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강사로 살고 싶습니다

장하영 2023. 4. 1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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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영 기자]

 한국어수업 지도안입니다.
ⓒ 장하영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내 생활을 개혁하는 일이다. 배우는 것이 섬에 가는 것이라면 다리를 건너거나 배를 타거나, 혹은 비행기를 타야 한다. 타고 가는 과정이 있어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난 배우기를 좋아한다.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것에 마음을 여는 일이다.

외국인에게 우리 언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교원 자격증에 도전했다. 우리나라는 이미 다문화 국가가 되었다. 그들에게 우리 언어를 가르치는 일이 그들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여는 일이라 생각했다. 오늘은 다문화 학생을 상대로 한국어 교육 실습하는 날이다. 섬에 도착하기 위한 다리를 건너는 중이다.

동명대학교 본관 801호 강의실, 수업하는 교실이다. 28명. 각자의 직업과 나이와 성별이 다르다. 27세부터 63세까지 있는 교실. 오늘 나는 태국, 베트남, 중국 학생들 앞에서 모의수업을 해야 한다. 이제껏 수업한 걸 실습하는 날이다. 기초한글(서울대학교 편찬) <사랑하는 나의 한국어 교재>로 모의수업을 준비했다.

수업지도안을 교수님께 주고 학생들에게도 나눠줬다. 준비해 놓은 커다란 전지 크기의 교안을 화이트보드에 마스킹테이프를 뜯어서 붙였다. 비장의 무기로 보드마카를 전지 위에 필기하면서 멀리서도 잘 보이게끔 준비했다. 전 시간 선생님의 시연을 보다가 문득 생각해 낸 보드마카.

펜으로 설명하니 학생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보드마카 열연으로 학생들에게는 인상 깊은 한 장면 정도는 시사했다. 공연장에서의 예절을 가르칠 때는 "공연장 안에서는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아요. 과자를 먹지 않아요"를 열심히 설명하고, 학생의 반응도 살폈다.

'핑핑'이라는 이름을 가진 태국에서 온 여학생은 대답도 잘하고 우리말도 아주 많이 잘했다. 중국에서 온 '니웨이'는 자주 지각하는 학생이었는데 다행히 오늘은 제시간에 와주어 고맙다. 공공장소에서의 예절편을 가르쳤지만 부연 설명으로 하지 말아야 하는 일과 조금은 용인되는 사항도 알려주었다.

외국에서 산 경험이 있던 터라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일이 힘들다는 걸 익히 알고 있다. 아들이 유학생으로 타국에 있기에 한국으로 유학 와 있는 학생이 더 마음으로 다가온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습득하고 배운다는 건 분명 멋지고 풍요로운 일이다.

하지만 쉽고 가볍지만은 않기에 노력하고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이 맞다. 잘 가르치고 싶다. 더군다나 많이 벼르고 있던 일이 아닌가!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도 모르게 끝이 났다. 뒤로도 여러 선생님의 모의수업이 있었고 마침 6명 우리 조의 모의수업이 다 끝이 났다.

"10분 휴식 시간 가질게요. 선생님들 수업 시연 평가할 겁니다." 교수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리고 심각한 분위기가 잠시 흘렀다.

많이 부족하면 졸업하기 힘들다. 긴장되면서도 설레는 건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다. 누군가의 평가를 받는다는 건 긴장도 되지만 설레기도 하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한 공부의 대미(大尾)를 장식한 뿌듯함이랄까? 묘한 기분을 느끼며 짐을 주섬주섬 쌌다.

맨 앞 책상 위에 여느 날처럼 '주차권 가져가세요' 메모가 놓여 있다. 다 끝이 났다. 이 공부가 힘이 든 건지 체력이 많이 달리는 것인지는 모른다. 어찌 되었든 간에 끝이 나고 통과했고, 거기에서 오는 성취감을 맛보는 중이다.

다문화 공부를 했고, 사회에도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그즈음 TV에서 아프가니스탄 난민 소식을 들었다. 울산 동구에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거주지가 정해졌다. 유치원이나 초·중·고등학교에 학생들이 17곳에 있다고 하니 한국어 강사도 많이 필요하다. 이 소식을 듣고 한국어교원 공부를 결심했다.

잠시나마 경험했던 외국생활이 다문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느껴져 어려웠지만 노력했던 시간들이다. 한국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그들을 잘 가르쳐서 한국의 재원으로 키워보고 싶다. 적어도 한국어는 제대로 알고 잘 할 줄 아는 청소년으로 성장하게 해야겠다.

"엄마는 조선시대에서 살다 온 개방적 여자 같아요." 아들이 주문처럼 외는 말. 처음 들었을 때 대치되는 단어로 조합된 말 때문에 웃었다. 무엇을 배우고, 해보게 하는 것도 개방이나 개혁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실제 나의 선택은 보수적인 게 맞다. 오늘 광안대교를 통과해 학교에 도착한 것과 한국어 교원 과정을 통과한 것이 대비된다.

인생은 무언가를 '통과'하는 과정이란 생각이 든다. 통과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문부터 열고 발을 내디뎌야 한다. 그래야 다리를 건널 수 있다. 그래야 새로운 세계와 만날 수 있다. 오늘 난 새로운 '통과'를 했고, 이러한 통과가 내 인생을 멋지게 만든다. 나처럼 다문화 학생들도 이런 '통과'를 거쳐 우리나라에서 멋진 인생을 살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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