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종합복지관이 양대노총 노조 사무실로 전락
건물 1개층 전체를 사용하는 경상남도의 한 근로자종합복지관은 노동조합 사무실로만 가득 채워져 있다. 서울에 위치한 6층짜리 근로자복지관은 2층부터 4층까지 3개 층에 전부 노조 사무실이 들어서 있다. 양대노총 등이 위탁 운영하는 전국 102개 근로자복지관 가운데 절반가량이 이처럼 ‘근로자 복지 증진’이라는 본래 취지와 다르게 운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전국 근로자복지관 실태를 전수조사한 결과, 102개 가운데 54개(52.9%)가 정부 운영지침과 다르게 운영되고 있었다. 근로자복지관은 근로복지기본법에 따라 근로자 생활 편의와 여가활동 지원을 위해 수영장·헬스장·다목적실 등을 갖춘 공간을 의미한다. 현재 국비 지원 복지관이 72개, 자치단체 자체예산 복지관이 30개 운영되고 있다.
국비 지원 복지관의 경우 34개(중복 포함)가 지침을 위반했다. 이 가운데 27개는 입주가 제한된 산별연맹 노조 사무실이 들어선 사례였다. 운영주체는 한국노총 17곳, 민주노총 3곳, 기타 7곳이다. 현행 지침상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 등 총연합단체 노조의 지역대표기구만 사무실 일부를 사용할 수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예를 들어 대전 복지관에 한국노총 대전지역본부 사무실이 있다면 괜찮지만, 건설노조 사무실이 들어서는 것은 안된다”며 “지역대표기구라고 하더라도 건립 취지 및 기본적인 기능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운영지침은 복지관 내 사무실 면적을 전체 연면적의 최대 15%로 제한하고 있는데, 16개는 이를 초과했다. 특히 7개는 연면적 30%를 초과했다. 아울러 복지관은 임대수익만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을 보유하거나 이를 위한 사업에 공여할 수 없다. 하지만 10개는 ‘복지관’ 명칭을 사용하지 않거나 임대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광고회사나 건설회사 등을 입주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자치단체 자체예산으로 설립되고 운영되는 전국 30개 복지관 중에선 20개에 운영상 문제가 나타났다. 산별연맹 노조 사무실 입주가 15개, 사무실 면적 초과가 15개였다.
하지만 정부가 지침을 위반한 복지관에 취할 수 있는 조치는 극히 제한적이다. 현행법상 과태료 부과나 시정조치 명령 등 제재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 세금이 투입된 복지관 운영에 대해 그간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다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특히 국비 지원이 아닌 자체예산 30개소의 경우 자치단체 조례를 따르기 때문에 정부 지침을 지킬 의무가 없다. 고용부 관계자는 “우선 지침 위반이 확인된 근로자복지관에 시정을 권고하고, 국비 지원 복지관의 경우 지자체의 조치 결과를 확인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 정부는 전면적인 근로자복지기본법 손질에 나서기로 했다. 자치단체가 매년 복지관 운영계획을 제출하도록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정부가 시정조치나 과태료 등을 부과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골자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지어진 복지관은 일부 노조가 아닌 일반 근로자, 특히 근로 복지 혜택을 누리기 어려운 미조직 노동자와 취약계층 근로자를 위해 운영돼야 한다”고 밝혔다.
세종=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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