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그 이름' 기억한 기자... KBS 정순신 학폭 단독 보도 전말
[민주언론시민연합]
▲ 지난 2월 24일 KBS가 정순신 아들 학폭 사건을 단독 보도했다. |
ⓒ KBS |
지난 2월 24일 경찰청 제2대 국가수사본부장이자 윤석열 정부에서 처음 임명되는 국가수사본부장에 검사 출신 정순신 변호사가 임명됐다.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자리에 검사 출신이 앉게 되면서 경찰 수사의 독립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또다시 '친분'이 인사에 영향을 준 게 아니냐는 의심도 샀다.
그런데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은 임명 하루만인 다음날 전격 사퇴했다. 결정타는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 탓이었다.
KBS는 임명 당일 저녁종합뉴스 <뉴스9>에서 정 본부장의 아들이 고등학교 시절 학교폭력으로 전학 조치됐고, 그 사이 정군 측은 가능한 모든 법적 대응을 동원해 전학 조치를 피하려 해 피해자가 여전히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단독보도했다. 정 본부장은 출입기자단에 보낸 입장문에서 "아들 문제로 송구하다", "두고두고 반성하고 살겠다"고 밝혔다.
KBS는 어떻게 '정순신 아들 학폭 논란'을 빠르게 보도할 수 있었을까. 그 배경은 5년 전인 2018년 11월,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을 단독보도한 때로 올라간다. 당시 KBS는 학교폭력 가해자 측의 무리한 대응을 지적했는데, 당시 실명으로 언급되진 않았지만 가해자가 바로 정순신 변호사 아들이었다고 한다. 이번 보도에서는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건임에도 정 본부장 인사검증 과정에서 이런 점이 전혀 걸러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5년 전 단독보도와 이번 단독보도가 만나 충실한 공직자 도덕성 검증으로 이어진 것이다.
해당 보도는 2023년 3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수상했다. 한국기자협회 제390회 이달의 기자상, 한국방송기자연합회 제173회 이달의 방송기자상도 받았다. 이번 보도를 취재한 KBS 최유경·이도윤 기자를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 시상식이 열린 3월 31일 오후 만나 취재기를 들었다.
▲ KBS ‘정순신 변호사 자녀 학교폭력 소송전 연속보도’를 한 이도윤(왼쪽) 최유경(오른쪽) 기자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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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경 : "2018년엔 다른 선배 기자가 취재했다. 당시 보도에선 가해학생 아버지 실명을 쓰지 않았지만 그가 정순신 변호사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번에 함께 취재한 최형원 선배가, 2018년 다른 선배의 취재를 옆에서 도우며 사건 당사자가 정순신 변호사라는 걸 기억해두고 있었는데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되자 '어딘가 익숙한 이름인데?'라며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번 보도는 2018년 보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땐 소송이 진행 중일 때 썼던 기사였으니까, 이번엔 그 후 어떻게 됐는지 학교 측을 취재해 바로 보도했다."
- 두 보도의 차이를 설명한다면.
이도윤 : "2018년엔 학교폭력 사건 자체에 집중했다.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이 있던 민족사관고등학교는 유명한 학교 아닌가. 그런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인 데다 가해학생의 소송전이 계속되다 보니 더욱 문제라는 인식이 있었다. 올해는 정순신 변호사가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걸 계기로 보도했기 때문에 인사검증 문제도 함께 다뤘다. 추가취재를 하면서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 대응에 정순신 변호사가 많이 개입했다는 사실, 아들이 반포고로 전학 갔다가 서울대에 진학하게 됐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 정순신 변호사의 낙마를 예상했나.
이도윤 : "아니다. 최유경 선배가 단독보도를 하면서 본격적인 보도가 시작됐는데 우리는 계속 취재를 이어가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할 새가 없었다. 주말에 출근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데 동료가 휴대전화를 보여주면서 낙마 소식을 알려줬다."
최유경 : "이전 사례를 봐도 다들 쉽게 낙마하지 않더라. 예상하진 못했지만, 되돌아보면 중요한 건 여론이라고 본다. 마침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크게 인기를 끌었고,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 있던 상황이었다. 국가수사본부장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을 바라보는 여론이 싸늘했고, 검사였던 아버지 정순신의 특권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크게 일었다. 이걸 견디지 못해 사퇴한 게 아닐까 싶다."
"'피해자 탓' 하던 가해자... '심각한 학폭' 명확히 지적한 당시 교사, 인상 깊었다"
-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 결정 이후에도 가해학생 측은 교육청에 재심을 청구하고 가처분 신청 및 행정소송 등 법률 전문성을 동원해 갖은 절차를 밟으며 전학 처분을 미뤘다. 정순신 변호사와 아들은 왜 이렇게 길고 긴 대응을 했을까?
최유경 : "생활기록부에 징계기록을 남기지 않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소송을 한다는 건 반성하는 사람의 태도는 아니지 않나. 대학 입시를 위해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던 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판결문을 보면 '민사고가 특수성이 있다 보니 이 학교에서의 전학은 사실상 퇴학 처분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하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전학 처분에 더 반발했던 것 같다. 정순신 변호사가 학폭위에서 '언어폭력이기 때문에 맥락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했는데, 언어폭력은 그렇게까지 과중한 폭력이 아니라는 인식도 있던 듯하다."
이도윤 : "가해자는 소송 걸어버리고 변호사 쓰면 그만이다. 그러나 피해자는 소송과정에서 결과가 뒤집히진 않을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하더라. 피해자 입장에서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 취재과정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었다면?
최유경 : "정순신 변호사 아들이 반포고로 강제전학을 한 후 고3 담임과 상담한 기록을 보면, 학교폭력 사건의 원인을 피해자한테 돌리는 대목이 나온다. '피해자가 내 방에 자꾸 찾아와서 방해했다. 그래서 남자들끼리 하는 비속어를 썼던 게 싸움의 발단이 됐다'라는 식이다. 강제전학 처분 이후에도 전혀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여러 군데서 확인된다."
- 학교폭력 책임교사가 제대로 사건을 처리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던 사실도 놀라웠다.
최유경 : "학교폭력 사건이 접수되면 책임교사가 사실을 조사하고 결과보고 등을 한다. 책임교사가 조사한 내용에 보면 정순신 변호사 배우자, 즉 가해학생 어머니가 조목조목 반박한다. 그런데 해당 교사가 수그러들지 않고 원래 판단했던 대로 학교폭력이라고 딱 결론 내린다. 이후 소송과정에서도 정순신 변호사 측에서 '한 명의 경험 적은 교사가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고 주장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럼에도 해당 교사는 소신대로 '굉장히 심각한 학교폭력'이라고 판단하더라. 인상 깊었다."
이도윤 : "같은 교사였던 것 같은데, 이 분이 학폭위에서 가해학생의 진술서 얘기를 꺼낸다. 가해학생이 앞선 반성문에서는 반성하는 기미가 없는 내용을 제출했다가 마지막에 약간 반성하는 투가 들어갔나 보더라. 교사가 '(가해학생이) 1, 2차 진술서에서는 아버지 정순신 변호사가 시키는 대로 써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내용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학폭위 회의가 기록으로 남는다는 걸 아니까, 아예 기록에 남기려는 듯 명확하게 말씀하더라. 학교와 교사들은 그래도 학교폭력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인지했다고 본다."
▲ 지난 2월 24일 KBS가 정순신 아들 학폭 사건을 단독 보도했다. |
ⓒ kbs |
최유경 : "우리도 이런 점을 계속 지적했는데, 윤석열 정권에서 검사가 정부 부처 어디든 곳곳에 많이 기용됐고, 이번 인사검증 대상도 검사였기 때문에 검증의 칼이 무뎠던 게 아니냐는 의심을 누구나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법무부 장관, 정순신 변호사는 같은 검찰청에서 일했고, 그 시기가 겹치기 때문에 더욱 그런 듯하다(KBS가 최초 보도한 2018년 11월 당시, 정순신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이었고 한동훈 장관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
인사 검증을 거치는 곳이 크게 경찰청,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대통령실 세 군데인데 서로 모르겠다고 한다. 경찰청은 '우리는 사실상 별로 관여한 게 없고 법무부가 알아서 한 거야', 법무부는 '별로 관여한 게 없고 결국 대통령실에서 한 거야', 대통령실은 '우리가 검증한 건 아니야'라고 한다. 모두 책임 회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결국은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구나 싶다. 그게 검사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 대통령실에서는 '5년 전 KBS 보도가 익명 보도여서 몰랐다'고 해명하던데.
최유경 : "'가해학생 아버지가 고위직 검사'라고 언론에 보도됐으면, 검찰에서 누군지 파악했을 것이다. 물론 아니라고는 하더라. 정순신 변호사도 국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검사 직무와 관련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검찰청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했다. 검찰 조직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아닌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통상적으로는 당연히 파악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이를 인사검증 과정에서 걸러내지 못한 것은 안이한 부분이 있었다고 본다."
- 과거 당시에 정순신 변호사의 실명을 보도했다면 달라졌을까.
최유경 : "그때 익명으로 보도한 이유는 보도윤리에 비춰봤을 때 실명을 밝힐 상당성이 부족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순신 변호사가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이긴 했지만, 학교폭력 사건 자체에 집중된 보도였고, 고위직 검사이긴 하지만 그 사람의 실명을 반드시 거론해야 할 만큼 유명 인사도 아니었다. 이번에 실명으로 보도한 것은, 그가 인사검증 대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 후속보도 계획은 어떻게 되나.
최유경 : "지금 정치부에 있는데 국회에서 정순신 변호사 자녀 학교폭력 문제를 계속 다루고 있어 자연스럽게 후속취재를 하게 됐다. 교육부에서 학교폭력 대책 방안을 3월 말 내기로 했는데 미뤄졌다고 하더라. 의미 있는 대책이 나오는지 취재할 계획이다(교육부는 12일 오후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도윤 : "학교폭력과 관련해 교사와 학교 측이 점점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가고 있다. 변호사들을 만나보니 학교폭력 처분이 소송전으로 흐르는 게 큰 문제라고 하더라. 아직 판결이 나오지 않은 특정 사건이 있는데, 학교폭력 소송전이 얼마나 심각한지 얘기해줄 수 있을 듯해 더 취재해볼 생각이다."
최유경 : "대학 입시에서 생활기록부가 중요해지면서 학교폭력 소송이 많이 늘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처벌 사실을 남기지 않아야 하니 관련 소송이 늘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에 나왔던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에 따르면 학교폭력 소송이 느는 추세고, 행정법원에도 학교폭력 전담 재판부가 최근 생겼다고 하더라. 근본적으로 생활기록부를 대입에 어떻게 반영할 것이냐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대입에 더 많이 반영해야 한다는 여론도 많은 걸로 아는데, 그러면 오히려 소송만 더 늘어나는 것은 아닐까, 2차 가해가 더 심해지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균형점이 어디인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다."
- 앞으로 나올 보도가 기대된다.
최유경 : "똑같은 사례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제도 개선이 중요하다. 제도를 변화시킬 수 있게 KBS도 계속 열심히 후속보도를 해나가도록 하겠다."
▲ KBS ‘정순신 변호사 자녀 학교폭력 소송전 연속보도’가 2023년 3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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