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생산 막겠다" 제재 허탕이었나…러시아로 간 美 반도체 되레 3배 늘어

김현예 2023. 4. 12.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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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제재하겠다며 미국이 반도체 수출 규제에 나섰지만, 실제론 러시아로 유입된 미국산(産) 반도체가 되레 3배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2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후인 지난 2022년 2월부터 12월 사이 러시아의 반도체 수입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미국산 반도체 거래 금액이 최소 7억4000만 달러(약 9800억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인텔 등 미국 반도체 회사 이름이 기재된 러시아와의 반도체 고액 거래는 약 2300여 건으로 집계됐는데, 우크라이나 침공 전(약 2억7000만 달러)에 비해 약 3배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021년 6월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에 반도체 수출 금지, 막았는데 왜


미국은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자 반도체 수출 금지안을 내놨다. 미사일 등 살상 무기에 반도체가 필수적으로 쓰이기 때문에 수출을 차단해 무기 생산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러시아는 ‘우회 수입’으로 대항해 외려 수입액을 늘렸다.

대표적인 유통 경로가 홍콩과 중국 등을 경유한 수입이다. 거래 당 10만 달러를 넘는 러시아와의 거래 기준, 중국 본토를 통한 반도체 거래 건수는 610건(26%)에 달했다. 홍콩을 거친 수입은 더 많았다. 총 1164건으로 전체 러시아 반도체 수입의 49%를 차지했다. 전체 거래에서 홍콩과 중국을 경유해 러시아로 들어간 물량이 75%에 달했다. 무기 생산에 필요한 반도체를 사실상 중국을 통해 조달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미국의 수출 제재는 유명무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0월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습 당시의 키이우 외곽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경유한 러시아 '미국산' 반도체 수입 10배로


중국을 거쳐 러시아가 사들인 미국산 반도체는 우크라이나 침공 전엔 5123만 달러(약 678억원·약 230건)에 그쳤다. 하지만 전쟁을 시작한 이후엔 5억7414만 달러(약 7600억원)로 10배 폭증했다.

닛케이는 우회 수입이 가능했던 이유로 신생 회사 설립 방식을 꼽았다. 지난해 4월 설립된 홍콩의 신생 기업이 같은 해 9월에서 12월 사이 러시아 기업과 맺은 거래는 총 1874건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중 한 기업은 지난해 12월까지 적어도 13회에 걸쳐 미국산 반도체를 러시아로 수출했는데, 이 회사는 러시아인이 설립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미국 대표 반도체 회사인 인텔은 러시아 수출과 관련해 “러시아 고객사에 대한 출하는 모두 정지했으며 수출규제와 제재를 준수하고 있다”면서 “인권침해에 사용되는 것은 용인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직접 수출은 중단했지만 우회 수출이라는 방식으로 전매되고 있는 점에 대해선 미국 반도체 회사들 역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는 “회사 제품이 설계 외 용도로 사용되는 것은 용인하지 않고 있다”면서 “(부정판매 및 전매는) 반도체 업계 전체가 직면한 과제”라는 입장을 내놨다.
닛케이는 미국이 홍콩의 전자부품 회사인 시노일렉트로닉스를 포함해 제재했지만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기업 대부분은 미국의 제재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등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 나섰지만, 신생회사를 통한 우회 수입이나 전매 등을 통한 거래까지 추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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