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제정안’ 해부…의사들과 간호사들은 왜 싸울까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간호협회(간협)가 간호법 제정안을 놓고 벼랑 끝 싸움을 벌이고 있다.
여야도 간호법 제정안을 둘러싸고 정면충돌하고 있다. 여야의 전쟁은 의사협회와 간호협회 간의 갈등에 대리전 양상도 띠고 있다.
핵심 쟁점법안으로 부상한 간호법 제정안은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된 상태다.
의협은 간호법 제정안이 13일 본회의 표결에서 통과될 경우 ‘총파업’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간협도 법 통과가 무산될 경우 ‘준법투쟁’ 등에 나설 것이라고 맞불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갈등의 본질은 의료서비스 시장을 놓고 벌이는 헤게모니 싸움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간호업무의 영역을 넓혀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간협과 기존 우위를 지키려는 의협 간의 이해관계 다툼이라는 것이다.
간협은 현행 의료법이 의료기관 이외 지역사회에서의 요양·방문간호 등 ‘돌봄’의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는 간호업무의 개념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를테면 현행 체계에서는 주민센터 같은 비의료기관에 배치된 간호사들의 경우 건강관리나 상담 활동을 할 수 있지만, 혈압 측정 등 의료행위를 하는 것은 불법이 된다는 게 간협 측 설명이다.
이 때문에 간협은 지역사회에서의 간호업무 비중이 커지는 현실이 법률에 반영돼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간호법 제정안 1조는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이라는 문구로 간호업무 영역의 확장을 명시했다.
백찬기 간협 홍보국장은 1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간호법의 핵심은 ‘지역사회’ 개념과 간호사 처우 개선”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의협은 ‘간호사의 직역 이기주의’라고 반발하고 있다.
간호업무 범위를 지역사회까지 넓히면 간호사가 의사의 지도 없이 방문간호센터 등을 ‘단독 개원’해 독립적 간호업무를 허용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김이연 의협 대변인은 “지역사회 의료의 주도권을 간호사가 가져가겠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간협은 간호사의 ‘단독 개원’이 불가능하다고 맞서고 있다.
간협은 간호사 출신의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2월 1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원회에서 “이 법(간호법)이 통과되면 간호사가 단독 개원할 수 있는가”라고 묻자, 류근혁 당시 보건복지부 2차관이 “그것은 어렵다”고 답한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의협은 간호법 제정 시도로 현행 의료법 체계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의료법은 의료계 종사자 관련 규정을 하나의 법에 묶어놨는데, 간호법이 빠져나가면 다른 의료계 직군도 이탈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협 관계자는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한의사법, 물리치료사법 등도 줄줄이 생기면서 의료법이 갈기갈기 찢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최훈화 간협 정책전문위원은 “현행 의료법은 의료기관에만 국한된 법”이라며 “간호업무가 확대돼 지역사회까지 포괄하는 상황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간호업무 개념을 의료법에 억지로 담고 있는 것은 법체계상 무리가 있기 때문에 간호법을 별도로 제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반박했다.
의협은 간협이 일단 간호법을 통과시킨 뒤 추후 법 개정이나 시행령을 통해 ‘단독 개원’ 등 독소조항을 넣을 수 있다는 주장도 편다.
의협 관계자는 “일단 법을 띄워놓고 나중에 수정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간협 관계자는 “시행령이 모법을 뛰어넘을 수 없다”며 “단독 개원 논란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응수했다.
민주당은 간호법 제정안의 원안 통과를 당론으로 정한 상태다.
반면 국민의힘은 간호사를 제외한 다른 의료계 종사자들의 반발이 크니 좀 더 숙의하자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간호법 제정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킬 경우 양곡관리법에 이어 간호법이 윤석열 대통령의 ‘2호 재의요구권’(거부권) 법안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민의힘은 지난 11일 의료현안 민당정 협의회를 통해 중재안을 내놓기도 했다.
간호법 1조의 ‘지역사회’ 부분을 지우고, 법안 이름을 ‘간호사 처우 등에 관한 법률’로 바꿔 간호사 처우 개선을 보강하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지역사회’ 삭제는 의협 측을, 간호사 처우 개선은 간협 측 입장을 감안한 절충안이었다.
그러나 간협 측이 회의장을 박차고 나오면서 중재안은 휴짓조각이 됐다.
간협 관계자는 “제일 핵심인 지역사회를 쏙 빼고, 법안 이름까지 바꿨으니 중재안이 아니라 폐기안”이라고 수용불가 입장을 밝혔다.
복지위 여당 간사인 강기윤 의원은 통화에서 “의료계 직역 간에 다툼이 있으니 충분히 숙의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위 소속 다른 여당 의원은 “야당이 의료계를 편가르기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김성주 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간호법은 굉장히 오래전부터 입법 요구가 있었지만 국회 문턱을 못 넘었다”며 “간호 영역이 활성화되면서 ‘간호’에서 ‘돌봄’으로의 변화를 담아낼 법이 필요해졌다”고 말했다.
복지위의 한 야당 의원은 “간호법 제정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간호협회를 찾아 약속했던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구자창 이동환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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