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학생들이 시내에서 치킨집 찾는 법

권유정 2023. 4. 12.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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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자유 여행을 위한 지도 읽기 리허설

경증의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대안학교의 특수교사로 11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발달장애 학생들이 자립과 취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 및 수업을 합니다. 캠핑, 농사, 라이딩, 메타버스 등 여러 가지 도전을 하다 드디어 해외 자유여행까지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미디어에 자주 비치는 중증의 장애인들과 또다른 발달장애인들을 보며 장애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에게 힘이 되길 바라며 글을 씁니다. <기자말>

[권유정 기자]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많은 기술들을, 우리는 경험으로 배운다. 직접 겪으며 배우기도 하고, 타인의 경험을 통해 간접적으로 배우기도 한다. 교실 안에서, 교과서 속에서 가르치는 건 인생의 극히 일부다. 배움은 삶의 모든 순간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비장애인들은 수업 중에 가르치지 않아도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것들을 발달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은 잘 배우지 못한다. 비장애인들은 흔히 하는 경험들도, 해보지 못한 경우가 많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교육, 이런 게 필요하다

입학시험을 보러 온 학생들과 면접을 해보면, 집과 학교, 복지관 정도가 활동반경의 대부분이고 가족과 교사가 인간관계의 대부분이다. 친구들과 여가를 보내본 적도,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소비활동을 해본 적도 한 번 없는 아이들이 상당수이다. 할 만한 능력이 충분히 있는 아이들임에도 그렇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시도를 했다가 문제가 생긴 적이 있어서, 또는 문제가 생길까 염려가 되어서. 혹은, 아직 충분히 보호자들이 대신해 줄 수 있다고 여겨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성인이 된 경증의 발달장애인들에게는, 교과서 속 문제풀이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삶을 준비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종종 가정에서 어떤 공부를 더 시키면 좋을지 물어보시는 학부모님들이 있다. 학생마다 개인차는 있으나 우리가 가정에서 하길 바라는 것은 대개 비슷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스로 이불을 개고 방정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자신의 매무새를 단정하게 가꾸는 것, 함께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식사 준비, 뒷정리, 청소, 빨래 등 집안일을 돕는 것,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연습하는 것 등. 삶 속에서 해야 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 아이들에겐 하나하나 배워야 하는 과업이다.

사실, 쉬워 보이지만 막상 가르치자면 쉽지 않은 일들이다. 그냥 대신 해주는 것이 훨씬 쉽다. 정리정돈을 가르치는 것보다 대신 치워주는 게 더 간단하다. 집안일은 함께 하면 괜히 시간만 오래 걸린다. 대중교통을 연습시키는 것보다 데려다주는 게 안심된다. 용돈관리를 가르치는 것보다 필요한 돈만 그때그때 주는 게 속편하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많은 아이들이 그렇게 자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보고들은 것들로 필요한 순간이 오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직접 해보지 못한 것을 단번에 습득하기 어렵다.

나는 이제 법적인 청년에 속하기 어려운 나이가 되었지만 우리 엄마는 아직도 밥상에서 생선 가시를 발라준다. 그건 엄마의 사랑 방식이다. 엄마가 집에서 매번 생선 가시를 발라주어도, 나는 엄마가 없을 때에 혼자서 가시를 바를 수 있다. 엄마만큼 깔끔하게는 못해도 엄마가 하던 방식을 떠올리며 따라할 수 있고,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머지않아 엄마만큼 능숙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삶의 많은 기술들을 정확하게 배우고 수없이 경험하지 않으면, 혼자서는 습득하기 어렵다. 가르쳐줄 수 있고 도와줄 수 있는 보호자가 있을 때, 삶을 충분히 리허설해야 한다.

십여 년의 교직생활에 비추어볼 때, 아이들의 기본생활기술은 인지적인 능력에 비례하지 않는다. 무수히 반복해 온 시간과 노력에 비례해 발전하는 기술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본 생활기술이 우리 아이들을, 타고난 능력보다 더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고, 훨씬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최소한의 도움으로 자립하고 취업하여 스스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인생의 모든 순간을 연습하기 위해 우리는 학교를 벗어나 여행을 떠난다.

오사카 자유여행을 준비하며
 
▲ 홀로 도전해 보는 첫 길 찾기 지도 어플을 꼭 쥐고 낯선 길을 찾아 나선다
ⓒ 권유정
 
발달장애 학생들과 자유여행을 준비하며 가장 걱정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길을 잃는 것이다.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는 건, 삶의 반경을 넓히고 삶의 질을 달라지게 한다. 보호자의 도움 없이도 학교나 직장을 다닐 수 있고, 친구들 만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는 건 성취감을 느끼게 하고 자존감을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다닐 때에는 혼자 길찾기가 가능한 학생들은 저희들끼리 다닐 수 있도록 그룹만 잘 묶어주고, 나머지 학생들은 교사들이 서넛씩 맡으면 크게 무리 없이 다닐 수 있었다. 특히 학년이 올라갈수록 숙련되어 대그룹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도, 이탈을 하거나 잃어버릴 염려를 많이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난생 처음 해외여행에 도전하려니 믿음직했던 아이들까지 모두 불안으로 다가왔다. 과연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아이들이 길을 잘 찾을 수 있을까. 졸업여행을 가는 3학년 중 절반 이상의 아이들은 자주 저희들끼리 모여 노는 걸 즐기는 만큼 대중교통 이용이 원활했지만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가는 건 그보다 좀 더 난이도가 있다.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모니터링해보면 명확하게 길을 알고 찾아가는 일부와 그냥 친구 따라 강남 가는 나머지가 또 나뉜다. 각자 제 힘으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확실한 연습이 필요했다. 단번에 길 찾는 법을 익히지 못하더라도, 길을 잃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라도 배워야 했다.

길을 잃었을 때 자신의 위치를 설명하는 것도 우리 아이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설명하기를 시켜보면 상상도 못 할 기상천외한 답변들이 난무한다.

"너 지금 어딘데?"
"모르겠어요."
"주변에 뭐가 보여? 보이는 걸 말해봐."
"신호등이랑 횡단보도요. 쓰레기통도 있어요."

큰 간판, 표지판 등 구별하기 쉬운 정보를 찾는 것도 우리 아이들에겐 연습이 필요하다. 도저히 위치를 알 수 없어 영상통화를 시도하면, 셀카로 제 얼굴만 계속 비추기도 한다. 생각지 못한 말과 행동으로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그만큼 더 세세하고 구체적으로 가르쳐야겠구나 깨닫게 한다.

여행을 리허설하는 첫 단계로 우선 학교 근처 시내에서 길 찾기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수업을 안내하자 평소 대중교통 이용을 못하는 아이들이 표정에 긴장감이 돌았다. 그래도 여행을 가려면 꼭 필요하다는 설명 덕분인지 못한다는 말 대신 할 수 있다고 각오를 다진다.

사실 긴장되는 건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외부 활동은 늘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서는 안전을 챙기는 것이 과보호가 되지 않도록, 자율성을 주는 것이 방임이 되지 않도록 적정한 선을 지키기 위해 항상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피곤한 일임을 알면서도 자처하는 건, 우리가 하는 일이 아이들을 위해 꼭 필요한 교육이라 믿기 때문이다.

몇 가지 의외의 함정들

친구 따라 강남 갈 수 없도록 모두에게 다른 목적지를 주고, 인증샷을 찍어 보내도록 미션을 주었다. 인증샷을 보내면 또 다음 목적지를 알려줘 각자 네 곳씩 길을 찾고 나면 다시 출발지로 돌아오게 하는 루트였다.

현지 주민의 조언을 얻어 간판이 잘 보이는 가게들을 선정하고, 구글지도에 위치가 정확하게 나오는지 일일이 확인까지 하고 미션을 시작했건만, 맙소사, 현실은 또 시작부터 삐걱였다.

"경로를 찾을 수 없대요."

이럴 수가. 나중에 찾아보니 구글지도는 우리나라와 지도 정보 제공 문제로, 도보 길 찾기가 불가능했다. 평소에는 늘 카카오맵이나 네이버맵을 사용했고, 구글지도는 해외에서만 사용해봐서 미처 몰랐다. 늘 든든한 조력자였던 구글이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줄 줄이야.

다른 지도를 사용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일반화가 어려운 우리 아이들의 특성상 여러 어플을 사용하면 더 헷갈릴 가능성이 있고, 어차피 일본에 가서 실제 사용할 것은 구글지도였기에 일단 현재 위치를 보며 방향을 찾아가는 걸 연습하기로 했다.

비교적 길찾기가 원활한 친구들 절반을 선두그룹으로 먼저 보내고, 나머지 절반은 지도 보기를 연습하며 다른 친구들이 인증샷 보내는 걸 보고 미션방법을 익히게 했다. 잠시 후 인증샷이 속속 도착했고, 부지런히 다음 목적지를 확인해 보냈다. 선두그룹답게 무사히 모든 미션을 마치고 하나둘 아이들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 그룹에는 선두그룹 아이들을 촬영감독으로 임명해 일대일로 짝을 지었다. 길을 알려주지는 말고 뒤를 따라가며 길 찾는 걸 촬영해 오도록 했다. 길 찾기가 아직 미숙한 그룹이다 보니 행여 길을 잃었을 때를 대비하고, 능력이 있는 아이들에겐 또 다른 역할로 활약할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 길 찾기 미션과 인증샷 목적지를 찾아가 인증샷을 찍어보내면 미션 성공
ⓒ 권유정
길을 헤매는지 잘못된 방향으로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도 몇몇 있었지만 다행히 큰 문제없이 모두 미션을 완료하고 돌아왔다. 일단 미션을 성공한 것을 축하하고 기뻐했다. 그런데 아이들을 모니터링하러 다닌 다른 교사들에게 확인해 보니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시내가 좁다 보니 지도를 정확히 안 보고 가도, 고개를 휙휙 돌려보면 간판이 보여요."

...그렇다. 알고 보니 지도가 아닌 튼튼한 다리와 좋은 시력으로 찾은 것. 누가 그랬던가, '시내'라고 했을 때 모두가 어딘지 알면 그게 시골의 증명이라고. 그런 기준이라면 우리 학교는 경기도지만 시골에 가깝다. 계절별로 남들은 일부러 찾는 아름다운 자연을 가까이서 즐길 수 있어 좋지만 이럴 땐 좀 아쉽다.

시내는 길이 뻔하고 높은 건물이 거의 없는데다 첫 미션인지라 일부러 눈에 잘 띄는 간판 위주로 선정을 했더니 더욱 찾기가 쉬웠던 것 같다. 지도를 보며 내 위치와 방향을 정확히 확인해 길을 찾은 아이들은 많지 않았다. 

경로 찾기가 됐으면 좀 나았겠지만 불행히도 구글은 우릴 돕지 않았다. 한국에만 있을 거라면, 어떻게든 찾아온 것에 만족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에 가면 일본어로 된 간판을 보고 길을 찾기가 수월할 리 없었다.

"다음 주는 더 큰 도시로 간다."

예기치 못한 난관에 부딪혀도, 우리는 나아간다. 어차피 여행도, 인생도 예측한 대로 되지 않는다. 좌절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실패는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하는 토대가 된다. 오늘의 경험이 우리의 여행도, 아이들의 인생도 단단하게 채워줄 작은 조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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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brunch.co.kr/@h-teacher) ‘발달장애 대학생들과 해외 자유여행 도전기’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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