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캐는글쓰기] 층간소음 기사에 '난임 부부' 소환하는 댓글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편집자말>
[이정은 기자]
얼마 전 발행했던 '층간 소음'과 관련된 기사가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아무래도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이 공동주택에 살면서 가슴 속에 층간 소음에 대한 화두를 하나씩은 품고 있어서일 테다.
[관련기사 : 층간소음 윗집이 이사 후 남기고 간 손편지 https://omn.kr/238ht]
기사에는 많은 댓글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내용인즉슨, 아래층의 이웃이 굉장히 예민하다는 얘기였다. 거기까지는 충분히 이해와 공감을 할 수 있는 부분이었으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아래층에 아이 못 갖는 부부가 살았는데 그렇게 예민하게 구니까 애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댓글 아래에는 자신의 아래층도 애가 안 생기는 여자인데 그렇게 초예민하면 임신이 힘들다는 대댓글도 있었다. 이 댓글들을 보고 이번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 한 포털 사이트의 댓글 |
ⓒ 이정은 |
미리 얘기를 하면, 나는 비자발적 무자녀 부부의 삶을 살고 있다. 댓글에서 말하는 '예민해서 애를 못 갖는 여자'가 바로 나였던 것이다. 지금에야 무자녀의 삶을 받아들이고 온전한 나로서 살고 있지만, 만약 아직까지 병원에 다니며 부모가 되기 위해 애쓰는 중이었다면 그 댓글은 아마도 무기가 되어 나를 찌르고 또 찔렀겠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난임을 겪는 이들은 그런 얘기를 들을까 봐 더 조심하고 숨죽이고 있다는 것을. 그래, 모르니까 할 수 있는 얘기이다. 누구나 경험하지 못하면 알 수 없는 일이니까.
사람은 자신이 아는 만큼 생각하고 판단하게 된다. 잘 알지 못하더라도 당장 궁금한 것이 아니라면 알려고 하지 않고 미루어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런 짐작이 쌓여 오해와 편견을 만들고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번 잊고 만다. 더구나 그 편견이 나를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더더욱.
난임을 바라보는 수많은 오해와 편견을 다 나열하기보다 그중 문제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원인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부터 짚고 넘어갈까 한다.
과거에는 '불임'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지만, 불임은 말 그대로 임신이 불가한 경우를 뜻한다. 과거와는 달리 현재는 의술의 발달로 임신 확률이 높아졌기 때문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불임'보다는 가임력이 떨어져 임신이 힘들다는 '난임'으로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래전에 '아이를 못 낳으면 소박맞는다'라는 말이 있었지만, 그건 난임의 원인이 여성에게만 있다는 잘못된 편견에서 비롯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런 편견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를테면 '몸이 약해서', '몸이 차서', 그리고 '너무 예민해서' 등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모든 편견은 여성을 향해 있다.
▲ 난임의 원인 |
ⓒ 마리아병원 홈페이지 |
실제로 난임의 원인은 유전적인 요인뿐 아니라 환경적인 요인 또한 크다. 여성이 50%, 남성이 40%이며, 이유를 알 수 없는 원인불명이 10%이다(여성 40%, 원인불명을 20%로 보는 의견도 있다, 마리아병원 및 서울아산병원 홈페이지 참고).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비슷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난임은 꾸준한 관리로 개선이 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는 일이다. 정상적인 임신이 된다 해도 출산까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오죽하면 의사들마저도 임신과 착상은 신의 영역이라고까지 말할까.
안타깝게도 여성의 경우 30대 중반 이후로는 생물학적으로 임신 가능성이 남성에 비해 줄어들 수밖에 없지만, 그것은 사회적으로도 맞물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볼 수만은 없다.
▲ 시험관 시술을 통해 얻은 아기 |
ⓒ Sher Fertility Institute |
대한민국은 매년 출생률이 줄어들고 있는 초저출생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그 이유에는 아이를 낳기 싫은 것보다 낳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더 많다.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는 물가, 그에 반해 제자리인 임금, 늦어지는 결혼, 육아하기 어려운 환경 등 단순하게 아이를 낳기 싫은 것보다는 낳을 수 없는 환경에 내몰리는 상황이 저출생 시대를 초래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해서, 아이를 낳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난임 부부들도 그렇다. 난임시술 과정에 필요한 적지 않은 병원비와 때로는 경력이 단절되는 경제적인 부담, 인위적으로 투여되는 호르몬제를 감당해야 하는 신체적인 부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버금가는 심리적 부담을 안고 어떡해서든 아이를 갖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면 굉장한 용기를 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을 쓰며 과거 정보를 나누던 난임 관련 커뮤니티에 오랜만에 들어가 보았다. 그곳엔 아직도 하루하루 임신을 위해, 부모가 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난임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로부터 받는 수많은 편견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이 짧은 기사 하나로 난임을 대하는 인식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는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은 목소리를 내본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자신의 배와 마음에 주삿바늘을 찌르고 있을 용기 있는 수많은 난임 부부들이, 안 그래도 지독하고 고단한 여정에 응원을 받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잘못된 편견으로 손가락질을 받는 일은 없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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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정은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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