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기준금리 연속 동결, 한국은행의 딜레마
“물가냐, 경기냐 물으면 항상 물가를 먼저 봅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1일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3.5%로 동결한 후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지난 2월에 이어 4월에도 기준금리를 동결한 배경에는 더 커진 경기 침체 우려가 있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실제 한은은 이날 통화정책결정문에 “올해 경제 성장률이 지난 2월 한은 전망치(1.6%)를 소폭 하회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문구를 새로 추가했다. 그만큼 이전보다는 경기 상황을 고려했다는 의미다.
다만 이 총재는 “한은의 관심사는 1%대라는 숫자(성장률) 자체가 아니라 경기가 빠르게 나빠져 금융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주느냐”라며 “성장률이 중장기적으로 1% 미만으로 내려가는 건 걱정하지만 단기적으로 1%대인 건 전세계 경기가 다 나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걱정이 덜하다”고 부연했다. 글로벌 경기가 안 좋은데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이 나홀로 성장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단지 한은이 그간 고강도 긴축 페달을 밟은 탓만은 아니라는 해명으로도 들렸다.
사실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한은이 물가안정을 우선한다고 말하는 건 당연하다. 한은법 제1조에는 통화정책을 통해 ‘물가안정을 도모’하고 다만 ‘금융안정에 유의’하라고 명시돼 있다. 지난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1%로 외환위기 때인 1998년(7.5%)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가안정 목표(연 2%)를 훨씬 웃도는 상황에서 한은은 고강도 통화긴축 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다. 올해도 연간으론 3.5% 수준이 예상되는 데다 국제유가 등 변수가 많아 당장은 긴축 고삐를 풀기 어렵다.
문제는 올해 상반기 경기 침체가 고금리 여파에 따른 일시적 상황일지, 장기 저성장(secular stagnation)의 시작일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정부와 한은은 ‘상저하고(상반기 저성장, 하반기 반등)’ 전망을 유지하고 있지만 시장에선 ‘상저하저’일 가능성이 크다거나 ‘상저하중’만 돼도 다행이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로 내리면서 G20 국가 중 유일하게 4번 연속 낮춰 잡은 것도 불안을 키우는 요소다.
고물가 저성장 시대, 한국은행의 고민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두 차례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도 셈법은 더 복잡해진 이유다. 이 총재의 비유처럼 도로에 안개가 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는 불확실성이 가득한 이때, 한국은행이 내놓은 통화정책이 훗날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해진다.
김경희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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