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을 만났는데요, 또 싸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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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호 기자]
머리론 안다고 생각해도 막상 실제 상황이 닥치면 익숙한 패턴에 어김없이 사로잡혀 마음먹었던 대로 잘되지 않는 것이 있다. 내겐 가까운 이와의 갈등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 그런 경우다. 제법 오랜 시간을 만난 연인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같은 패턴으로 부딪힌다.
차라리 심각한 문제로 싸운다면 모를까. 늘 별것도 아닌 걸로 싸우니 허탈함이 든다. 괜스레 별것도 아닌 걸 들고와 잔잔한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는 상대방을 원망해 보다가도 그것이 별게 아니란 것은 순전히 나만의 기준이란 사실을 되뇌인다. 정말 별 게 아니라면 그냥 눈 감고 져줄 법도 한데 그러지 못하고 기어코 시비를 가려내다 일을 더 키운 속 좁은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도 든다. 우리의 다툼은 늘 그렇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언제나 그 끝은 화려(?)하다.
인터넷에 커플 싸움, 부부 싸움 등의 키워드를 검색해 본다. 이런 키워드들을 검색해 보기는 연애 초 이후로 정말 오랜만이었다. 배움은 평생이라는데 그간 얼마나 스스로 잘하고 있다는 착각과 오만 속에 빠져있었던 것일까. 커리어를 개발하는 법, 돈 버는 법에 대한 관심은 높았지만 정작 가까운 사람과, 주변 이웃과, 회사 동료들과 잘 지내는 법, 보다 훌륭한 인격의 사람이 되는 법에 대해선 소홀했구나 하는 자기반성도 하게 된다.
검색을 하다 보니 자주 거론되는 사람이 눈에 띈다. 관계 심리학 전문가 존 가트먼 박사다. 그는 연인, 부부간 다툼에 관하여 침착하게 감정을 컨트롤하면서 서로가 다른 사람임을 존중하는 태도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늘 평온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기만 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때로는 다툼도 필요하다고 박사는 말한다. 단 이를 위해서는 '잘 다투는 법'에 대해 배우고 실천을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감정 컨트롤하기
가트먼 박사는 커플/부부끼리 다투면 때로는 감정이 서로 격해지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라고 말한다. 다만 그것이 컨트롤 가능한 범위 내여야 할 것이다. 정확히 수치화할 수는 없겠지만 박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싸움이 끝난 뒤 쉽게 화해할 수 있는 정도가 적정선이다. 감정이 격해지다가도 뒤끝 없이 쿨하게 잊는 사람들이 있다. 개인마다 뒤끝이 생기지 않고 빠르게 해소할 수 있는 적정한 감정선을 찾아야 한다.
박사의 의견에 개인적인 견해를 덧붙이자면 다툼 중에 서로가 거울이 되어서 상대가 자신의 감정이 격해졌음을 알려줬을 때 즉각적으로 알아차리고 조정이 될 수 있을 정도가 적정선이다. 감정이 격해지면 스스로가 선을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대의 피드백에 정신을 못 차리고 더 길길이 날뛴다면 적정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입장을 명확히 밝히기
사람은 모두 각자만의 주관적 세계에서 살아간다. 같은 경험을 해도 서로 느끼는 바가 다른 것은 서로가 다른 '안경'을 끼고 세상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문제인 것이 상대방에겐 전혀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렇기에 상대의 세계에 노크를 하는 게 먼저다. 그곳에 들어가 자신의 세계가 어떠한지 소개해야 한다. 어떤 상황을 겪었고, 거기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다는 것을 전달하여 상대의 세계에서도 그것이 문제 상황이 될 수 있음을 인식시키는 작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셜 로젠버그가 창시한 비폭력대화(NVC)에서는 이를 두고 '나 전달법(I-message)'이라고 말한다. 주어를 '나'로 시작하며 자신이 관찰한 것, 자신이 느낀 것을 위주로 서술하며 자신이 바라는 것과 부탁하고 싶은 것으로 이어지는 화법을 말한다. 대부분의 갈등의 시작은 상대의 행동부터 지적하는 '너 전달법(You-message)'에 원인이 있다. 충분한 상황에 대한 공유 없이 상대의 행동부터 지적하면 상대는 명령, 평가, 공격, 비난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고 방어기제부터 펼치게 되기 때문이다.
최악의 습관 두 가지 : 조롱과 비아냥, 과거 가져오기
가트먼 박사는 부부 관계에서 표현되는 감정을 20여 가지로 나누고 이 중 상대를 깔보는 언행이 관계를 가장 악화시키는 주범이라고 했다. 소리는 지르는데 말은 점잖게 하는 쪽과 감정은 차분한데 온갖 냉소와 조롱을 일삼는 쪽에 후자가 더 갈등의 불씨를 키운다.
당면한 현재의 문제와 관계가 있든 없든 과거를 들먹이는 것 또한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먼 결과를 낳는다. 과거를 생각하는 것은 '당신 또 시작이야?', '매번 정말 지겹다'와 같이 상황 해결에 도움 되지 않는 말만 낳거나, '당신도 저번에 그랬잖아'와 같은 꼬리 잡기, 논점 흐리기와 같은 결과를 낳기 십상이다. 이러다 보면 배는 산으로 가며 무엇이 갈등의 원인이었는지조차 망각하게 된다. 과거를 끌어오며 불씨를 키우기보다는 눈앞의 불을 진압하는 게 급선무다.
나부터 잘하자
고칠 점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고쳐야 할 대상을 내가 아니라 상대로 생각하는 관점이다. 각자만의 주관적 세계에서 사는 인간의 특성상 우리는 상대방을 바꿀 수 있는 환상 속에 쉽게 빠지고 만다. 상대의 변화는 상대의 몫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어떤 상황에 어떤 감정을 느끼는 사람인지, 나의 세계에 상대를 초대하는 것뿐. 그 상대가 거기에 들어와서 어떤 것을 느끼고 어떤 행동을 할지는 나의 통제 영역 밖이다.
결국 언제나 귀결은 내가 되어야 한다. 다투고 나서 늘 드는 생각. 나는 최선을 다했나?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성숙하게 임했나? 단 한 번도 확신을 가지고 그렇다고 대답해 본 적이 없다. 최상의 공격은 방어라는 말이 있다. 상대의 언행과 가치관을 판단하고 거기에 열을 올릴 시간에 스스로를 점검하고 나의 세계가 더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 될 수 있도록 가꾸는 데 시간을 쏟자. 그 시작은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먼저 사과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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