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최악의 금융사기 사건 '와이어카드 사태'의 전말
[김형욱 기자]
▲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스캔들! 와이어카드를 폭로하다> 포스터. |
ⓒ 넷플릭스 |
지난 세기말 독일에서 설립된 전자 결제 중개 회사 '와이어카드', 초기 주요 고객은 포르노 사이트와 도박 사이트 이용자였다. 2000년대 초반 마르쿠스 브라운이 대표를 맡으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는데, 기업 규모를 키우면서 해외의 세계적인 회사들과 거래를 하고자 하니 매출도 증가하고 영업이익도 증가한 것이다. 2010년대 후반까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2018년에 정점을 찍었는데, 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의 시가 총액을 뛰어넘기도 했고 독일 '닥스(DAX) 30 지수'에서 크메르츠방크를 대체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독일과 유럽을 넘어 전 세계 경제계에서 손꼽히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억될 만한 퍼포먼스였다. 드디어 독일에도 미국 실리콘밸리의 트렌디하면서도 초우량의 IT 기업들 같은 핀테크 기업이 탄생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와이어카드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와중에 일각에선 그들을 향한 의혹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유령 회사, 회계 부정, 돈세탁, 테러 후원 등의 심각한 의혹들이었다. 그때마다 브라운은 헛소리라며 강력하게 일축했다. 그런 한편 브라운의 핵심 측근이자 와이어카드의 COO 얀 마르살레크가 특유의 사람 좋은 상냥함을 앞세워 어르고 달랬다. 그렇게 유야무야 지나가더니 어느새 독일 정부도 와이어카드의 편을 들게 된 것이다.
독일 시가총액 1위 기업이 무너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스캔들! 와이어카드를 폭로하다>는 한때 독일 시가총액 1위까지 오르며 끝모를 성장을 기록하던 굴지의 핀테크 기업 '와이어카드'가 한순간에 신기루처럼 나락으로 떨어지더니 공중분해되어 사라져 버린 이야기의 전말을 전한다. 지극히 최근에, 그것도 전 세계에서 가장 묵직한 신뢰를 받는 나라 독일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와이어카드가 무너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뭘까? 정부의 비호까지 받으면서 승승장구하던 대기업이 한순간에 폭삭 무너졌을 때는 뭔가가 크게 작용했을 테니 말이다. 그건 다름 아닌, 기자와 내부 고발자와 공매자들이었다. 영국 굴지의 경제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즈>가 와이어카드 내부 고발자와 공매자들에게서 확실한 소스를 받아 끊임없이 와이어카드를 공격했고 결국 무너진 것이다.
기자 정신 투철한 기자와 더 이상 봐 줄 수 없는 내부 고발자까지는 이해하겠는데, 공매자들은 왜 여기서 나오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공매자들이야말로 이 사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들은 주가 하락에서 생기는 차익을 노리는 바, 보통 좋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 그런가 하면 그들은 공매도를 실시하기에 앞서 해당 업체의 부정적인 실체를 철저히 조사해야 하는데, 그렇게 조사해 공표한 회사의 주식이 곤두박질칠 때 그들이 돈을 벌기 때문이다. 일련의 공매자들이 와이어카드의 실체를 철저히 조사한 것이다.
▲ 넷플릭스 <스캔들! 와이어카드를 폭로하다>의 한 장면. |
ⓒ 넷플릭스 |
<파이낸셜 타임즈> 기자 댄 매크럼은 와이어카드에 대한 어느 공매자의 심도 깊은 보고서를 바탕으로 기사를 내보낸다. 와이어카드의 대규모 비리와 범죄를 폭로하는 내용이었다. 와이어카드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댄은 온갖 곳에서 협박을 받는다. 주가 조작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도 씌워진다. 사태가 심각해진 것이다. 굴지의 <파이낸셜 타임즈>도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와이어카드의 내부 고발자가 나타난다. 전직 아시아 범무팀장이었다. 그에게서 아주 많은 걸 전해 듣는다. 이를테면 와이어카드의 재무팀장이 팀원들에게 대놓고 장부 조작에 대해 프리젠테이션을 했다는 것이었다. 댄은 내부 고발자에게서 방대하기 이를 데 없는 와이어카드 내부 문서를 전해 받고 철통 보완의 시간을 보내며 철저히 기사를 준비한다. 이전에 멋모르고 냈던 기사처럼 또다시 역풍을 맞을 순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와이어카드를 침몰시킬 거라고 다짐한다. '빼박' 초대형 증거들이 수두룩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파이낸셜 타임즈>는 와이어카드가 파 놓은 함정에 빠져 허우적 거린다. 결국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데, 일련의 의혹들을 완전히 잠재우기 위해 외부 기관에 의한 내부 감사를 진행한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파이낸셜 타임즈>는 그동안 응축해 왔던 온힘을 쏟아부어 기사를 내보낸다. 즉각적으로 반응이 왔고 와이어카드 주가는 폭락했으며 와이어카드 역시 내부 감사를 받았는데 자그마치 19억 유로의 행방이 묘연했던 것이다. 증발해 버린 것이다. 와이어카드 측에서는 있다고 한 돈인데 말이다. 와이어카드는 파산하고 만다.
속이 텅텅 빈 모래성이었던 와이어카드
잘 알려져 있다시피 또 위에서 주지했다시피 <파이낸셜 타임즈>는 와이어카드가 완전히 무너질 때까지 기사를 끊임없이 양산했다. 그때마다 와이어카드 주가는 폭락했지만, 와이어카드는 그때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미행·도청·협박을 일삼으며 함정도 파는 등 온갖 헛짓거리로 위기를 모면한다. 그렇게 주가는 올라가고 내려가길 반복한다.
그런 와중에 와이어카드의 대표 마르쿠스 브라운이 아니라 COO 얀 마르살레크의 정체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사실상 그야말로 와이어카드 사태의 핵심인데, 단순히 거친 성향의 브라운 옆에서 친근한 역할에 그친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러시아와 리비아의 고위급 정보원들과 긴밀한 친분을 유지하는 걸로 드러나기도 했는 바, 러시아 정보원은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러시아에 정보를 넘기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건 확실했다. 와이어카드가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의 정보를 가지고 있고 얀은 그 정보들을 손쉽게 빼낼 수 있으니 말이다.
독일 공화국 역사상 최대·최악의 금융 사기 사건으로 남을 '와이어카드 사태', 정녕 속이 텅텅 빈 모래성을 어떻게 유지해 올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독일 정부조차 와이어카드를 비호할 수밖에 없었는지,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되는 와중에도 소프트뱅크가 9억 유로나 투자한 연유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 그들은 와이어카드에게서 무엇을 본 걸까? 결국 허상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헤어나오기 힘든 억지 바람을 와이어카드에게 투영시켰던 걸까?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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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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