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없는 진료실서 '똑똑한 환자' 되는 법 [의사들 생각은…]

오상훈 기자 2023. 4. 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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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조선과 의사 전용 커뮤니티 플랫폼 인터엠디가 의사 500명에게 '짧은 진료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는 방법'을 물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헬스조선은 인터엠디(InterMD)와 함께 매월 정기적으로 주제를 선정해 ‘의사들의 생각’을 알아보는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공유하려고 합니다. 인터엠디는 4만 2000여 명의 의사들이 회원으로 있는 '의사만을 위한 지식·정보 공유 플랫폼(Web, App)'입니다. (편집자주)

우리나라는 진료 시간이 짧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3분 진료’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긴 대기시간 끝에 의사를 만나도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몰라 찝찝함만 남기고 병원을 나서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의사들한테 물었습니다. 진료시간을 알차게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의사 500명, “환자 한 명당 평균 3~5분 진료”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진료를 보려면 평균 74일을 기다려야 합니다. 74일 후에 의사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5분 남짓.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의원이 전국 국립대병원 9곳에서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3분보다는 길지만 여전히 짧게만 느껴집니다.

사진=헬스조선DB
의사 500명에게 환자 한 명당 평균 진료 시간이 얼만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196명(39.2%)이 ‘3~5분’을 꼽아 1위를 기록했습니다. 2위는 102명(20.4%)이 꼽은 ‘5~7분’. 그 다음으로는 ▲1~3분(92명, 18.4%) ▲10분 이상(37명, 7.4%) ▲1분 미만(31명, 6.2%) 순이었습니다. 진료 시간은 병원 유형이나 진료과마다 다르지만 평균 3~5분 정도인 듯합니다.

짧은 진료 시간은 환자들에게도 고역이지만 의사들에게도 마찬가집니다. 진료시간이 짧아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 물어보니 157명(31.4%)의 의사들이 ‘환자와의 신뢰감 형성이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152명(30.4%)은 ‘환자의 증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고 답했고 115명(23.0%)는 환자의 만족감 저하를, 38명(7.6%)은 불필요한 검사 회수의 증가를 우려했습니다. 나머지 38명(7.6%)은 별 문제 없다고 답했습니다.     

◇낮은 수가, 환자 쏠림 등 복합적으로 진료 시간 짧게 해
진료시간이 짧은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낮은 수가입니다. 의료행위에 대한 비용은 국가가 정합니다. 초진료는 1만7320원, 재진료 1만2380원 등으로 정해져있습니다. 암 수술도 마찬가집니다. 의료서비스에 대한 비용은 환자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진찰료는 최저임금 대비 매우 낮은 편에 속합니다. 한림대성심병원 김현아 교수 연구팀이 영국의학저널의 자매지인 ‘BMJ Open’에 게재한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진찰료는 최저임금의 1.37배로 OECD 8개 국가와 비교했을 때 매우 낮은 축에 속했습니다. 8개 국가의 진찰료는 평균적으로 최저임금의 4.02배 미국은 10.34배에 이르렀습니다. 진찰료가 높은 미국의 평균 진료 시간은 21.1분입니다.

상황이 이러니 상급종합병원이든 동네병원이든 운영비나 인건비 등을 충당하려면 짧은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환자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설문조사에서도 무려 349명(69.8%)의 의사들이 짧은 진료 시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낮은 수가’를 꼽았습니다. 

특정 지역이나 병원 쏠림이 심하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의료기관의 지역 쏠림이 전세계에서 가장 심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소위 빅5는 5개 대형상급종합병원을 일컫는데 암 등 중증질환 뿐만이 아니라 경증 질환이나 외래 환자까지 쏠리는 실정입니다. 환자 수가 늘어나면 진료시간은 그만큼 짧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설문조사에서 70명(14.4%)의 의사들이 ‘일부 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을 짧은 진료 시간의 원인으로 꼽은 까닭입니다.

◇병력, 약 복용 이력, 증상 시작일, 가족력 정도는 알아가자
짧은 진료 시간은 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수가나 인력 등 넘어야 할 산이 한 두 개가 아닙니다. 또 짧은 진료 시간이 오히려 장점이라는 시선도 있습니다. 한국인의 암 사망률은 전세계에서 가장 낮습니다. 높은 의료 접근성은 환자들이 병원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했고 이는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을 빠르게 식별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병원 가기가 쉬우니 의사와 더 오래 대화한다고 뭐가 더 좋을까 싶기도 합니다.

환자들은 진료를 잘 봐서 비용과 시간 낭비를 줄이고 싶습니다. 병원을 떠난 뒤 찝찝함이 안 남았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선 환자도 진료 전에 잘 준비해야 합니다. 아무리 의료지식이 많은 의사라도 증상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거나 객관적인 차트가 없으면 진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사진=헬스조선DB
의사 500명에게 진료 전 환자가 알아오면 가장 좋은 게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300명이 ‘병력’이라고 답했습니다. 질환은 코스가 있기 마련입니다. 예컨대 간암은 간염, 간경화의 과정을 거쳐서 발병합니다. 그러므로 b형 간염 병력은 매우 중요한 진단적 가치를 가집니다. 병력 청취로만 진단할 수 있는 질환들도 많습니다. 이와 비슷한 규모인 267명이 ‘약 복용 이력’을 꼽았습니다. 약 복용 이력은 병력을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입니다.

293명의 의사들이 알아오면 좋을 항목으로 ‘증상 시작일’을 꼽았습니다. 감기와 독감, 폐렴을 구분하는 핵심 기준은 증상 시작일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증상이 언제 시작됐는지에 따라 나뉘는 질환들이 많습니다. 163명은 ‘가족력’을 꼽았습니다. 가족력은 가족 간 생활습관이 복합적으로 질환 발병에 영향을 끼쳤다는 걸 의미합니다. 의학적으로 3대에 걸친 직계가족 중 동일한 질환의 환자가 2명 이상일 때 가족력이 있다고 판단합니다. 고혈압, 당뇨병, 치매, 탈모 그리고 암 중에서는 대장암, 유방암, 난소암, 갑상선암, 위암, 폐암 등은 비교적 가족력이 뚜렷합니다.

사진=헬스조선DB
반대로, 안 그래도 짧은 진료 시간을 허비하게 만드는 요인들이 있습니다. 329명의 의사가 ‘오래’, ‘며칠’과 같은 애매한 표현을 꼽았습니다. ▲221명은 ‘통증에 대한 과장된 묘사’ ▲129명은 ‘비용에 관한 질문’ ▲60명은 ‘식단·건기식 등 추천 요구’를 꼽았습니다.

◇진료 내용 녹음한다면 동의 정도는…
환자들이 싫어하는 의사 유형이 몇 가지 있습니다. 말이 없는 의사, 권위적인 의사, 아무런 설명 없이 특정 수술·시술을 강요하는 의사 등이 대표적입니다. 마찬가지로 의사들도 선호하지 않는 환자 유형이 있기 마련입니다. 1위는 ‘동의 없이 녹음하는 환자’로 178명(35.6%)의 의사들이 꼽았습니다. 2위는 자기가 알고 있는 정보로 반박하는 환자(167명, 33.4%), 3위는 처방 대신 민간요법 등을 맹신하는 환자(140명, 28.0%)였습니다. ‘자신의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환자’를 꼽은 의사도 적지만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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