 전체 맞벌이 가구수 582만3000가구(2021년)에 견주면 상당히 높은 비중이다. 단절 사유의 65.5%가 육아 및 임신·출산 때문이다. 월 230만~250만원(입주시 표준요금)의 비용은 어지간한 고소득 연봉자가 아니면 부담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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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 200만~300만원 감당할 맞벌이 부부 얼마나 될까”
“최저임금 보장하고 맞벌이 가정엔 정부가 비용 지원”
“한국 시장의 임금 경쟁력 없으면 다른 나라로 갈 것”
독일, 최저임금 보장하나 임금 편차, 자유 계약도 허용
」
전문가들은 육아·가사에 가족 돌봄까지 고스란히 여성에게 떠넘기는 전근대적인 인식·문화와 고비용 구조를 바꾸지 않고선 저출산(0.78명)의 국가적 위기에서 탈출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마이클 크레이머 미 시카고대 교수도 “한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외국인 체류자 비율도 낮고 일하지 않는 여성도 많다”며 외국인 가사 도우미 도입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정부는 식당·공장·농촌 등에 제한적으로 허용해온 외국인 인력을 청소·가사·육아의 직역으로 확대하는 시범사업을 올해 중 시행한다. 현재는 중국 동포와 결혼이민자, 거주·영주권을 가진 외국인에게만 가사 도우미 취업을 허용하고 있다.
코로나 겪으며 불법 고용 늘어
외국인 가사 도우미 도입 필요성이 처음 제기된 건 아니다. 기획재정부는 2016년 고용허가제 대상 국가에 대해 가사·돌봄 업종까지 허용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일자리 침해 가능성과 임금이 높은 타업종으로의 불법 이동, 인권 침해 등에 대한 우려로 진전을 보지 못했다. 2021년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면서는 그마저 논의가 중단됐다. 가사 근로자도 최저임금·사회보험·퇴직금 등을 보장받게 되면 ▶내국인 도우미 인력이 늘어나 외국인력 도입이 불필요해지고 ▶외국인에게도 최저임금을 똑같이 적용하면 비용절감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현실을 도외시한 탁상공론이었다. 특히 코로나로 중국 동포의 입국이 어려워져 공급이 달리자 도우미 월급이 치솟고 외국인 불법 고용이 음성적으로 이뤄지는등 부작용과 어려움이 가중됐다. “가사노동 시장도 노동집약적인 다른 업종과 마찬가지로 내국인만으론 수요를 채울 수 없는 만성적인 공급 부족시장인데도 ‘가사=여성의 일’이라는 인식 때문에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탓”(청소 서비스 소개업체 대표)이란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오세훈 서울시장은 국무회의에 참석해 “아이 때문에 일과 경력을 포기하는 경우를 최소화해야 한다”며 외국인 육아 도우미 정책 도입을 제안하기도 했다.
“저가 항공 생겨 기존 항공사 망했나”
숙제는 한둘이 아니다. 언어·인종·문화의 차이로 인한 마찰과 갈등, 인권침해 논란, 불법 체류에 대비한 정교한 매뉴얼과 시스템이 전무한 상태다. 최저임금 논란은 첨예한 이슈다. 조정훈 의원은 “월 100만원이란 건 상징적 금액”이라며 “청년세대가 여건에 맞는 가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가사 도우미 시장을 다양화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Q :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ILO협약 위배 아닌가.
A : “중국 동포나 입주 도우미를 쓰려면 월 200만~300만원을 줘야하는데 이걸 감당할 수 있는 청년 맞벌이 부부가 얼마나 될까. 이건 고액 연봉자들에게만 유용한 시장이다. 최저임금 제외는 현실적 선택이다. 근로관련법 적용을 받는 ‘사용자’ 대신 ‘가사사용인’이란 개념을 사용하면 논란을 피할 수 있다.”
Q : 여성 이주 노동자에 대한 반인권적 노동 착취란 지적이 있다.
A : “외국인 도우미와 한국 가정이 1대 1로 서로 합의한 조건으로 노동 계약을 맺는 것을 착취라고 할 수 없다. 우리 부모님 세대도 간호사·광부·건설 노동자로 일했지만 이걸 착취당했다고 하나.”
Q : 가사노동을 형편없는 것으로 평가절하했다는 비판에 대한 입장은.
A : “가사노동을 폄하하는게 아니다. 모든 노동은 다 소중하지만 가사와 육아 비용 부담 때문에 경력단절을 할 수밖에 없는 여성이 한해 139만명이나 되는 건 문제 아닌가.”
Q : 한국인 가사 도우미의 일자리를 잠식하고 값을 떨어뜨릴 것이란 우려도 있다.
A : “저가 항공이 생겼다고 기존 항공사들이 망했나. 오히려 저가 시장이란 새로운 시장이 생겼다. 외국인력이 들어오면 가사노동 시장이 다양해질 것이다. 언어·문화 장벽이 없는 내국인에 대한 선호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근로조건 따라 시니어들 관심 기대”
노동계와 여성단체들이 10여년간 공들인 끝에 가사 도우미를 ‘노동자’로 인정한 ‘가사근로자법’이 지난해 시행에 들어갔다. 법 제정에 앞장서온 최영미 가사·돌봄 유니온 위원장은 “외국 근로자 유입에 반대하지 않지만, 정책의 마지노선은 최저임금과 근로자의 권익 보호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Q : 외국인 가사 도우미 허용 사업이 실시된다.
A : “그게 필요한 사각지대가 어딘지, 외국인 도우미가 왜 필요한지, 실태 조사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일손이 달리는 건 근로조건이 너무 안 좋기 때문이다. 가사도우미로 아무리 일해봤자 승진도 못하고 월급이 올라가지 않으니 누가 하겠나. 건강한 시니어들이 일하고 싶은데 대우 못받고 돈도 제대로 못받으니 못 들어오는 것이다. 근로조건만 개선하면 시니어들이 (도우미로) 일할 수 있다.”
Q : 중산층이 비싼 임금을 감당할 수 있나.
A : “정부가 일하는 여성, 맞벌이 가족을 위해 (도우미 사용) 비용을 지원한다든가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100만원 주고 들여온다 해도 중하층들이 쓸 수 있을까. 자영업자·비정규직들은 이마저 혜택도 못 받을 것이다. 사실 야근 많고 수입 적은 계층에 가사 도우미가 우선 혜택 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 노동자 입장에서도 최저임금은 기본적 생계를 보장하는 기준이다.”
Q : 가사노동은 특성상 표준화가 어려워 고용 형태 등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A : “가정마다 특성이 다르므로 서비스가 동일할 수 없다. 다양성이 인정돼야 한다. 정부가 전 국민에게 가사 바우처를 주고 필요한 형태로 쓰게 하는 벨기에·프랑스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실제 외국의 경우 다양한 방식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운영한다. 서울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경우 출신 국가별로 임금에 차등을 둔다. 필리핀 도우미는 월 570 싱가포르달러(56만원)인데, 미얀마 출신은 450 싱가포르달러(48만원)다. 홍콩은 정부가 별도 최저임금을 지정한다. 2022년 10월 기준 월 4730 홍콩달러(80만원)다. 그러나 집이 좁은 홍콩은 비용보다 도우미에게 별도 공간을 제공하는 문제로 분쟁이 많아, 실제로는 고소득층(연 5만달러) 위주로 고용이 이뤄지는 편이다. 일본은 2017년부터 도쿄 등 일부 지역에서 시범 실시 중인데, 내국인과 동일한 노동권을 보장하고 정부가 인증한 특정 기관이 인력을 고용해 가정에 파견하고 있다.
독일은 ▶고용주가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해 파견하는 직접 고용 방식 ▶송출국 파견업체가 도우미를 고용해 독일 가정에 파견하는 파견 방식 ▶프리랜서 외국인 도우미가 독일 가정과 1대 1로 계약하는 서비스 의뢰 방식 등 다양하다. 원칙적으로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내국인과 동일한 노동권을 보장한다. 그러나 ▶송출국가·능력 차이를 감안해 중개업체가 임금 편차를 둘 수 있거나(파견 방식) ▶최저임금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임금 계약(서비스 의뢰 방식)을 하는 게 허용된다.
익명을 요구한 청소 서비스업 스타트업 대표 A씨는 “세계 가사인력 시장의 경쟁 구도가 이미 형성돼 있어서, 한국시장의 가격이 경쟁력 있으면 외국 인력이 선호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나라로 갈 것”이라며 “최저임금 문제에만 너무 매달리는 건 현명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가사도우미를 고용·파견하는 인증기관은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지만, 사용자와 도우미 간 1대 1 계약이 이뤄지는 플랫폼 서비스에선 최저임금과 무관하게 비용이 책정되고 있다. A씨는 “외국인 도우미들이 인권 사각지대에 몰리지 않고 한국어와 문화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관리 시스템을 정교하게 만드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가사 도우미 제도의 성공적 정착을 위한 공론화가 시급하다.
이정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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