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前국정원 간부 "文국정원, 간첩 보고하면 돌연 휴가 갔다"

강찬호, 김하나, 김은지, 김한솔 2023. 4. 1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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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덕 전 국정원 대공수사단장 공개폭로
"수사 보고 받은 간부, 휴가 가 결제 안해 "
"북 공작원 만난 사실 빼고 올리라 요구도"
"수사원들 물먹이고 남북교류요원들만 승진"
전옥현 전 차장"노골적인 간첩 수사 방해"
"간부가 이런 일 못해, 윗선 지시 있었을 것"
오후5시 '강찬호의 투머치토커' 상세보도

문재인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 간부들이 휴가를 이유로 보고서 결재를 피하거나 결정적 증거를 적시한 대목은 삭제를 지시해 간첩 수사를 막았다고 전직 국정원 고위 간부가 공개 주장했다. 또 간첩수사 실적이 뛰어난 요원들은 좌천하고, 남북교류 임무 요원들만 승진시켰다고도 했다.

국가정보원 전경.

대공수사단장 등을 지낸 전직 국정원 고위 간부인 황윤덕 통합전략연구원장은 최근 '미래 한국' 주최 좌담회에서 "문재인 정권 동안 국정원에선 (수사 요원들이) 간첩 수사 착수 보고서를 올리면 간부가 휴가를 가 결재를 안 해 줬다. 또 (혐의가) 명백한 간첩 수사 보고서를 올리면 가장 중요한 부분인 북한 공작원과 만나 회합한 부분은 다 빼라고 했다"고 밝혔다.
황 원장은 "당시 국정원은 (간첩 수사) 길목을 지키는 대공 정보 자료 분석 임무를 '남북교류 지원 협력'으로 바꿨고, 간첩 잘 잡는 요원들은 먼지떨이(좌천)를 했지만, 남북교류 협력 임무를 맡은 이들만 승진시켰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국정원 간부는 "간부가 휴가를 핑계로 간첩 수사 결재를 피했다는 소문만으로도 대공 수사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게 당시 국정원 현실"이라며 "또 '북한 공작원과 회합한 사실을 보고서에서 빼라'고 한 것은 빼지 않으면 수사를 진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상황을 피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시절 반정부 단체나 민주노총 인사들이 캄보디아, 베트남, 중국 등에서 북한 공작원들을 만나 지령을 받고 실행한 혐의로 최근 검거된 사건들이 당시 국정원의 수사 기피 대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며 "결재가 안 돼 수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가 윤석열 정부 출범 뒤 검거된 경우들일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 1차장을 지낸 전옥현 전 차장도 "황윤덕 원장은 국정원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대공수사 전문가라 그의 말은 사실일 공산이 크다"고 했다. 이어 "간첩 수사 보고서는 대개 4, 5 급 요원들이 작성하고 국장급인 3급 간부가 결재하는데, 이 간부가 스스로 휴가를 핑계로 국정원의 최우선 업무인 간첩 수사 보고서 결재를 피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고 '윗선'의 지시나 압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전 전 차장은 12일 중앙일보 유튜브 '강찬호의 투머치토커'에서 이같이 밝히고 "국정원이 내부 감찰을 통해 간첩 수사 방해 책임자들을 밝혀내 법적 조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전 전 차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김승규 국정원장은 간첩 수사를 하면 본인이 경질될 가능성을 알면서도 대공 요원들에게 수사를 독려해 일심회 간첩단을 검거하는 개가를 올렸지만, 그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그만두라'는 요구를 받고 국정원을 떠났다"고 회고했다. 일문일답

-황윤덕 원장의 주장이 사실일까
"황 원장은 내 밑에서 근무한 적도 있어 잘 아는데 그의 수사 실력과 신뢰도는 상당히 높았다.나도 아끼는 후배다. 따라서 그의 말은 신빙성이 있다. 국정원의 제일 큰 존재 의의는 간첩 잡으라는 것인데 간부가 휴가를 핑계로 간첩 수사 보고서 결재를 미룬 것은 수사 방해에 해당한다. 큰 범죄다. 국정원에서 30년 재직했는데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결재를 미루도록 지시한 윗선을 찾아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국가 안보를 무너뜨리는 행위를 막을 수 있다"

-휴가 간다고 결재를 피한 책임자는 어느 급 인사인가
"간첩 수사 실무는 대개 4~5급 수사관들이 한다. 이들이 수사 보고서를 올리면 일반 공무원 1급(국장)에 해당하는 3급 간부가 대개 결제한다. 더 올라간다면 2급 간부까지도 가능할 것이다."

-"북한 공작원과 회합한 사실은 빼라"는 지시도 있었다는데
"문재인 정권의 특징이 공문서에서 '불리한 사실'을 삭제하는 것이다. 이른바 '월북 해수부 공무원' 사건이나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 때 '불리한 내용은 삭제하라'는 지시가 내려왔고, 월성 원전 조기 폐쇄 의혹 사건도 산업부 공무원이 관련 문건 444건을 삭제해버렸지 않나.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최근 검거된 민노총 간첩 사건은 문재인 정부 시절 동남아에서 북한 공작원을 접촉한 것이 실마리가 된 사건이다. 황 원장이 언급한 사건이 이것 아닐까
"노무현 정권 이후 10년 만에 북한에 우호적인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잠잠하던 북한이 대놓고 간첩 사업에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공작망을 국내에서 외국으로 이동하는 등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해외에 나가 있는 국정원 직원들이 먹고 놀겠나. 북한이 공작 거점으로 선호하는 캄보디아, 베트남 등지에서 북한 공작원 동향을 포착해 전문으로 연일 보고하니 서울의 국정원 본부에서도 그 내용을 보고서로 작성해 결재를 요청한 것이다. 그런데 간부들이 휴가를 이유로 결재를 피해 이런 소중한 수사 성과를 사장 시켰다. 그런 지시를 내린 윗선이 누구인지 반드시 찾아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당신이 국정원에 재직하던 시절에는 어땠나
"노무현 정권 때 임명된 김승규 국정원장의 비서실장을 내가 했다. 그가 부임하자마자 내게 '요즘 국정원이 간첩을 못 잡습니까? 안 잡습니까?' 묻더라. 나는 '안 잡다 보니 이제는 못 잡는 것 같다' 고 답했다. 김 원장이 '잡으면 어떻게 되는가' 고 묻길래 "그러면 국정원 대공수사국장이 잘릴 것'이라고 답하니 김 원장은 웃으면서 '간첩 잡으면 원장인 나도 잘리겠네' 고 하더라. 내가 '그건 노무현 대통령 마음이죠'라고 하니까 김 원장은 '그래도 간첩은 잡아야지'라고 하더니 대공 수사관들을 만나 '걱정 말고 간첩을 잡아라. 내가 책임지겠다'고 격려하더라. 그 결과 '일심회' 간첩단이 적발됐다. 그러자 노무현 대통령이 김 원장에게 '국정원장 그만 두라'고 해. 김 원장은 물러났다. 간첩 잡은 '죄'로 쫓겨난 것이다. 정권 싫어하는 일 하면 잘릴 것을 알면서도 나라 위해 할 일을 한 김 전 원장 같은 분이 진정한 국정원장 아니겠나"
(이 인터뷰는 오후 5시 '강찬호의 투머치토커'에 상세보도된다)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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