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간 3000명 난민 몰려들자…伊정부, 전국 비상사태 선포
이탈리아 정부가 최근 지중해를 통해 자국으로 넘어오는 아프리카 난민이 급증하자 11일(현지시간)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탈리아 국영 안사(ANSA)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극우 성향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 정부는 내각회의에서 넬로 무수메치 시민보호 및 해양부 장관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렇게 결정했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비상사태는 앞으로 6개월간 유지되며, 정부는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재정 500만 유로(약 72억 원)를 우선 투입하기로 했다. 또 난민 문제 대응을 총괄할 컨트롤타워를 설치하고 특별 위원장도 임명하기로 했다.
로이터통신은 "비상사태가 선포됨에 따라 이탈리아 정부는 체류 허가를 받지 못한 불법 난민을 더욱 빨리 본국으로 송환하는 등, 난민 추방 명령이 강화될 것"이라는 당국자의 발언을 인용 보도했다. 무수메치 장관은 "한가지 확실한 건, 이런 조치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서 "유럽연합(EU)의 신중하고 책임감 있는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비상사태 선포는, 올해 들어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에 상륙한 난민이 급증한데 따른 조치다. 이탈리아 내무부 통계에 따르면 올 1~3월 군함이나 자선 선박이 아닌 불법 보트를 타고 이탈리아에 도착한 난민 수는 약 3만1300명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7900명)의 4배에 가까운 규모다.
특히 지난 사흘 동안에만 3000명 이상의 난민이 몰려들었다고 안사는 전했다. 지중해 시칠리아 해협에 있는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섬엔 지난 9일 하루에만 약 1000명이 상륙했다. 현재 이 섬의 이주민 센터 내 총 체류자 수는 수용 가능 인원인 350~400명을 훌쩍 넘긴 약 3000명에 달한다.
람페두사섬 이주민 센터 소장은 현지 매체와 인터뷰에서 "어린 자녀를 둔 여성들이 많고, 보호자 없는 미성년자도 있다"며 "우리는 긴급 상황에 처해 있다"고 호소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올해 이탈리아에 도착한 난민 가운데 58%는 튀니지에서 들어왔다. 지난해엔 31%였다가 큰 폭으로 늘었다.
외신은 "튀니지 정부가 사하라 이남에서 들어오는 이주민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혐오 발언을 하는 등 이주민을 적대시하자, 이들이 유럽행을 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 카이스 사이에드 튀니지 대통령이 노골적인 이민자 혐오 발언을 쏟아내면서 불안해진 난민들이 유럽행을 서둘렀다는 것이다.
개선된 날씨도 지중해를 건너려는 난민 수를 늘린 원인으로 지목된다. 올해 초부터 지중해의 기온이 예년보다 높고 바람도 잔잔해 북아프리카 쪽 해안에서 이탈리아로 향하는 배를 타고 건너기 좋은 조건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리비아나 튀니지 등 북아프리카 국가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은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좁고 낡은 불법 보트를 이용해, 지중해를 건너는 과정에서 침몰·조난 당하는 등 인명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 이탈리아 서남부 칼라브리아주 동쪽 해안에서 난민 200여명을 태운 선박이 난파하며 70여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국제이주기구(IOM)는 지난 1~3월에 최소 441명의 난민이 지중해를 건너다 목숨을 잃은 것으로 집계했다. 이는 2017년 이후 가장 많은 분기별 사망 규모다. 지난해 전체 사망자는 1417명이다. 앞으로도 불법 선박을 탄 이주민들의 유럽 행렬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AP통신이 전했다.
한편 지난해 9월 집권한 극우 성향의 멜로니 총리는 당선 전부터 대규모 난민 유입을 막겠다고 공약하는 등 반(反)이민, 반이슬람 정책을 펴고 있다. 집권 후엔 난민 구조선의 입항을 거부하며 프랑스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EU 쪽으로는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한 더욱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을 지속적으로 촉구해왔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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