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솔향 뿜던 소나무 껍질이 ‘뚝’…쑥대밭된 경포 송림[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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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 자랑 소나무 숲 쑥대밭
12일 오전 강원 강릉시 난곡동 시루봉. 10~15m 높이 소나무가 우거진 이곳은 경포호를 찾는 관광객과 인근 주민이 찾는 명소다. 수령 80년 이상 된 소나무를 배경으로 경포호를 바라볼 수 있다. 걸어서 5분 거리에 강원도지정 유형문화재인 ‘방해정(放海亭)’이 자리 잡고 있다.
이날 찾은 시루봉 등산로 소나무 숲은 폭탄을 맞은 듯 폐허가 돼 있었다. 전날 산불이 초속 30m가 넘는 강풍을 타고 해안가와 가까운 시루봉까지 금세 번지면서 숲이 훼손됐다. 잡목은 다 타서 재가 쌓여있었다. 소나무 대부분이 밑동에서 위쪽으로 절반 이상 검게 그을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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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풍에 쓰러지고, 부러진 나무도
11일 강릉시 난곡동에서 시작한 대형 산불은 주택과 펜션뿐만 아니라 경포 주변 소나무 숲을 초토화했다. 이번 산불로 축구장 면적(0.714㏊) 530배에 이르는 산림 379㏊가 소실됐는데 대부분 소나무 숲이다.
2000년 동해안 대형산불에 앞서 1998년과 2002년 등 경포지역 산불에도 큰 피해 없이 울창함을 자랑해왔던 송림(松林)이 이번 산불로 시커멓게 타 버렸다. 산림 피해 조사에 나선 강릉시 관계자는 “아직 정확한 집계가 되지 않았지만, 경포호 주변 난곡동, 펜션 촌이 있는 저동 인근 소나무 숲 피해가 큰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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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호, 저동 인근 야산 소나무 피해 커
경포대 앞 소나무도 산불을 비껴가지 못했다. 강릉시 직원 등 노력으로 몇 그루를 제외하고 대부분 불에 탔다. 수령 100년이 넘은 아름드리 소나무 10여 그루도 불에 탄 모습이 보였다. 이곳에서 만난 임동한(57)씨는 “소나무 숲이 너무 좋아서 매주 경포대를 한 번씩 찾아 산책했다”며 “소나무를 다 베어버리고 나면 한동안 민둥산이 될 텐데 주민 휴식처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저동펜션촌 일대 소나무 숲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골짜기에 길게 늘어선 펜션 뒤 야산이 불에 타면서 소나무 대부분이 훼손됐다. 일부 소나무는 강풍에 꺾이거나 쓰러져 있었다. 잔불 정리를 위해 물을 뿌리던 강릉소방서 관계자는 “오전에 잔불이 남아있다는 신고를 받고 불을 정리하러 왔다”며 “소나무 숲 바닥에 쌓인 솔방울이나 재가 불쏘시개가 될 우려가 있어서 갈퀴로 긁어내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저동 산기슭에는 은퇴 이후 전원주택에서 생활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 주민은 “소나무 향이 좋아서 산 가까이 집은 지은 사람이 많았는데 이번 산불로 숲이 사라져 동네가 폐허처럼 변했다”며 “죽은 나무를 베어내고, 조림 사업을 하더라도 원래 모습을 찾는데 긴 세월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강릉=최종권·박진호 기자 choi.jong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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