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입은 고3들, 펜 대신 총 들었다…프랑스도 홀린 'K-학원물'

어환희 2023. 4. 1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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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방과 후 전쟁활동'은 괴생명체 공격에 맞서기 위해 펜을 놓고 총을 집어든 고3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달 31일 파트1 공개 후 오는 21일 파트2 공개를 앞두고 있다. 사진 티빙


“얘들아 도망쳐!” 성진고등학교 3학년 2반 담임교사 박은영(임세미)은 도심 한가운데서 인간을 잔인하게 공격하는 괴생명체들을 보고 절박하게 외친다. 지난달 31일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방과 후 전쟁활동' 2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작품은 수능을 50일 앞둔 고3 학생들의 일상을 그리는 학원물인가 싶더니, 괴생명체의 등장을 계기로 밀리터리 SF 장르로 바뀌어 버린다.

지난달 20일 프랑스 UGC 씨네시티 상영관엔 400명에 가까운 관객들이 '방과 후 전쟁활동'을 보기 위해 모였다. 괴생명체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 펜을 놓고 총을 집어든 고3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프랑스 최대 드라마 시상식 '시리즈 마니아'에 한국 드라마 중 유일하게 초청 받았다. 관객들은 '신선한 장르와 소재'라는 반응을 보였다. '시리즈 마니아’의 프로그래밍 매니저 카를로 파시노는 “‘방과 후 전쟁활동’은 한국 고등학생의 일상이라는 현실적 소재를 밀리터리, SF와 결합해 신선하게 해석했다”고 평가했다.

'방과 후 전쟁활동'은 지난달 20일 프랑스 최대 드라마 시상식 '시리즈 마니아'에 한국 드라마로서는 유일하게 초청됐다. 사진 티빙

진화한 'K-학원물'…SF·좀비물 등 다양한 장르와 결합


10대의 일상을 소재로 한 학원물이 진화하고 있다. 입시와 청춘 로맨스가 학원물의 전부였던 시대는 지났다. SF·좀비물·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와 결합하면서 복합장르로서의 'K-학원물'로 변모하는 추세다.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보는 보건교사 안은영이 학교 내 미스터리를 해결해 나가는 '보건교사 안은영'(2020, 넷플릭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학교에 고립된 학생들이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지금 우리 학교는'(2022, 넷플릭스, 이하 '지우학') 등이 대표적이다. ‘약한 영웅’(2022, 웨이브)는 기존 학원물에 범죄물·액션물의 요소를 잘 버무려 호평을 받았다.

진화한 K-학원물은 국내는 물론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넷플릭스 작품의 화제성·흥행력 지표인 ‘첫 28일(4주)간 누적 시청 시간’에서 ‘지우학’은 5억 678만 시간을 기록하며 역대 비영어권 시리즈 4위에 자리 잡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학원물이 새로운 장르와 결합하고, 수위·표현·소재에 있어서도 기존에 다루지 않은 부분을 담으면서 지금까지 막혔던 분야에 물꼬가 트인 듯하다”며 “그것이 세계적인 성과로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지우학)'에서 학생들은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지우학은 넷플릭스 시리즈 톱10(비영어권)에서 4위를 차지했다. 사진 넷플릭스

“VFX 기술력 바탕” 웹툰·소설의 드라마화


복합장르의 학원물이 쏟아지는 데는 제작 환경의 변화가 큰 몫을 했다. 인기가 검증된 탄탄한 스토리의 웹툰과 소설이 영상화되는 게 대세로 자리잡으면서다. 하일권 작가의 웹툰 ‘방과 후 전쟁활동’에서 보라색 괴생명체 구체는 드라마에서 더 실감나게 표현됐고, 정세랑 작가의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 속 젤리는 드라마에서 알록달록 다양한 모습으로 구현됐다.

'방과 후 전쟁활동'을 제작한 송진선 스튜디오드래곤 CP는 “웹툰 원작을 구매하고 드라마 제작을 마치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건, 복합장르 제작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이제는 복합장르를 소화할 작가와 연출진이 많이 늘었다”고 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상대적으로 제작이 쉬운 웹툰·소설에서는 복합장르물을 많이 다뤘지만, 드라마에는 제작비와 기술력이 따라줘야 한다는 제약이 있었다”면서 “제작비 감당이 가능한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의 등장과 영화 쪽에서 노하우를 축적한 VFX(특수시각 효과) 기술력이 바탕이 되면서 복합장르가 크게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은 정세랑 작가의 원작소설 속 젤리를 알록달록하고 다양한 모습을 구현한다. 사진 넷플릭스

복합장르로 진화한 K-학원물의 매력은 특수효과로 구현된 독창적인 볼거리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와 모순을 학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에 축소판처럼 펼쳐놓는다는 점이다. 10대들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메시지가 우리 사회와 기성세대를 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는 “한국의 학원물이 ‘배틀로얄’ 등 일본식 학원물과 다른 점은 사회적인 부분을 깊게 파고 들어간다는 데 있다”며 "판타지 등 장르적 재미만 추구하는 것을 넘어서 그 이면에 있는 사회적·풍자적 요소를 끌어와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지우학’은 극 초반 등장하는 학교폭력 문제와 그것을 방치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건교사 안은영’은 아이들에게 평범한 삶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를 담아낸다. '방과 후 전쟁활동'에선 괴생명체의 공격으로 전시 상황이 되면서 성동고 3학년 2반에 군 소집 명령이 떨어지는데, 입시 가산점을 부여한다는 조건에 학생들은 군사 훈련에 참가하게 된다. 학생들이 불나방처럼 오로지 입시에만 매몰돼 있는 세태를 비꼰 것이다.

괴생명체의 위협으로부터 구출된 한 학생이 "자리를 떠나지 말라고 한 어른들의 말대로 현장에 남아있었다"고 대답하는 장면은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 한다. 좀비와의 싸움, 괴생명체와의 전투 등 입시 지옥보다 더 혹독한 전쟁터에서 아이들이 한층 강해지고 성장해가는 것도 K-학원물의 특징이다. ‘방과 후 전쟁활동’의 송 CP는 "10대에 느끼는 감정은 어디로든 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어른들도 그 과정을 거쳤기에 쉽게 공감할 수 있다"면서 "학원물을 단순히 학교 생활 이야기로만 다루기엔 아까운 이유"라고 말했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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