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장교복 벗고 늦깎이 소설가가 낸 '포항 소설집'
[홍성식 기자]
▲ 최근 자신의 첫 소설집을 세상에 내놓은 김도일 작가. |
ⓒ 김도일 제공 |
책을 펴들었다. 소재는 '포항'으로 단일했지만, 수록된 개별 작품에서 읽히는 메시지는 각기 달랐다.
'디어 마이 엉클'에서는 한국전쟁이 야기한 비극의 그림자가, '관목(貫目)'에선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의 아들이 겪는 정체성 혼란이, '불꽃 지다'로 가면 비루한 상황에서도 놓칠 수 없는 인간의 순정한 마음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책을 엮어 세상에 내놓은 김도일(49)은 마흔 즈음에 소설 쓰기를 시작한 늦깎이. 흥미롭게도 세상 사람들에게 작가로서의 존재를 알린 첫 소설도 '2017년 포항 소재 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포항을 '씨줄' 삼아 묵직하고 깊이 있는 역사의식과 인간 본질 탐구를 자신의 문학 속에 빠른 속도로 축적하고 있는 김도일.
제대로 된 그물을 짜기 위해선 튼튼한 씨줄과 날줄 모두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책에서 무시로 감지되는 '역사를 바로 보기 위한 노력'과 지속적 '인간 본질 탐구'는 김 작가가 손에 든 '날줄'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예술가에게 늦은 출발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보다 중요한 건 자신이 마지막에 가닿을 목적지니까. 소설가와 시인, 화가와 작곡가는 단거리 육상선수가 아닌 마라토너(Marathoner) 같은 존재.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해병대 장교 출신으로 듬직한 몸피와 우렁우렁한 목소리를 가진 김도일은 막 출발선을 떠나 5km 지점쯤을 통과하고 있는 마라톤 선수, 아니 소설가다.
지난주 토요일 오후. 환한 봄빛 아래 푸른 파도 일렁이는 포항 영일대해수욕장 조그만 카페에서 김도일을 만났다.
▲ 김도일의 첫 번째 작품집 <어룡이 놀던 자리>. |
ⓒ 김도일 제공 |
- 출생년도와 출신지, 유년을 보낸 곳은 어디인가.
"1974년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과수원집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영덕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포항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 후로 계속 포항에서 살고 있다."
- 독자는 작가의 학생 시절에도 관심을 가진다. 중고교 시절엔 어떤 아이였나. 내성적 혹은, 외향적이었는지. 그 시절 관심사는 무엇이었나. 혹시 문예반 활동을 한 적이 있는지.
"열다섯 살 때 어머니가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같은 시기에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셨다. 요양원 같은 것이 없던 시절이다. 슬펐지만 내 슬픔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우리 남매끼리 보듬고 살아나가야 한다는 결속 같은 것이 생겼다. 어린 나이였지만 나로 인해 가족들이 더 슬퍼지지 않게, 걱정을 끼치지 않게 안간힘을 썼다. 원래 성격이 어떤지 상관없이 외향적이어야만 했다. 남들 눈에도 그렇게 보였나 보다. 고등학교 때 등 떠밀려 나간 학생회장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문예반은 활동은 하지 않았다."
- 대학에선 뭘 공부했나. 전공 선택의 이유는. 그리고, 학사장교인 것으로 아는데 그걸 선택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덧붙여 1990년대 중반 대학시절 잊을 수 없는 기억은.
"경찰이 되고 싶은 마음에 행정학과에 지원했다. 그러나 낙제를 간신히 면하여 겨우 졸업했다. 1학년 때 학보사에 들어갔다. 대학 생활 전부를 거기에 바쳤다. 학사장교에 지원한 것도 학보사 활동을 보장받으면서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장기복무로 지원하면 장학금을 줬는데 그것으로 선후배 기자들과 밥 먹고 활동비로 썼다. 1996년 광주 5.18특위가 구성되어 전두환, 노태우가 구속되었다. 그해 가을, 대학 기자 대표로 두 피고인 바로 뒤에 자리하여 재판을 볼 수 있었다. 취재한 것들로 보도자료를 만들어 전국 대학신문에 보내고 혼자 망월동 묘역을 찾은 기억이 있다. 그리고 얼마 안 있다가 군에 입대했다."
- 해병대 장교로 예편했다. 군 생활은 얼마나 오래 한 것인가. 또한, 청춘을 보낸 게 군대다. 당연지사 즐거운 일도, 견디기 힘겨웠던 일도 있었을 듯한데.
"1997년 임관하여 2003년 대위로 전역했으니 만 6년을 해병대에 있었다. 낙하산 강하, 헬기 레펠, IBS, 사격, 구보, 전술훈련이 즐거웠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편했다. 내가 군인임을 자각하고 군인으로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보람도 있었다. 그런데... 사단 전 병력이 주말을 포함한 일주일 동안 골프장에서 토끼풀을 뽑은 적이 있다. 사령관이 골프 치러 오기 전까지 끝내야 하는 임무였다. 잔디는 건들지 않고 뿌리까지 제거해야 하는 작업을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해야 했다. 라운딩을 하던 민간인이 우리를 보며 흘리던 웃음이 아직도 기억난다. 해병으로서, 장교로서 자괴감이 들었다. 전역을 결심한 계기였다. 지금도 골프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 왜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었나. 그리고, 그 시기는.
"10년 전, 그러니까 마흔에 첫 소설을 썼다. 외향적으로 알고 있던 내 성격에 의심이 들기 시작한 때였다. 건강했던 몸이 자꾸 병원을 찾게 되고 경제적으로도 무척 힘든 시기였다. 자꾸 동굴로 기어들어 은둔하려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를 극복하고자 처음에는 에세이들을 필사했다. 그러다가 시를 베끼게 되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가 소설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소설을 썼는데, 안 흔들리고는 소설을 쓰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혀. 오히려 군대 경험이 한쪽으로 치우친 시각의 균형을 맞추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맡은 임무가 험해서 그렇지 거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인간이 극한 환경에서 어떻게 단순화되는지, 폭력적인 권력에 개인이 굴복하고 나아가 그 일부가 되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었다. 거친 환경에서도 고귀한 성품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분께 감동받기도 하고, 군인을 천직으로 알고 국가를 사랑하며 임무에 헌신하는 선후배 장교들 앞에 부끄러워진 적도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황석영, 현기영 작가도 해병대 출신이다."
▲ 해병대 장교로 임관하던 시절의 소설가 김도일(가운데). |
ⓒ 김도일 제공 |
- 왜 하필 '포항'이라는 소재에 천착해 작품을 썼고, 쓰고 있는지. 앞으로도 그럴 것인지.
"내가 사는 곳이 이야기가 풍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소설을 쓰기 전부터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소설 첫 응모를 '포항 소재 문학상'에 했는데 입상을 하게 되었다. 상을 받고 나니 거기에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사명감 같은 것이 생긴 것이다. 소재를 구하기 위해 자료를 찾다 보니 묻혀 있기엔 너무 아깝고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많았다. 나만의 보물창고를 발견한 기분이랄까. 억지로 끼워 맞춰 어색하지 않는 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부합된다면 앞으로도 포항을 소재로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자료를 찾고 공부를 해나가는 그 자체도 재밌다."
- 오십에 가까워 첫 책을 냈다. <어룡이 놀던 자리>를 받아들었을 때는 기분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섞였었다. 기쁠 것이라는 예상과 다른 감정이 몰려와 당황스러웠다. 출판사로부터 책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그냥 멍했다. 후에 내 안에서 커다란 덩어리가 빠져나간 듯이 허탈감과 공허함이 밀려왔다. 그 여파가 몸에 영향을 미쳐 몸살을 지독하게 앓았다. '이제 어떡하지'라는 불안감도 있었고 내 이야기가 이제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슬퍼 눈물도 조금 흘렸다. 한 일주일 앓고 나서야 겨우 기뻤다."
- 어려운 질문이 될 수도 있겠다. 책에 수록된 작품 중 독자들에게 '만약 1편만 읽는다면 이걸 보세요'라고 말하고 싶은 것과 그 이유는.
"표제작인 '어룡이 놀던 자리'로 하겠다. 개발시대 포항의 이면을 압축하여 담았다. 또,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지형, 마을에 대한 향수와 어쩔 수 없이 실향민이 되어야 했던 이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썼다. 다른 작품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포항이라는 소재에 기대어 쓴 것이라면 이 소설은 포항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이다. 실제 당시 거기 살았던 분으로부터 사실적으로 잘 표현해줘서 고맙다는 칭찬을 들어 보람을 느낀 작품이기도 하다."
- 앞으로도 '포항'이 당신 소설의 유일한 소재인가. 그렇다면 그 이유를, 아니라면 어떤 소재를 찾아갈 것인지 궁금하다.
"매우 중요하지만 유일한 소재는 아닌 것 같다. 소설 쓰기를 집짓기에 비유하고 싶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집을 짓는 방식과 재료는 다르다. 한국은 흙과 나무, 유럽은 대리석으로 집을 짓는다. 하지만 공통적인 집의 목적은 인간의 휴식과 거주이다. 소설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가 특징을 가장 잘 이해하고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재료가 바로 포항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포항이라는 소재에 맞지 않는데 억지로 끼워 넣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는 다른 소재를 찾아야겠지. 그러나 지금까지는 포항에서 나오는 재료로 충분하다."
- 당신에게 소설, 의미를 확장하면 문학은 대체 뭔가.
"계속 길을 찾아 헤매고 끊임없이 흔들리게 하는 것. 그럼으로써 나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인생에 대한 어떤 확신이 들 때 더 이상 소설을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문학이란 흔들림의 산물이자 답이 없는 의문의 제기라고 정의하고 싶다. 이런 사고는 지금까지 발견된 생물 중 인간만이 가능한 것이다."
"평범한 일상이다. 소설 또한 이 범주에 들어간다.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삶을 살고자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 방황한 적이 있었다. 제자리로 돌아오기가 참 힘이 들더라. 평범한 삶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특별한 삶이란 평범한 일상이 쌓인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작년에 태풍이 포항을 할퀴었을 때 살던 곳에 많은 이가 생명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한동안 당연하지 않았다. 아침에 인사하고 헤어진 이를 무사한 모습으로 저녁에 다시 마주하는 것, 따뜻한 물로 씻은 후 밝은 등 아래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것, 내일의 노동을 위해 낡은 침대에 몸을 누이는 것이 소중하다."
▲ 작품집 출간 후 모교에서 강연회를 연 김도일 작가. |
ⓒ 김도일 제공 |
- 소설을 통해 무엇에, 어떤 지점에 가닿고 싶은가.
"글쎄, 나도 그것이 궁금하다. 지금 위치를 알아야 어디를 갈 건지 결정할 텐데 나의 소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검푸른 바다 한가운데 나침반도 없이 떠 있는 기분이다. 위치와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방송통신대 국문과를 다니고 있다. 지금 졸업반인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년에 대학원에 진학하면 길이 보이려나."
- 향후 10년을 두고 볼 때, '소설가 김도일'로서 이루고 싶은 희망은. 더불어 '인간 김도일'의 꿈은 뭔가.
"10년 뒤에도 소설을 쓰고 있거나 쓰려고 구상 중인 상태면 좋겠다. 그리고 소설 창작 외에 외국 문학작품을 번역하는 것에 도전해보고 싶다. 이 둘은 비슷한 작업 같지만 사용하는 뇌의 영역이 전혀 다르다. 10년 후면 다니는 직장에서도 정년이 다 되어 갈 터인데 소설과 번역을 번갈아 한다면 퇴직 후의 삶이 아주 재밌을 것 같다. 이를 위해서 10년 동안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 준비하는 소설은 어떤 것이고, 기필코 '이것만은 쓰고 싶다'는 작품이 있다면 대략적 내용은.
"준비 중인 장편소설이 있다. 역시 포항을 배경으로 한다. 일제강점기 구룡포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해방 후 일본으로 쫓겨난 사람들을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재일동포와 함께 다뤄보고자 한다. 이들의 상황은 정반대이지만 양쪽 나라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처지이다. 현재 자료조사 중인데 이 단계에서부터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많은 소설가들이 꿈꾸는 것처럼 긴 소설에 대한 욕심도 있다. 언젠가는 경북 동해안 일대 근대를 배경으로 최소 세 권 이상 되는 분량의 이야기를 긴 호흡으로 풀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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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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