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행복'으로 가스라이팅? 결혼지옥 그린 '킬링 로맨스'

나원정 2023. 4. 12. 16:5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금요일(14일) 개봉 영화 '킬링 로맨스'
주연 이선균·이하늬 코믹 연기 변신
가정폭력 탈출기 장르 변주로 담아
14일 개봉하는 코미디 영화 '킬링 로맨스'는 섬나라 재벌 ‘조나단’(이선균, 가운데)과 운명적 사랑에 빠져 돌연 은퇴를 선언한 톱스타 ‘여래’(이하늬, 오른쪽)가 팬클럽 출신 사수생 ‘범우’(공명)를 만나 기상천외한 컴백 작전을 모의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맨왼쪽은 조나단의 오른팔격 해결사 '밥'이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먹다 보면 중독되는 민트 초코같은 영화죠.”(이하늬)
코미디 영화 ‘킬링 로맨스’(14일 개봉)의 주연 배우 이하늬는 지난 10일 열린 언론시사 후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공동 주연 이선균은 “대본을 처음 보고 ‘요상했다’”며 “처음 20분은 관객들도 당황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간 한국에서 쉽게 보지 못했던 영화란 것이다.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사 워너브러더스가 2020년 한국영화 제작‧투자에서 철수하기 전 만든 작품이다.
죽이는 로맨스란 제목의 ‘킬링 로맨스’는 ‘색감의 마법사’ 웨스 앤더슨 감독 풍의 동화같은 화면, 1980~2000년대 유행가를 대사처럼 쓴 뮤지컬 장면을 버무려낸 독특한 작품이다. 내용도 판타지 같다.
한국의 톱배우 여래(이하늬)가 남국의 섬 콸라에서 부동산 재벌 조나단(이선균)과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알고 보니 조나단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살인도 마다않는 폭군이다. 감옥같은 결혼에서 탈출하려는 여래의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여래의 팬클럽 출신의 이웃집 4수생 범우(공명), 조나단으로 인해 모든 걸 잃은 아프리카 타조도 역습에 가세한다.

'킬링 로맨스' 포스터. 주인공 여래(이하늬) 뒤쪽의 남편 조나단(이선균) 반라 초상화는 영화에도 부부의 저택 거실벽에 걸려있다. 여래는 자기애 과잉의 사이코패스 남편 조나단의 가스라이팅에 시달리다, 오랜 팬의 범우(공명)의 응원에 힘입어 불행한 결혼생활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10년 전 데뷔작 ‘남자사용설명서’에서 캐릭터 코미디의 재미를 선보인 이원석 감독이 코미디‧로맨스‧서스펜스‧공포 등 장르를 오가며 전작 스타일을 극대화했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2015)의 시나리오 작가 박정예가 각본을 맡았다.


발뒤꿈치+이하늬 얼굴…'발연기' 망가짐도 불사


중견 배우 이하늬‧이선균도 과감한 연기 변신을 했다. 이선균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드문 코믹 악역이다. 중동계 캐릭터를 내세운 할리우드 코미디 ‘보랏’ 시리즈의 과장된 표정과 몸짓이 연상된다.
여래는 디즈니 영화 속 마법의 성에 갇힌 공주처럼 묘사된다. 극 중 그가 연예계를 떠나는 계기가 되는 ‘발연기’ 논란 장면에선 발뒤꿈치에 이하늬의 얼굴이 합성된 ‘짤’이 나온다. 영화 초반부에 배치된 이 장면은 이 영화의 적나라한 웃음 코드를 예고하는 선전포고이기도 하다.
'킬링 로맨스' 초반부는 조나단(가운데, 이선균)과 여래(이하늬)가 남태평양 섬 '콸라'에서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래를 불한당에게서 구한 조나단의 절도는 결혼 후 여래를 숨막히게 하는 족쇄가 된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이후 H.O.T.의 ‘행복’, 비의 ‘레이니즘’ 등 히트 가요를 대사처럼 노래하며 춤추는 과장된 뮤지컬 장면이 수시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낯 간지러운 가사들이 인물들의 속내를 담아낸다. 이런 장면들을 즐길 수 있느냐, 당황하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극과 극으로 나뉠 수밖에 없는 영화다.

H.O.T '행복'으로 가스라이팅…이선균 악역 도전


굴욕을 참지 못하는 조나단은 아내에게도 완벽을 강요하며 그걸 사랑으로 포장한다. '발연기' 여래의 복귀도 막아선다. 여래가 반항하려 하면 주문처럼 H.O.T. ‘행복’을 반복해서 부른다. “한번도 난 너를/ 잊어본 적 없어/ 오직 그대 만을 생각했는 걸~”. 다 너를 위해서 하는 행동이라는 가스라이팅이다.
'킬링 로맨스'에서 주인공 여래의 팬클럽 '여래바래' 모습.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띄운 손모양은 극 중 여래의 강제 은퇴의 계기가 되는 출연 영화 동작을 본뜬 것이다. 할리우드 유명 SF 영화 '스타트렉' 속 외계인의 손인사를 패러디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여래는 범우에게 가정폭력 순간을 들키면서 현실을 직시하고 남편 곁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런 심리 변화를 드러내는 것도 뮤지컬 장면이다. 그룹 들국화의 노래 ‘제발’(“제발 그만 해둬/나는 너의 인형은 아니잖니~.”)을 남편 몰래 읊조렸던 그는 ‘레이니즘’을 여성 화자로 개사한 가사 “I'm gonna be a bad girl(난 나쁜 여자가 될거야)”을 외치며 남편에게 당당히 맞선다. 범우 등 그를 응원하는 팬들의 코러스와 군무가 곁들여진다.
‘알라딘’ ‘라푼젤’ ‘마법에 걸린 사랑’ 등 여성 캐릭터의 해방을 그린 디즈니 영화들부터 ‘스타트렉’의 외계인 손인사, 공명의 어수룩한 캐릭터에 묻어나는 주성치 식 유머까지 다양한 오마주, 장르 변주가 돋보인다. 엔딩크레디트가 끝난 후 쿠키 영상까지 방심할 틈이 없다. 뮤지컬 안무에는 댄스그룹 '프라우드먼'의 모니카가 참여했다.

OTT 금요일 출시 밴치마킹한 금요일 개봉 시도


배우 이선균(왼족부터)과 이원석 감독, 이하늬, 배유람이 24일 오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진행된 영화 ‘킬링 로맨스’(감독 이원석) 제작보고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는 6월 군대에서 제대하는 주연 배우 공명은 사진을 담은 입간판으로 대신 참석했다. 2023.3.24./뉴스1
스타일은 발랄하지만, 주제는 묵직하다. 평생 매니저의 관리와 대중의 인기에 흔들리며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살아온 톱스타가 결혼마저 남편의 가정 폭력에 시달리다가 이런 생활을 끝장내기로 결심하는 이야기다.

이 영화를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 소개한 이원석 감독은 “스스로 못났다고 생각해도 누군가 작은 용기를 줌으로써 나를 둘러싼 두려움의 벽이 무너지기도 한다”면서 “(극 중 상황을 종결짓는) 타조는 그런 의미였다. 우리가 하찮게 생각하고 지나친 무언가에서 덕(德)이 돌아오기도 한다. 영화가 조금이나마 착한 마음을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킬링 로맨스’는 드물게 금요일 개봉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신작의 금요일 출시에 익숙해진 관객 습관을 겨냥한 전략이다. 상업영화 극장 개봉은 수‧목요일이 일반적이다. 이 영화의 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위축된 시장 속 개봉작 경쟁을 분산시키며, 금요일 콘텐트 공개에 익숙해진 소비자 트렌드에 부합할 수 있는 결정을 통해 시장 다변화를 꾀했다”고 금요일 개봉 이유를 설명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