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 부진 심상치 않은 이정후, 걱정 커진 키움
[이준목 기자]
'야구천재'로 불리던 이정후(키움 히어로즈)의 초반 부진이 심상치 않다. 이정후는 지난 4월 11일 잠실 두산전에서도 5타수 무안타(1타점)에 그쳤다. 올 시즌 성적은 7경기에서 29타수 5안타로 타율이 고작 1할대(.172)까지 떨어졌으며 1홈런 2타점 3득점에 OPS는 .560에 불과하다. 이중 무안타 경기만 벌써 4번이나 된다.
소속팀 키움이 최근 5연패에 빠지며 공동 7위(3승 6패)까지 추락한 것도 이정후의 부진이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키움은 개막 직후 지난 5일까지만 해도 3승1패를 기록하며 리그 선두권에 올라 기분 좋게 시즌을 출발하는 듯 했으나 6일 LG전 영봉패(0-5)를 시작으로 주말 NC 다이노스와 창원 원정 3연전에서 1-3선발을 모두 내고도 스윕패를 당하면서 분위기가 크게 가라 앉았다.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타선이었다. 아직 표본이 적기는 하지만 키움은 개막 9경기에서 23득점을 뽑는 데 그치며, 경기당 고작 2.5점의 빈공에 허덕이고 있다. 경기수가 같은 2위 LG(46점)와는 정확히 2배 차이다. 키움은 팀타율 8위(.236), 출루율(.296)과 홈런(2개) 9위 , 타점(21개)와 장타율(.206), OPS(.602) 꼴찌 등 대부분의 타격지표에서 모두 하위권이다.
키움 타선에서 이정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그동안 이정후 타석 앞에 주자가 출루하는 것은 키움의 상대팀에게는 가장 기피하고 싶은 시나리오 1순위였다. 그런데 3번타자를 맡은 이정후의 부진은 올시즌 키움의 득점력을 떨어트리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로 이정후의 한 방이 터졌다면 좀 더 쉽게 경기를 끌고 갈 수 있는 상황이 적지 않았다.
바로 지난 경기에서도 이정후에게는 결정적인 두 번의 찬스가 돌아왔다. 1회 1사 3루 상황에서 타석에 선 이정후는 2루 땅볼로 1타점을 수확한데 만족해야 했다. 경기 중반 역전을 허용한 키움은 9회초 두산 마무리 투수 홍건희를 공략하며 1점을 만회하여 4-6까지 따라붙으며 마지막 희망을 살렸다.
2사 2, 3루의 찬스에서 마지막 타석에 들어선 것은 바로 이정후였다. 안타 단 한 개면 동점이 가능했기에 평소의 컨디션 같으면 상대팀에서 이정후를 부담스러워할 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정후는 우익수 뜬공으로 맥없이 물러나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놀랍게도 올시즌 이정후가 득점권에서 안타로 만들어낸 타점은 아직까지 전무하다.
이정후의 부진을 두고 높아진 기대치로 인한 부담감, 체력과 부상 문제 등 여러 가지 원인이 분석되고 있다. 이정후는 지난 타격 5관왕과 MVP(최우수선수)까지 수상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여기에 2023시즌을 마친 이후로는 포스팅시스템을 통한 메이저리그 진출 도전까지 유력하다. 눈높이가 달라진만큼 이정후에 대한 상대팀의 집중분석과 맞춤형 시프트 가동 등 견제도 더 강해졌다.
여기에 이정후는 올시즌을 앞두고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어 평소보다 컨디션을 일찍 끌어올렸다. 내년 메이저리그 도전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타격폼 수정에 나서기도 했다. 체력적 부담과 낯선 타격폼에 적응 문제 때문인지 허리 통증으로 초반 2경기를 결장한 바 있다. 이로 인하여 이정후는 수비에서도 불안정한 모습을 드러내며 지명타자로 기용되기도 했다.
좀처럼 헛스윙을 하지 않던 이정후가 올시즌 초반에는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높은 코스로 날아오는 빠른 공에 고전하는 모습이 속출하고 있다. 올시즌 이정후의 아웃카운트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게 뜬 공(9개)이었고 대부분 타구의 질도 좋지 않았다는 게 찜찜하다. 아무래도 타격폼 수정으로 인한 혼선이나 허리통증 후유증과 무관하지 않아 보이는 장면이다. 그나마 잘맞은 타구는 상대팀의 수비 시프트에 걸려 무산되는 등 운도 따르지 않았다
물론 전문가들은 이정후의 부진이 아직까지 심각하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반응이다.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는 홍원기 키움 감독은 "이정후의 타격감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단언했다. 또한 이정후의 경기를 중계한 해설위원들도 타격폼 수정같은 기술적 문제라기보다는, 신체 상태 저하에 따른 일시적인 부진에 가깝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MVP 시즌의 이정후에게도 단기적인 슬럼프 구간은 여러 번 존재했고, 시즌 초반의 기록은 언제든 타격감만 회복하면 '몰아치기'로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평가다. 13일까지 3연전중 2경기를 남겨두고 있는 두산은, 빠른 공을 지닌 투수가 많아 이정후의 컨디션 회복을 가늠할 분수령이 될 수 있다.
오히려 근본적인 문제는 이정후의 부담을 덜어주지 못하고 있는 키움 전력에 대한 우려다. 이정후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몇 년째 키움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받고 있다.
키스톤 콤비인 김혜성이 타율 .350, 러셀이 타율 .333에 8타점(2위)으로 분전하고 있으나 다른 선수들의 지원이나 하위타선의 응집력은 전반적으로 저조하다. 특히 최대 약점이 된 장타력은 9경기에서 홈런이 단 2개 뿐인데, 그나마 이중 하나가 부진하다는 이정후의 몫이었다. 또한 공격도 공격이지만 수비는 실책 12개로 최다 1위의 오명을 안고 있다. 올 시즌을 끝으로 해외진출이 유력한 이정후가 떠나기 전에 대권에 도전할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해 보인다.
과연 이정후는 언제쯤 제 컨디션을 되찾고 지난 시즌의 MVP 모드를 재가동할 수 있을까. 팬들의 기대가 모아진다. 분명한 사실은 이정후가 깨어나는 시점에 따라 곧 키움의 반등도 좌우될 것이라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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