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2도]인류 위기를 막을 유일한 힘, 선한 본성

이종길 2023. 4. 12.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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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에서 콜름(브렌던 글리슨)은 친구 파우릭(콜린 패럴)에게 일방적으로 절교를 선언한다.

"말실수한 거 없어. 잘못한 것도 없고. 그냥 이제 자네가 싫어졌어." "나 좋아하잖아요." "아니야."

"집에 양털 깎는 가위가 있어. 지금부터 날 귀찮게 할 때마다 그걸로 내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서 자네한테 줄 거야."

파우릭은 관계 회복에 골몰한 나머지 파탄의 길로 미끄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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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나 감독 '이니셰린의 밴시'
틀어진 관계, 순수·순박 상실로
선한 본성의 연대·협력 강조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에서 콜름(브렌던 글리슨)은 친구 파우릭(콜린 패럴)에게 일방적으로 절교를 선언한다. "말실수한 거 없어. 잘못한 것도 없고. 그냥 이제 자네가 싫어졌어." "나 좋아하잖아요." "아니야."

콜름은 남은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파우릭과 무익한 수다를 떨 시간에 음악을 작곡해 명성을 얻고자 한다. 파우릭이 못마땅한 얼굴로 다가오자 엄중히 경고한다. "집에 양털 깎는 가위가 있어. 지금부터 날 귀찮게 할 때마다 그걸로 내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서 자네한테 줄 거야."

무관심과 분노로 일관한 모독에 파우릭은 난처해한다. 신경증에 가까울 정도로 관계 회복을 꾀하나 상처만 깊어진다. 다정하고 상냥한 심성이 비틀어지기에 이른다.

첨예한 구도는 배경인 1923년 아일랜드 내전을 가리킨다. 싸움의 발단은 영국과 아일랜드가 휴전하면서 맺은 조약. 아일랜드가 국내 정세에 몰두하도록 독립이란 현실을 원했던 분리주의자들과 조약에 반대하고 공화국을 원했던 사람들 사이에 분열을 가져왔다. 근본적 원인이 영국이란 걸 알면서도 서로 총구를 겨누며 맞불질했다.

역사가 프랭크 X. 마틴과 테오 W. 무디는 저서 '아일랜드의 역사'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정확히 공화국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의견의 불일치가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공화국을 추구한 사람들은 이것이 영국 왕에게 충성의 서약을 요구하는 조약의 수락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틴 맥도나 감독은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다. 밴시를 배치해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도록 유도할 뿐이다. 밴시는 아일랜드 여신족 투어허 더 다나안으로 알려진 여자 요정이다. 순수한 혈통을 지닌 가문을 따라다니며 통곡해 초상(初喪)을 예고한다고 전한다. 모든 아일랜드인을 위해 운다는 설도 있다.

파우릭은 관계 회복에 골몰한 나머지 파탄의 길로 미끄러진다. 밴시의 시각에선 마을의 몰락이다. 사람들이 옹졸하고 편협한 사고로 파우릭을 업신여긴다. "콜름은 지적인 양반이잖아. 자넨 아니고." "자네 동생이면 몰라." "자넨 뭐랄까, 성격 좋은 친구지." "취했을 때는 빼고."

파우릭은 순수함과 순박함을 상실한다. 콜름과 친한 음대생에게 다가가 아버지가 빵 배달차에 치여 위독하다고 거짓말한다. 끝까지 파우릭을 믿고 의지하던 도미닉(배리 케오건)은 크게 실망한다. "어떻게 그렇게 못된 짓을 해요? 마을 사람 중에 제일 다정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똑같네."

인류가 전쟁, 재난 등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고도 살아남은 건 선한 본성에 압도됐기 때문이다.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프레임을 깨면서 상상하지 못한 연대와 협력을 이뤄냈다. 이를 두고 사상가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저서 '휴먼카인드'에 "불평등과 혐오, 불신의 덫에 빠진 인류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유일한 방법"이라고 적었다.

인간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다. 언제나 공동체를 이루며 성장했다. 사회적 지평의 확대와 상호 대화가 가능한 유대를 확보함으로써 자기 진실성의 이상을 회복했다. 삶 전체가 무의미해진 파우릭에게는 아무리 말해도 우이독경이다. 더는 자기 진실성을 도덕적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변화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 끝이 어떤지 정확히 알고 있어서다.

"본토에서 총성 안 들린 지 한 이틀 됐군. 끝나가는 모양이야." "분명 조만간 또 시작할걸요. 그냥 넘기지 못하는 일들도 있는 거니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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