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가스비 90만원 쓴다…'친정엄마' 김수미, 요리대모 된 사연

홍지유 2023. 4. 1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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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벌나게들 먹네. 이거 다 내가 싸온 거랑게…거 미더덕 뜨거워서 조심해야 하는디."

전라도 손맛으로 사돈의 콧대를 꺾고 노래를 부르는 이는 배우 김수미(74). 사돈 잔칫집에서 몰래 요리 솜씨를 발휘해 딸의 체면을 세워준 후 걸쭉하게 노래를 부른다. 가사에는 "내 딸 만은 기 펴고 살 수 있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을 담았다. 가수 안정애가 부른 '대전부르스'를 편곡해 만든 뮤지컬 '친정엄마'의 넘버다.

배우 김수미가 지난 3월 31일 신도림 대성디큐브아트센터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친정엄마'는 누적 공연 320회, 관객 수 40만명을 기록한 스테디셀러 뮤지컬이다. 결혼할 딸이 육아를 하며 친정 엄마를 향해 느끼는 복잡다단한 감정과 엄마의 한결같은 사랑을 일상 언어로 풀어냈다. 엄마 역에는 김수미·정경순·김서라, 딸 미영 역에는 김고은(가수 별)·현쥬니·신서옥이 발탁됐다. 코로나19로 공연을 중단한 뒤 3년 만에 다시 관객을 찾았다.
2009년 초연부터 지금까지 14년간 뮤지컬 '친정엄마'에서 엄마 역을 맡은 배우 김수미(74)와 작가 고혜정(55)을 지난달 31일 서울 구로구 디큐브아트센터에서 만났다.

김수미는 "3년 동안 '친정엄마' 무대에 못 섰지만, 첫 공연에 들어가니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며 "고혜정 작가가 처음부터 나를 모델로 두고 대본을 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꼭 맞는 편한 구두 같은 작품"이라고 했다.


"친정엄마 그리울 때마다 음식 나눴다"


그에게 '친정엄마'가 각별한 작품으로 다가온 이유는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김수미는 "18살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70이 넘도록 평생 엄마를 못 불렀다"며 "극 중에서 엄마를 목 놓아 부를 때면 정말 하늘에 있는 엄마를 부른다는 마음으로 한다. 매번 이렇게 애달플 수가 있나 싶다"고 했다.

김수미는 요식업을 하는 사업가이기도 하다. 김수미는 요식업을 시작하게 된 것도 "엄마 손맛이 그리워서였다"고 했다. "임신으로 입덧 할 때 먹는 족족 토해냈는데 그때 돌아가신 친정 엄마의 겉절이와 풀치(어린 갈치) 조림 한 입만 먹으면 살 것 같다는 생각에 통곡했다. 그러다 '어디 한 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게 지금의 사업이 됐다"는 것이다.

배우 김수미(왼쪽)와 김고은(가수 별)이 가 4일 서울 구로구 디큐브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친정엄마' 프레스콜에서 하이라이트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뉴스1


엄마 손맛이 그리워 연예계의 '요리 대모'가 됐다는 김수미는 지금도 동료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위해 반찬을 싼다. 손이 커서 한 달 도시가스비만 90만원이 나온다고 한다. "가정집에서 영업장 수준으로 가스를 써서 가스 공사에서 점검을 나온 적도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고 작가는 "선생님이 연습실에 도시락을 싸 오셔서 '밥 먹게, 한 술씩 먹게' 하신 게 벌써 14년이 됐다"며 "연습실도 뮤지컬 제목처럼 엄마와 딸 같은, 가족 같은 분위기"라고 했다.


"매 회차 애드립에 감탄…김수미 이상은 없다"


고 작가는 14년 동안 수도 없이 "김수미를 생각하고 대본을 썼냐"는 질문을 받았다.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면서 자식 입에 한 숟갈이라도 더 넣으려고 용을 쓰는 친정 엄마 역에 전북 군산 출신의 김수미가 더할 나위 없는 캐스팅이라서다. 고 작가는 "선생님은 매 회차 애드리브를 보여주시는데 전혀 이질적이지 않다"며 "배우 김수미 이상으로 이 정서를 살릴 사람이 없다"고 자부했다.

고 작가는 주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써왔다. TV 코미디 '금촌댁네 사람들'(KBS2), 에세이『줌데렐라』,『여보, 고마워』 등이 모두 가족 이야기다. 그는 "가장 평범한 것을 가장 재밌게 풀어내는 작가"라는 수식어를 가장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했다.
"'친정엄마'는 평범한 이야기지만 생활 밀착형 대사로 이뤄져 있어 배우들의 음성을 통해 라이브로 관객에게 전달될 때 더 힘이 있다"면서다. 14년째 하는 공연이지만 틈틈이 연습실에 가고 공연장에서 관객 반응도 살피는 그는 공연을 보고 나오는 관객이 "작가가 우리 집에 왔다 갔나 봐"라며 웃는 모습을 봤을 때 가장 뿌듯했다고 했다.

뮤지컬 '친정엄마'를 쓴 고혜정 작가(왼쪽)과 주인공 친정엄마 역의 배우 김수미.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의 차기작은 중년의 사랑 이야기다. 고 작가는 "요즘은 중년 싱글이 많은데 이들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고 할 때 '재산 보고 결혼한다'라거나 '다 늙어서 주책없다'는 반응이 흔하다"며 "나이 든 사람도 사랑을 하고 싶다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라고 했다.

'친정엄마'에 대한 인터파크 관객 평은 "김수미 배우의 연기에 신나게 웃다가 한바탕 울었다", "안경에 휴지를 끼워야 할 정도로 눈물이 났다" 등 연기에 대한 호평이 다수다. 뮤지컬 넘버는 '님과 함께', '둥지', '어쩌다 마주친 그대' 등 유명 가요를 편곡해 듣기에 친숙하다. '친정엄마'는 6월 4일까지 서울 구로구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배우 김수미는 인터뷰가 끝나자 기자에게 직접 담근 김치 한 보따리를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내 또래 중에 지금도 엄마가 살아 계신 분도 있어요. 전화로 누가 '엄마' 소리만 해도 부러워요. 내가 노래를 부르다가도 '엄마' 하는 순간 눈물이 쏟아져. (이 공연은) 건강만 허락하면 죽을 때까지 하고 싶어요."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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