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 영어가 어색한 송도국제도시… 영어통용 경쟁력 시급하다

김민 2023. 4. 12.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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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 국제기구 71개 투자기업 입주
정주 여건 불만 언어가 78.3% 차지
영어통용도시 조성사업 속도 못내
공용어 사용 싱가포르 벤치마킹을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 전경.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


“인천에서 자랑하는 국제도시가 정말 맞나요?”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에 1년째 살고 있는 미국인 영어학원 강사 제임스 라미레즈(32)씨는 지역 내 편의점과 음식점 등을 이용할 때마다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불편함을 꼽았다. 자신의 어설픈 한국어 실력으로는 필요한 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답답했던 경우가 많았다.

그는 지난해 말 편의점에서 소화제를 찾는 데 10분이 넘게 걸렸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편의점 주인과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아 스스로 찾아보다가 결국 배를 움켜쥐는 보디랭귀지를 통해 소화제를 겨우 살 수 있었다.

송도에 살기 시작한지 두 달째 접어든 외국인투자기업 회사원 케빈 존슨(48)씨도 영어를 사용하기 불편하다고 호소했다. 주말에 분리수거를 안내하는 아파트 경비원의 말을 이해하려 한국인 직장동료와 통화까지 했던 경험도 있다. 체류지 변경 신고를 위한 행정복지센터 방문도 통역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해 한국어가 가능한 지인과 함께해야 했다. 그는 “행정기관에서조차 영어를 사용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 정도는 없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하소연했다.

송도국제도시 도로에 게양된 각 나라의 국기들.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


경제자유구역과 국제도시라는 명성과 달리 송도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정작 영어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에서 청라·영종국제도시를 제외한 송도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같은 기간 189명에서 4364명으로 2209%나 늘어났다. 또 송도에는 녹색기후기금사무국(GCF), 유엔 아태경제사회위원회(UNESCAP), 유엔 재해경감국제전략(UNISDR) 동북아사무소 등 14개 국제기구와 71개 외국인투자기업이 입주하고 있다. 인천시의 재외동포청 유치 역시 1순위로 송도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인천경제청이 지난해 말 국제기구 종사자 등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서는 정주여건상 불만족스러운 부분으로 언어가 무려 78.3%를 차지했다.

이에 인천경제청은 민선 8기 유정복 인천시장의 공약으로 ‘송도국제도시 영어통용도시 조성사업’을 추진 중이다. 영어통용도시는 외국기업 투자 유치 환경과 외국인의 정주여건을 개선하고 세계 무대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며 한국의 문화적 자산을 확산시킬 수 있는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도시를 뜻한다. 세부사업에는 외국인 친화 사업장 인증제, 안내 영문표지판 지원 및 감수, 영어 생활정보콘텐츠 제작 등이 있다.

하지만 인천경제청의 영어통용도시 조성사업 추진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시민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인천글로벌캠퍼스 입주 외국대학 관계자들이 영어통용도시 관련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


인천시의회 산업경제위원회는 지난달 20일 영어통용도시 추진위원회 구성 조례안을 부결 처리했다. 영어통용도시의 기본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고 시민 공감대도 형성되지 않았다는 게 부결 사유다.

영어 통용이 가능하려면 교육과 인프라 구성 등에 오랜 기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어 지속적으로 효과적인 세부사업을 발굴·추진해야 한다. 아울러 영어통용도시 조성사업을 반대하는 시의회 설득도 시급하다.

전문가들은 싱가포르의 정책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싱가포르는 화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1970년대 영어를 교육과 비즈니스의 공용어로 정했다. 1987년에는 학교의 제1언어로 채택했다. 이를 통해 현재 싱가포르인 대부분 영어를 구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국제도시로서 싱가포르의 경쟁력 또한 크게 향상됐다. 인천경제청 관계자는 12일 “영어 상용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정책·시스템 마련하고 단기간이 아닌 장기적인 안목으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김진용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
“언어장벽 허물어 세계적 초일류도시로”


김진용(사진)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은 12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송도국제도시 영어통용도시 조성사업 취지에 대해 "인천경제자유구역을 명실공히 세계적 초일류 도시로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 청장은 또 "국내외 기업의 투자 유치를 촉진하고 거주 외국인들의 생활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영어통용도시가 필요하다"며 "경제자유구역 지정 목적에 맞는 언어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청장은 지난해 9월 취임과 동시에 송도를 영어통용도시로 만들기 위한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영어통용도시의 핵심으로는 청소년들이 영어를 쉽게 배울 수 있는 기반을 꼽았다. 이를 위해 송도에 입주한 대학들을 비롯해 학교와 학원 등을 대상으로 영어통용도시 조성사업 관련 세부사업을 발굴하고 홍보할 계획이다.

김 청장은 "기성세대는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영어를 쉽게 배울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 청장은 앞으로 영어통용도시 조성사업에 속도를 내기 위한 시민 공감대 형성에도 집중할 방침이다. 지난 6일 인천글로벌캠퍼스 대학들과 채드윅 송도국제학교 총장 등이 참석한 '영어통용도시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 체결 및 간담회'도 같은 취지로 열렸다. 10월에는 선포식 및 영어 축제 개최를 계획하고 있다.

그는 "각 기관들과 협의하고 시민 설명회를 통해 공감대를 확산시켜 함께 만들어가는 영어통용도시 조성사업을 추진해 나가겠다"며 "영어 사용을 강제하거나 불편을 초래하지 않도록 항상 시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영어통용도시 확산 및 세부사업 발굴을 위한 민·관 협조체계도 구축하겠다"고 덧붙였다.

인천=김민 기자 ki84@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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