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공 46년 ‘원조 부촌’ 워커힐아파트의 고민 [재건축 임장노트] (13)
국내 최초의 대형 고급 아파트 단지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아파트가 지지부진하던 재건축 사업에 다시 시동을 걸고 있다. 지난해 광진구청이 1단지 정비계획안에 대한 주민 공람을 진행한 데 이어, 최근에는 서울시에 1단지 정비구역 지정을 신청했다. 강북권에서도 강남 못잖게 입지가 좋고 ‘숨은 부촌’으로 통해 관심이 모이지만 재건축 사업 방식을 두고 1·2단지 간 의견은 여전히 엇갈리는 모양새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광진구청은 지난 3월 서울시에 워커힐아파트 1단지 주민이 제안한 정비계획안을 제출하며 정비구역 지정을 신청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말까지 지정안에 대한 주민 공람을 진행한 데 이어 주민과 구의회 의견 청취를 마치고, 시에 정비구역 지정을 요청한 것.
1978년 입주한 워커힐아파트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월턴 H. 워커(Walton H. Walker) 장군 이름을 땄다. 광장동 11만7116㎡ 부지에 전용 162·168㎡(옛 57평), 196㎡(옛 67평), 226㎡(옛 77평) 등 대형 평형 576가구가 들어서 있다. 1970년대 당시 내진설계까지 적용될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지어진 고급 아파트 단지다. 준공 당시 태릉 세계사격선수권대회에서 외국인 선수촌으로 쓰이다가 최고급 아파트로 리모델링 작업을 거쳐 일반분양됐다. 분양가는 1979년 기준 56평형이 4472만원(3.3㎡당 80만원)으로 국내 역대 최고가였다. 같은 해 분양한 압구정 현대아파트 54평형 분양가가 3996만원(3.3㎡당 74만원)이었다.
워커힐아파트 1단지는 11개동 432가구, 2단지는 3개동 144가구다. 용적률은 각각 95.4%, 104%다. 용적률이 10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여느 사업장이었다면 재건축을 진행하고도 남을 아주 유리한 조건이다. 올해로 준공 46년 차에 접어들어 재건축 가능 연한(30년)도 진작 넘겼다.
그런데도 워커힐아파트는 그동안 정비사업 방식을 두고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4년 주택 노후화가 심해 리모델링을 추진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경기가 침체됐고 이때 정비사업도 무산됐다. 다시 2011년 재건축 사업을 추진했는데 주민 간 의견 통합이 안 됐다. 구역 지정은 계속 보류됐다.
지분 크고 용적률 낮아 높은 사업성
한 단지인데 필지는 2개로 나뉜 점도 문제였다. 1단지는 용도상 2종 일반주거지역(건폐율 60%, 용적률 200%)이다. 2단지 3개동은 자연녹지지역(건폐율 20%, 용적률 100%)으로 묶여 있어 재건축을 하려면 용적률을 지금보다도 더 낮춰야 한다. 사실상 아파트 재건축이 불가능한 구조인 셈이다. 2단지 주민들은 제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종상향해달라고 요구해왔지만,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문턱을 통과하지 못했다.
때문에 2단지는 2016년 11월 단독으로 리모델링 조합을 설립해 리모델링을 추진했지만, 2018년 조합을 해산하고 1단지와 통합 재건축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반면 1단지 주민 생각은 다르다. 애초에 1단지와 2단지가 지어진 연도도 다르고 건축물대장 내 지번과 소유자 등이 달라 별개 단지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1단지는 2016년 안전진단 D등급을 받은 이후 재건축을 준비해왔다. 그런데 아직 안전진단을 통과 못한 2단지와 합친다면 재건축 사업의 첫 관문인 안전진단 절차로 되돌아가는 셈이다. 그래서 재건축 사업이 지연될 것을 우려한 1단지는 통합 재건축에 반대해왔고 2018년 4월 구청에 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계획안을 제출했다. 당시 주민 제안을 담아 제출된 정비계획안에는 1단지를 982가구, 최고 25층 규모 단지로 재탄생시키는 내용이 담겼다. 이 경우 새로 늘어난 450가구(전용 60~85㎡)는 일반에 분양될 예정이다.
다만 이에 대해 서울시는 “광진구청과 사전에 협의된 사안이 아니므로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그동안 워커힐아파트 1·2단지에 대해 통합 재건축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온 것으로 전해진다. 1·2단지가 당초 하나의 단지로 준공됐고 관리사무소, 도로뿐 아니라 난방·전기·수도 등을 공동으로 사용한다는 이유에서다. 어느 한 단지가 먼저 정비사업을 추진할 경우 당장 남은 단지에서는 생활이 크게 불편해진다는 것. 즉, 땅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두 단지 모두 재건축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이 밖에 아차산 주변 중점경관관리구역인 점을 고려해 층수를 하향하도록 수정·보완할 것 등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단지별 의견 차가 좁혀지지 않는 점을 제외하면 워커힐아파트 재건축 사업성 자체는 상당히 높다. 용적률이 낮고 대형 평수가 많다는 것은 한 가구당 소유하고 있는 땅인 대지지분이 매우 크다는 의미다. 남는 땅이 많아 재건축 시 땅을 나눠 가질 때 실제 자신의 아파트 평수보다 더 많은 땅을 갖고 갈 수 있는 셈이다.
실제로 워커힐아파트 1단지 기준 가구당 평균 지분은 192.05㎡(약 58.2평)다. 전용 162㎡ 대지지분이 160㎡, 전용 226㎡ 대지지분은 223㎡일 정도로 대지지분이 1 대 1에 가까워서 조합원 자격을 얻고 있을 때 발생하는 이익이 클 수밖에 없다.
프롭테크 스타트업 다윈중개가 재건축 사업성을 점수화해 시뮬레이션한 결과에 따르면 워커힐아파트는 107점이다. 재건축 사업성 점수가 100점이면 조합원이 추가 분담금을 내지 않고도 기존 평형과 같은 아파트를 배정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점수가 100을 넘기면, 같은 평형 아파트를 배정받고도 이익을 환급받는다는 뜻이다. 만약 1·2단지가 통합 재건축을 추진한다고 해도 넓은 대지지분을 활용해 두 채를 받는 1+1 재건축이 가능한 구조다.
다윈중개에 따르면 워커힐아파트 1단지 전용 226㎡(77평) 소유주가 재건축 후 52평 아파트를 분양받는다면 돌려받게 될 재건축 이익이 15억원을 넘는다. 77평 시세를 최근 실거래가(27억원, 지난해 10월)라고 가정했을 때의 계산이다. 해당 평형 아파트는 최근 30억~34억원에 매물로 나와 있지만 거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만약 77평 소유주가 평수를 확 줄여 32평(전용 84㎡)을 분양받는다면 돌려받을 환급액은 20억원대로 더욱 커질 전망이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워커힐아파트는 1·2단지 할 것 없이 사업이 빠르게 진행되기를 원하고 있어 양쪽 단지 간 양보만 있다면 사업 진행은 수월할 것”이라면서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강을 남쪽으로 조망하는 입지에 대규모 단지가 나온다면 강남 못잖은 고급 주거 단지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4호 (2023.04.12~2023.04.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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