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심 필요" 줄다리기 행사에 쓰일 '고' 만드는 사람들 [복작복작 순창 사람들]

최육상 2023. 4. 1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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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군 군민의 날 '옥천줄다리기' 행사 준비 현장

전북 순창군 사람들이 복작복작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기자말>

[최육상 기자]

 옥천줄다리기에 사용될 40m가량의 줄로 암수 '고'를 만드는 현장.
ⓒ 최육상
"여기부터 1m가량이 점심 이전까지 오늘 오전에 감은 거예요. 장정 여러 명이 달려들어서 10일가량을 만들어야 해요."

지난 10일 오후 전북 순창군 순창읍 향토문화회관의 순창문화원 앞마당에는 문화원 회원들과 35사단에서 대민지원을 나온 병사들이 미리 꼬아놓은 새끼와 밧줄을 감아가며 줄다리기에 쓰일 '고'를 만드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고를 만드는 현장을 돌보던 문화원 박재순 사무국장은 "'고'를 만드는 건 손기술도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오는 14일, 순창읍 중앙로 일원에서 4년 만에 '제61회 순창 군민의 날'이 열린다. 순창 군민의 날을 화려하게 장식할 '옥천줄다리기'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손놀림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현장을 찾았다.

40m '고' 하나당 68명이 둘러메고 수백명이 줄다리기
 
 순창군민과 대민지원 나온 병사가 새끼와 줄을 한땀 한땀 감으면서 줄다리기에 쓰일 '고'를 만들고 있다.
ⓒ 최육상
문화원 회원인 김문소 순창인권심리개발원 원장은 "고 하나당 68명이 둘러메게 되는데 40m가량 되는 '고' 중간중간에 2.5미터 간격으로 사람들이 줄을 잡을 수 있도록 날개를 빼준다"면서 "예전엔 손으로 직접 새끼를 꼬아서 썼는데 지금은 우리가 개발한 기계로 꼰 새끼를 이용하고, 짚만 사용하면 약하기 때문에 선박용 굵은 밧줄(동바)을 속에 넣어 한 땀 한 땀 새끼와 밧줄을 감으면서 튼튼하게 만들어 나간다"고 설명했다.

순창군 구림면에 사는 한 병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묵묵히 새끼를 감아가던 한 군민은 "이번이 5번째 고를 만드는 작업인데 힘은 들어도 군민들이 함께 줄다리기를 하는 걸 볼 때면 고생한 보람을 느낀다"면서 "고 만드는 기술자 등록을 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줄 만드는 기술을 내가 배웠던 것처럼 가르쳐주고 싶은데 젊은 사람도 없거니와 안 배우려고 해서 우리 전통이 사라질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새끼 250여 타래· 선박용 굵은 밧줄 등 제작비 많이 들어
 
 줄다리기 줄에 쓰일 새끼 타래(한 묶음). 40m가량의 줄을 만드는 데 새끼 타래는 250여 개가 쓰인다고 한다.
ⓒ 최육상
작업을 돕던 병사는 "저는 1주일째 계속 고 만드는 일을 도와드리고 있는데, 시골에서 자랐어도 생전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고된 것보다는 신기하고 재미있다"면서 "줄다리기 행사에 저도 일조한다는 생각에 즐겁게 도와드리고 있다"고 소감을 전했다.

병력을 지원하며 현장에 나온 35사단 권혁창 순창지역대장은 "제가 순창에 근무한 지 6년이 넘었는데, 예비역 대상자만 해도 6년 사이에 1000명에서 700명가량으로 줄었다"면서 "젊은층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서 줄다리기를 예전만큼 활기차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향토회관에 안쪽에 마련된 무대 공간에는 새끼줄과 천막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김문소 원장은 "고를 만드는 데 쓰이는 새끼 타래는 250여 개가 들어가고 굵은 밧줄은 이번에 새로 교체했다"면서 "보기에는 '고'가 그냥 만들어지는 것 같지만, 제작 비용과 인력이 많이 투입되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옛날에는 '고' 한 개가 100m 달하기도
 
 전북 순창군 순창읍에서 벌어진 옥천줄다리기 모습(순창군청 자료사진)
ⓒ 순창군청
박재순 사무국장은 "옛날에는 '고' 한 개가 100미터에 달했다고 하니, '고' 두 개를 맞대면 정말 엄청난 규모였을 것으로 상상이 된다"면서 "고싸움으로 불리는 옥천줄다리기는 음력 정월 대보름날 순창읍에서 하던 놀이였는데, 3·1운동 이후 일제에 의해 중단되었다가 1985년 제23회 군민의 날부터 재현됐다"고 말했다.

옥천줄다리기는 현재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인 '하전리'와 순화리인 '은행정리'로 나눠 힘겨루기를 한다. 암수의 고에 비녀목이라는 통나무를 꽂고 양편에서 줄을 잡아당겨 승부를 결정짓는다.

박재순 사무국장은 "지금은 줄 만들기에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가 걸리고 줄다리기도 하루에 끝이 나지만, 예전에는 며칠 동안 줄다리기가 이어졌다"며 설명을 이었다.

"줄다리기에서 이긴 쪽이 줄을 차지하게 되면 다음 날 다시 줄을 더 키워 만들고는 했어요. 이렇게 며칠이 지나면 순창읍내 전체 장정들이 나서서 약 1km가량 되는 줄을 들고 농악 소리 가득한 가운데서 줄다리기를 이어갔어요. 줄에 쓰인 새끼줄은 주민들이 나눠 가져서 비료로도 사용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줄다리기를 끝내면 새끼줄 처리하는 것도 일이에요. 옥천줄다리기는 풍년을 기원하는 큰 행사로, 순화리쪽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어요."

순창문화원이 주관하는 옥천줄다리기 재현행사는 14일 오후 4시부터 시작해 시가행진과 축등행렬, 줄다리기, 먹거리부스 운영 등 오후 9시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이 손으로 빚어낸 40m가량의 긴 줄은 옥천줄다리기 행사에서 암수 '고'로 역할을 정해 진검 승부를 벌이게 된다.
 
 지난 2019년 옥천줄다리기를 하기 위해 현장으로 '고'를 이동하는 모습(순창군청 자료사진)
ⓒ 순창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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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 4월 12일자에 보도된 내용을 수정,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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