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보정담]김승호 회장이 쉼 없이 움직인 '기억의 길'

지연진 2023. 4. 12.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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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창업주 김승호 명예회장 인터뷰
올해 91세, 국내 제약업계 최장수
"매일 출근이 건강 비결"…근면·성실 삶

편집자주 - '만보정담(萬步情談)'은 ‘하루만보 하루천자’ 운동의 하나로, 걷기를 사랑하는 명사와 함께 하는 코너입니다. 일과 삶, 건강과 행복 등을 주제로 함께 걸으면서 하는 인터뷰입니다.

"사람도 동물의 일종이잖아요. 동물을 한자로 풀이하면 '움직이는(動) 물체(物)'입니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이 숙명인 존재인 것이죠. 많이 움직이면서 살아온 것, 그것이 장수 비결입니다."

김승호 보령(옛 보령제약) 명예회장(91)이 꼽은 건강관리 방법은 간단했다. 아흔을 넘긴 지금도 거의 매일 출근해 업무를 보고, 활동량을 늘리기 위해 출근할 때 회사에서 10여분 정도 떨어진 교회에서 내려서 걷는다. 집무실에는 트레드밀(러닝머신)을 놓고 부족한 걸음수를 채울 때도 있다.

보령 비서실 출신 모임인 '보령비서실 골프회'가 분기마다 개최하는 라운딩에도 가급적 참석하려고 노력한다. 김 회장은 3번의 홀인원 기록을 가진 수준급 골퍼다. 제약업계를 비롯한 각종 모임도 여전히 활발하게 참석하고 있다. 그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열심히 일해야 건강하게 오래 산다"고 단언했다.

김 회장은 1957년 종로5가에서 보령약국을 연 것을 시작으로, 국산 신약을 개발해 국내에서 첫 수출에 성공하는 등 글로벌 제약회사로 일궈낸 인물이다. '용각산'부터 '겔포스'에 이어 해외 첫 발매된 고혈압 신약 '카나브'까지 매사에 부지런히 움직인 김 회장의 성실함이 녹아 있다. 나이가 들면서 일상생활에서 몸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할 때가 많아졌지만, 여전히 맑은 정신과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보령그룹 본사에서 만난 김 회장은 자신이 한 세기(100년) 가까이 쉼 없이 움직인 '기억의 길'을 소개했다.

전직 사우 초청 행사인 '홈커밍데이'에서 건강 비결에 대해서 OB 사우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김승호 회장

왕복 30리, 건강의 토대가 된 등·하굣길

"매일 아침 두 시간 동안 걸어서 학교에 갔어요. 학교를 마치면 두 시간을 다시 걸어야 했죠. 산길이라 험하고 항상 배도 고파서 어떨 때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김 회장이 인상 깊게 기억하는 길은 어린 시절 집에서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까지 걸었던 산길이다.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아버지가 양조장 사업에 실패하며 집안 살림이 급격히 어려워져 학교에서 6㎞ 떨어진 이웃 마을로 이사를 했다. 왕복 12㎞의 등하굣길은 어린아이가 오가는 데 멀기도 했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에서 배부르게 먹을 수 없었던 탓에 항상 배가 고팠다고 했다.

하지만 한참이 걸리던 그 길에서 어느 순간부터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김 회장은 "산길을 오르다 큰 나무를 만나고, 그 나무를 돌면 내리막이 시작된다. 내리막을 지나 평평한 신작로가 나오면 마침내 등굣길이 끝났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걸었다"면서 "겨울날 집에 오는 길, 언덕을 빨리 올라야 이른해가 지기 전 집에 도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머리에 새기고 걸음을 재촉했는데, 이런 풍경 때문에 왕복 30리를 다니는 동안 덜 지쳤다"고 소개했다. 그는 "생각해보면 어릴 때 매일 왕복 30리를 걸어 다닌 덕분에 지금까지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강조했다.

김승호 보령 명예회장이 서울 종로구 원남동 사옥 집무실 옆 발코니에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6·25 전쟁 당시 피난길과 학도병으로 입대하던 길도 잊을 수 없다. 6·25 전쟁이 발발해 북한 인민군이 남하하면서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김 회장은 고향인 보령까지 걸어서 피난을 갔다. 신발이 닳고 발가락이 갈라지도록 걷고 또 걸었다. 이후 국군의 서울 수복 이후 다시 서울의 학교로 복귀했지만, 학도병에 징집돼 전방에 보내질 위기에 직면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훈련병들을 교육하는 조교로 전환된 데 이어 장교로 발탁됐다. 김 회장은 "곧 닥칠 죽음 앞에서 믿을 것은 사격 솜씨뿐이라는 생각으로 사격에 전념했고, 누구보다 빨리 뛰고 부지런히 움직였다"며 "그런 저를 눈여겨보던 선임하사가 다른 병사들 훈련시키는 일을 맡기는 것이 군에 더 이익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종로5가 보령약국, 손님을 향한 자전거길

김 회장은 자신의 고향인 '보령'의 이름을 내세워 보령약국을 창업한 뒤 자전거를 타고 서울 시내 곳곳을 다녔다. 약을 배달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약을 구하러 가는 길이었다. 당시 김 회장은 '고객이 헛걸음하지 않도록 약품의 구색을 갖추는 것'이 약국의 목표였다고 한다. 그는 "큰 약국을 다니며 다시 약을 구해오고, 다시 우리 약국을 찾아온 손님에게 그 약을 전달하는 일이 제게는 큰 의무이자 숙제였다"며 "온몸에 땀이 날 때까지 자전거를 타고 배달을 했다"고 회고했다.

김 회장이 없는 약도 어렵게 구해 자전거를 타고 약을 배달하는 모습은 손님들에게 신뢰를 주는 계기가 됐다. 그가 보령약국을 연 뒤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자 종로5가는 약국 거리가 됐다. 보령약국 앞에는 자전거로 약을 배달하는 전문 배달꾼인 이른바 '자전거 부대'까지 생겼다. 김 회장은 "원하는 약은 반드시 구하는 약국에서, 없는 약도 어떻게든 구해주는 약국이 되면서 그런 믿음을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 어떤 약국보다 먼저 문을 열고 늦게 문을 닫았다"고 전했다.

종로5가 보령약국은 작고한 아내와의 소중한 추억도 깃들었다. 당시 김 회장에게 가장 큰 낙은 아내가 정성껏 준비한 점심 도시락과 갓 태어난 딸이었다. 김 회장은 "점심때가 되면 아내가 아이를 업고 밥과 찬을 머리에 이고 왔다"며 "엄마 품에 안긴 귀여운 아이를 쳐다보면서 입 안에 넣는 그 점심만큼 맛있는 밥을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남극탐험에 나선 김승호 회장

생애 첫 하늘길부터 멕시코시티로 가던 길

"하늘에서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내려다봤을 때를 생생히 기억합니다."

김 회장이 보령약국 창업 10년 만에 약을 직접 만드는 제약회사를 설립하고 일본 출장길에 나선 길이었다. 당시 국내 제약사들은 원료를 수입해 정부가 준 레시피대로 약을 만들어 공급해왔는데, 김 회장은 1966년 12월 직접 의약품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 타는 비행기인데다, 처음 외국으로 가는 길이라 더 설레고 떨렸다"고 했다.

보령제약이 당시 들여온 일본 생약제제는 용각산으로, 보령제약의 이름을 전국적으로 알리는 의약품이 됐다. 이로부터 47년이 지난 2014년 7월 김 회장은 멕시코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보령에서 개발한 15번째 국산신약 카나브의 멕시코 공식 발매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카나브는 보령제약이 18년간 500억원가량을 투자해 개발한 국산 고혈압 신약이다. 토종신약 가운데 처음으로 해외 진출에 성공했으며, 현재 멕시코 비롯한 콜롬비아와 파나마 등 중남미 13개국에 완제품을 수출하고 러시아와 중국, 유럽 진출도 준비 중이다. 보령약국에서 만들어진 약을 팔던 김 회장이 직접 신약을 개발해 해외에서 국산약의 약효를 알린 것이다.

역경도 있었다. 보령제약 창업부터 신약 개발에 나섰던 김 회장은 수십년간 연구개발(R&D) 비용을 쏟아붓고도 신약 개발의 성과가 저조한 탓에 이사회와 주주들의 압박에 직면했다. 하지만 그는 신약 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 김 회장은 "수십년간 인내하는 힘,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령제약은 국민 신약이라는 수식어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 신약을 만드는 날까지 개척의 정신을 이어갈 것"이라며 "우리가 걸어온 길이 앞으로 새 길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 회장은 특히 "구성원이 행복한 기업, 가치 창출을 통해 함께 성장하는 기업, 최대보다는 최고가 되는 기업, 그리고 인류 건강에 기여하겠다는 정신을 잊어선 안 될 것"이라고 전했다.

지연진 정치부장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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