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학번, 스맨파, ENTJ…22살 차준환 이야기

고봉준 2023. 4. 1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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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스케이팅 스타 차준환을 최근 태릉빙상장에서 만났다. 자신의 스케이트 부츠를 벗 삼아 활짝 웃고 있는 차준환. 장진영 기자

수려한 외모와 유연한 몸놀림, 눈부신 연기까지…. 피겨스케이팅 스타 차준환(22·고려대)의 화려한 외면을 꾸미는 수식어다. 은반 위의 아이돌로 불리는 차준환에겐 이처럼 타고난 스타성이 먼저 따라붙는다. 그러나 조명이 비추지 않는 무대 뒤편의 차준환도 여느 평범한 20대 청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래처럼 캠퍼스 라이프를 꿈꾸기도 하고, 때로는 무언가를 열심히 배워보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차기도 한다. 물론 한국 피겨를 대표하겠다는 포부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다.

지난달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피겨스케이팅선수권을 성공적으로 마친 차준환을 최근 태릉빙상장에서 만났다. 올 시즌 마지막 대회(월드 팀 트로피)를 위해 지현정(51) 코치와 함께 막바지 훈련이 한창이던 차준환은 “사실 세계선수권이 마지막 대회일 줄 알았다. 그런데 월드 팀 트로피 출전권이 생겨 다시 연습을 하게 됐다. 몸은 조금 힘들어도 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무대에서 올 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어 기쁘다”고 미소를 지었다.

차준환은 지난달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피겨 역사 최초로 남자 싱글 메달리스트가 됐다. 301.04점의 우노 쇼마(26·일본) 다음으로 많은 296.03점을 받아 은메달을 차지했다. 종전까지 세계선수권에서 메달을 따낸 한국 선수는 2013년 여자 싱글 우승자인 김연아(33)뿐. 그런데 이번 대회 남녀 싱글에서 차준환과 이해인(17)이 나란히 준우승을 기록하면서 새 역사를 썼다. 차준환은 “올 시즌을 시작하면서 스스로를 향한 의심이 많았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컸는데 이번 세계선수권을 통해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게 됐다”고 했다.

사실 차준환은 올 시즌 100% 만족할 수 있는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고관절 부상과 스케이트 부츠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만반의 준비를 하고 출전한 세계선수권에서 4회전 점프를 세 번 모두 성공해냈다. 차준환은 “대회를 앞두고 스케이트 부츠가 무너져 이를 교체했다. 어려움이 컸지만, 훈련을 통해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올 시즌 내내 실수가 나왔던 프리스케이팅 연기 후반부 3회전 점프를 성공하기 위해 체력 훈련을 중점적으로 한 점이 효과를 봤다”고 했다.

자신의 위상을 재확인한 차준환은 13일 일본 도쿄에서 개막하는 월드 팀 트로피를 통해 올 시즌을 마무리한다. 월드 팀 트로피는 2009년 신설된 단체전으로 6개국 남녀 싱글과 페어, 아이스댄스 경기가 펼쳐진다. 한국은 이번이 첫 번째 출전. 대표팀 주장을 맡은 차준환은 “일반 대회보다는 부담감이 덜할 것 같다. 듣기로는 선수단 응원석도 있다고 하더라. 무대를 마음껏 즐기면서 동료들을 응원할 생각이다. 팬들에게도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웃었다.

차준환은 원래 피겨 선수가 꿈은 아니었다. 스케이트를 처음 신은 초등학교 2학년 전까지는 아역배우로 활동했다. 만약 연예인의 길을 계속 걸었다면 지금쯤 어떤 삶을 살았겠냐고 묻자 “개인적으로 노래는 잘 못해서 배우로만 일하고 있지 않을까. 아마 드라마나 영화를 열심히 찍고 있을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태릉빙상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차준환. 장진영 기자

연예인 대신 ‘꽃미모’ 피겨 유망주의 길을 택한 차준환은 이후 또래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학교보다 빙판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렇게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쳤고, 어느새 22살의 대학생이 됐다. 차준환은 “학창시절 추억이 적어서 너무나 아쉽다. 친구들과 함께 놀아야 할 때 나는 해외에서 훈련을 했다”면서 “그래도 나름대로 그 안에서 많은 것을 경험했다. 내겐 학교보다 스케이트가 일상이었다”고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이어 “불행히도 대학생의 삶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필 신입생이던 2020년, 코로나19가 터졌다. 내가 바로 그 ‘코로나19 학번’이다. 마음속 캠퍼스 라이프 로망이 있었는데 비대면 강의가 많아져 학교를 갈 수 있는 기회조차 사라졌다”고 아쉬워했다.

삶의 형태는 다르더라도, 차준환도 20대 청년처럼 꿈꾸고 고민하고, 열망하고 있었다. 차준환은 “내 MBTI(16가지 성격유형지표)가 ENTJ다. 상상력이 풍부한 계획형 스타일이다. 실제로 평소에도 별의별 생각을 다 한다. 비행기를 타던 도중 난기류가 찾아오면 이 비행기가 어떻게 될지, 내가 어떻게 탈출해야 할지까지 상상한다”고 웃었다. 평생의 고민거리인 스트레스를 놓고는 “스케이트로 얻은 스트레스는 스케이트로 풀어야 한다고 본다. 결국 그 방법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더라.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스케이트를 타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해인(왼쪽)과 차준환. 뉴스1

요새 들어선 배우고 싶은 것도 생겼다. 바로 춤이다. 스트리트댄스를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 차준환은 “아무래도 스케이트는 무용과 비슷하지 않나. 시간이 될 때 스트리트댄스를 배워서 갈라쇼에서 팬들에게 꼭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 차준환의 시선은 2026년 열릴 밀라노-코르티나동계올림픽으로 향한다. 너무 일찍 마음의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한국 빙상계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 크다. 차준환을 어릴 때부터 지켜본 곽민정(29) KBS 해설위원은 “올 시즌 대회가 많아서 (차)준환이가 조금은 힘들어했다. 그러나 이를 참고 묵묵히 훈련한 결과가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나왔다. 주니어 때부터 지금까지 정말 꾸준히 실력이 늘고 있는 친구가 바로 준환이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열린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차준환은 남자 싱글 5위를 기록했다. 연합뉴스

기술적인 칭찬도 덧붙였다. 곽 위원은 “그동안 쇼트에선 4회전 점프 1개를 잘 성공시켰지만, 프리에선 첫 번째 다음의 두 번째 4회전 점프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 세계선수권에선 이를 너무나도 완벽하게 소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제는 4회전-3회전 콤비네이션 점프인데 연습에선 이를 잘 성공시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언제쯤 대회에서 이를 보여주느냐가 관건이다. 일단 빙상계에서 올림픽 버금가는 대회로 평가하는 세계선수권에서 메달을 따낸 만큼 3년 뒤 올림픽에선 한국 남자 피겨 최초의 메달리스트 탄생을 충분히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

한국 피겨 역사는 김연아 전과 후로 나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 남자 피겨 역사는 차준환을 통해 새로 쓰일 가능성이 크다. 차준환에게 김연아의 존재감을 물었다. 차준환은 “한국은 물론 모든 나라의 선수들에게 대단한 존재다. 우리에게 길을 열어준 전설이다”고 답했다. 김연아보다 11살 어린 차준환도 이번 세계선수권을 통해 한국 피겨 유망주들에게 희망을 선물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차준환은 “내가 아직 그런 존재가 됐는지는 모르겠다”면서도 “후배들에겐 ‘자기 자신을 믿으라’고 말하고 싶다. 나를 믿고 공격적으로 스케이트를 탄다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고 생각한다”면서 자신을 보고 성장할 ‘제2의 차준환’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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