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 돈 13% 빚 갚는다"...가계부채 취약국가 지목된 韓의 굴욕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의 가계부채 위험을 경고했다.
IMF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발간한 ‘세계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가계부채 취약 국가로 4개 나라를 지목했다. 스웨덴·벨기에·프랑스 그리고 한국이다. IMF는 이들 국가의 가계빚에서 출발한 위험이 경제 전체로 번지고 있다며 주요 지표 하나를 근거로 들었다. 가계 부문 총부채상환비율(DSRㆍDebt Service Ratio)이다. 가계가 일정 기간 갚아야 할 대출 원리금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IMF가 국제결제은행(BIS) 방식을 토대로 산출한 한국 가계의 부채상환비율은 지난해 2분기 13.4%를 기록했다. IMF가 가계부채 건전성을 점검한 17개 주요국 가운데 호주(13.7%) 다음으로 높았다. 이 기간 한국 가계는 벌어들인 돈 가운데 13% 이상을 빚과 이자를 갚는 데 썼다는 의미다. 일본이나 미국·독일 등은 이 비율이 한국의 절반 수준인 6~7%대에 불과했다.
2007년 미국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로 세계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대부분 선진국은 가계빚 ‘다이어트’에 나섰지만, 한국은 거꾸로였다.
IMF 집계에 따르면 한국 가계의 부채상환비율은 금융위기 때인 2007년 1분기 11%에서 지난해 2분기 13.4%로 2.4%포인트 올랐다. 주요 17개국 가운데 상승 폭 1위다. 스웨덴(1.6%포인트)·벨기에(1.1%포인트)·프랑스(1.1%포인트)가 그 뒤를 이었다. 같은 기간 호주(16.7→13.7%), 미국(11.5→7.5%), 영국(12.6→8.4%), 스페인(10.2→5.9%) 등이 강도 높은 가계부채 구조조정을 펼친 것과 반대다.
한국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가능성을 최근 사례 연구를 통해 경고했던 IMF는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를 연이어 지적했다. IMF는 보고서에서 “(대부분 선진국은) 2000년대 중반보다 강화된 주택담보대출 기준을 적용하면서 부실 대출 위험을 줄였고, 가계의 부채상환비율 역시 2007년 대비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면서도 “벨기에ㆍ프랑스ㆍ한국ㆍ스웨덴 같은 국가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가계부채가 오히려 증가하면서 가계 부문의 취약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2007년 말 665조원이었던 가계빚(신용)은 지난해 말 1867조원으로 차올랐다. 이 기간 주택담보대출도 344조원에서 1013조원으로 3배 가까이 불었다. 코로나19 위기 전후 풀린 막대한 유동성과 저금리 대출은 주택가격을 끌어올렸고,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졌다. 이후 고물가ㆍ고금리 ‘역풍’이 불면서 가계빚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한국 가계의 부채상환비율은 13%대로 2007년 당시 미국(11%대)보다도 높다.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16년 전 미국보다 더한 원리금 부담에 한국 가계가 짓눌리고 있다는 뜻이다. 한은은 “경기 불확실성이 크다”(이창용 총재)는 이유를 들며 지난 2월에 이어 이달 기준금리를 연 3.5%로 묶어두기로 결정했는데, 급증한 가계부채도 동결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다른 선진국은 60~70% 정도지만 한국은 100%가 넘는다”며 “공식 부채 통계에 잡히지 않는 전세 보증금까지 포함하면 한국의 부채 비율은 훨씬 높을 수준으로, 한국 경제의 특이성과 취약성이 여기서 드러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우 교수는 “대부분 신용이 아닌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이고, 비교적 소득ㆍ신용 상태가 양호한 대출자 비중이 높기 때문에 단기간에 큰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며 “대신 고금리로 인한 가처분소득 감소로 소비 등 거시적으로 경기 위축이 확대될 위험이 있다”고 평가했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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