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분산기업 지배구조 해법은...CEO 선임 투명성·이사회 독립성 확보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2023. 4. 12.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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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의결권 직접 행사 엄격해야

소유분산기업은 지분의 80~90%가 소액 주주에게 분산돼 있다. 국내에서는 KT(옛 한국통신), 포스코(옛 포항제철), KT&G(옛 한국담배인삼공사)가 대표적이다. 과거 정부가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민영화하거나, 공적 자금이 투입된 뒤 민영화된 경우다. 총수 혹은 오너 일가가 있는 대기업과 달리 뚜렷한 대주주가 없는 탓에 소유분산기업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공단인 경우가 많다. 최근 ‘리더십 부재’를 겪고 있는 KT 역시 국민연금이 최대주주(10.12%)다. 이에 소유분산기업은 2가지 구조적 약점을 갖고 있다. 하나는 CEO에게 권한이 집중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정치권 등 외풍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사회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게 우선시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근본적으로는 정부·정치권과 소유분산기업 간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라고 강조한다.

CEO 선임 투명성 제고

임추위, 전원 사외이사로

소유분산기업은 CEO에게 권한이 몰리는 구조다. 주주들의 경영 참여가 제한되는 탓에 소유분산기업 CEO는 사실상 기업 경영 전반에 지배력을 행사한다. 이사회 구성 시에도 CEO 입김이 작용한다. 문제는 전·현직 CEO 입맛에 맞는 이들로 이사회가 구성되면, 차기 CEO 선임 과정도 투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현직 CEO가 ‘셀프 연임’할 우려도 제기된다. CEO를 견제해야 할 이사회가 ‘거수기’ 역할만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제도적 허점은 ‘외풍’의 빌미가 된다. 실제 정부와 정치권이 소유분산기업에 압박을 넣기 시작한 지점도 이 부분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업무보고 마지막 일정인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지배구조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모럴 해저드가 일어날 수 있는 경우에는 적어도 그 절차와 방식은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외풍의 빌미를 제거하려면 CEO 선임 과정부터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임원후보추천위원회’ 등의 조직 구성에 대해 조언한다. 김형석 한국ESG기준원 정책연구본부장은 “자산 2조원 이상 대규모 기업은 위원회 전원이 사외이사로 이뤄진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 대표 선임 절차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ESG업계 관계자는 CEO ‘셀프 연임’ 등을 막기 위해 연임 시 필요한 자격 요건을 별도로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검증 방법과 확인 절차는 투명하게 공시돼야 한다”면서 “연임 시에는 필요한 자격 요건을 별도로 명시하고, 검증하는 제도적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사회 실질적 독립성 확보

이사 구성 주주 추천 방식 필요

다만, CEO 검증 절차 강화만으로는 근본적 해법이 되기 힘들다. CEO 선임 투명성 제고를 위해서는 이사회의 실질적인 독립성이 확보돼야 한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이사회와 CEO 관계는 서로 견제가 돼야 하는데, 국내 소유분산기업의 경우 이사회 힘이 미약하다”면서 “실적이 좋으면 CEO 입김이 세고, 실적이 안 좋으면 이사회가 우위에 서서 CEO를 교체하거나 해임하는 등의 선진화된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사회의 독립성 확보 방안은 어떤 게 있을까.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독립성을 확보할 해법은 주주들이 나서는 것”이라면서 “주주들이 적극적으로 이사 후보를 추천하고, 이사회의 독립성을 전제로 주주 의견이 정확히 반영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영권 공백 사태를 겪고 있는 KT 내부 일각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나온다. 소액 주주를 포함,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이사 추천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미영 KT새노조위원장은 “다양한 이해 당사자에게 이사 추천권을 부여해 소비자 단체 추천 이사, 종업원 추천 이사, 국민연금 추천 이사 등 이사회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기업 간 ‘연결고리’ 끊어야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엄격할 필요

기업이 변화 의지를 보이더라도, 정부의 부정적인 ‘관치’가 반복된다면 어떤 제도도 무력화될 것이라는 회의론도 나온다. 국민연금을 연결고리 삼아 통제권을 지닌 정부가 소유분산기업과 ‘헤어질 결심’을 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라는 평가다.

재계 관계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와 정치권은 소유분산기업 이사회 구성이나 경영에 간섭했다. 이번 KT 사태의 경우 CEO 선임 과정을 문제 삼았지만, 이는 표면적 이유일 뿐이고 실질적으로는 정부가 원하는 인사를 왜 선임하지 않느냐는 압박을 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우찬 교수도 “정부 압력이 계속되는 한 주주들이 이사 후보를 추천하더라도 추천받은 이사 후보가 전면에 나설지는 의문”이라면서 “괜히 후보로 나섰다가 밉보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독립성 확보가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중장기적으로 기금운용본부를 분리해야 한다거나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원칙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민연금은 2019년부터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위탁운용사에 의결권을 위임하고 있다. 다만, ‘사회적으로 논의가 필요한 사안’일 경우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직접 행사한다. 자금 운용은 위탁사가, 의결권은 국민연금이 판단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시장에 혼란을 불러온다. 국민연금이 기업에 엄포를 놓는 사이 위탁사가 주식을 파는 경우가 생길 수 있어서다. 이번 KT 사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해외에서는 혼선 방지를 위해 의결권 행사도 위탁사 판단에 위임한다. 익명을 요구한 경영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은 독립된 기관으로 어떤 세력에도 영향받지 않고 수익률만 따져 움직여야 한다”면서 “현재의 방식은 마치 국민연금을 정부의 작전 세력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해외 통신사 지배구조는
민영화 모범 사례 BT…‘경영 불간섭 원칙’ 공표
해외에도 통신사를 민영화한 사례가 있다. 영국 통신사 브리티시텔레콤(BT)은 기간통신 민영화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BT는 1984년부터 10년에 걸쳐 민영화를 단행했다. 영국 정부는 1984년 정부 지분 50.2%를 매각했고 1991년 25.9%, 1993년 21.9%를 매각했다.

영국 정부가 BT 지분을 순차 매각한 것은 국민들의 보편적 통신 서비스를 보장하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BT가 시장 경쟁 체제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다는 게 주된 평가다. 그러면서도 영국 정부는 BT의 경영권을 보장했다. BT 민영화 과정에서 ‘경영 불간섭 원칙’을 공표하고 경영 간섭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는 방식이었다. BT는 민영화 직후 시장 경쟁 체제에서 뒤처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시장 상황에 맞지 않는 설비 투자가 부채 증가로 이어졌고, 경영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이 같은 위기가 오히려 BT 민영화 이후 영국 정부의 간섭이나 특혜가 없었음을 드러내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반면, 국내와 달리 정부가 통신사를 민영화하면서도 일부 지분을 남겨둬 공식적으로 주주권 행사 여지를 남겨둔 사례도 존재한다. 일본 통신사 NTT도코모는 1986년부터 민영화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여전히 3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일본 정부는 NTT도코모 경영에 간섭할 명분을 갖추고 ‘통신비 인하’ 등을 요구한다. 프랑스 통신사 ‘오렌지’도 민영화됐지만 프랑스 정부가 지분 13.4%를 보유하고 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4호 (2023.04.12~2023.04.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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