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몸 사리는데…삼성·현대차, 공격적 투자로 '경제 살리기'
현대차그룹 2030년까지 국내 전기차 분야에 24조원 투자…전기차 산업 생태계 강화
삼성, 반도체에 300조원 투자…비수도권 지역에 60조 투자해 지역균형발전 기여
‘글로벌 경기침체, 고물가, 고금리, 자국우선주의.’
“당장 투자를 멈추라”는 신호가 동시다발적으로 울리는 시기다. 신사업에 돈을 쏟아 붓던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조차 잇달아 투자를 줄이거나 연기하고 대량 해고를 단행하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그마나 투자 여력이 있다면 각종 인센티브와 규제로 투자를 강요하는 거대 시장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 기업들은 한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다. 국내 경제 활성화는 물론, 산업 패러다임 전환 이후에도 우리 경제가 성장 동력을 잃지 않도록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사업보국’ 정신이 ‘현실적 이익’보다 우선시되는 모습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 11일 경기도 화성시 기아 오토랜드(AutoLand) 화성에서 전기차 전용 공장 기공식을 갖고 2030년까지 국내 전기차 분야에 24조원을 투자하겠다는 중장기 투자전략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참석해 국내 미래산업 육성을 위해 민관이 ‘원팀’으로 뛰겠다는 의지를 확인했다.
현대차그룹이 국내에 완성차 제조 공장을 건설하는 것은 1994년 현대차 아산공장 기공 이후 29년 만이다. 시장 자체가 크지 않은 데다, 성장세도 멈춰 일찌감치 포화 상태에 이른 국내에 신규 완성차 공장을 세우는 것은 실익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이번에 투자하는 공장은 세계 최초의 목적기반모빌리티(PBV) 전기차 전용 공장이다. PBV는 현대차그룹이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중추가 될 것으로 지목한 분야다. 미국 정부가 자국에서 조립한 완성차에만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자국 우선주의가 팽배한 상황에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현대차로서는 쉽지 않은 결단이다.
24조원 투자는 자사 연구개발(R&D) 및 제조설비 투자 뿐 아니라 국내 전반적인 전기차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쓰인다. 현대차그룹은 “이번에 발표한 대규모 투자는 국내 전기차 생태계를 고도화하고 글로벌 미래 자동차산업 혁신을 선도하는 허브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국내 전기차 생산-연구개발-인프라-연관산업 등의 선순환을 촉진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의 중장기 전기차 전략을 보면 전동화 시대에도 계속해서 국내 산업 생태계를 책임지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이날 현대차그룹이 밝힌 2030년 연간 글로벌 전기차 생산 목표는 364만대인데, 그 중 절반에 가까운 151만대를 국내에서 생산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국내 상산량의 60% 이상인 92만대를 해외로 수출할 계획이다.
삼성이 올해 잇달아 발표한 대규모 국내 투자계획도 첨단 IT 생산기지 유치를 위한 각국의 쟁탈전이 치열한 상황에서 이뤄진 이례적인 결단으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15일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구축 사업에 20년간 300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경기도 용인에 710만㎡(215만평) 규모의 산업단지를 조성, 세계 최대규모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수립하자 삼성전자가 화답한 것이다.
삼성전자의 300조원 투자를 통해 국내 전체에 직간접 생산유발 700조원, 고용유발 160만명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규모 자체만으로도 대한민국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하는 셈이다.
이를 두고 반도체 업계에서는 “국내적으로는 ‘국가산단 지정’이지만 글로벌 관점에서 보면 대한민국 정부가 대형 반도체 생산기지를 유치하기 위한 승부수를 던진 것”라는 평가가 나왔다.
정부와 삼성전자는 이번 투자를 통해 ‘메모리-파운드리-디자인하우스-팹리스-소부장’ 등 반도체 전 분야 밸류체인과 국내외 우수 인재를 집적한 ‘글로벌 반도체 클러스터’의 선도 모델을 구축할 것을 구상하고 있다.
삼성은 ‘용인 클러스터’를 넘어선 ‘국토 균형 발전’을 위한 투자계획도 내놨다.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반도체 패키징, 첨단 디스플레이, 차세대 배터리 분야까지 비수도권 첨단산업거점을 중심으로 투자를 확대해 향후 10년간 60조원을 투자한다는 내용이다.
그 일환으로 삼성디스플레이는 2026년까지 4조1000억원을 투자해 충남 아산에 세계 최초로 8.6세대 IT용 OLED 생산기지를 구축하겠다고 지난 4일 밝혔다.
삼성의 이번 투자는 약 2조8000억원 규모의 국내 설비 및 건설업체의 매출 증가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약 2만6000명 규모의 고용창출 효과도 기대된다. 충남을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경제 전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경제 도약의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이같은 대기업들의 미래산업 분야 국내 투자는 산업 생태계 강화에 기여할 뿐 아니라 미래산업 입지로서의 대한민국의 매력과 가능성을 전 세계에 환기시켜, 다른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를 이끌어내는 효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가 미래 산업 생태계 구축의 밑그림을 그리고 적극적인 지원 의지를 밝히며 기업들의 투자를 이끌어내는 ‘민관 팀플레이’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일 기아 전기차 전용 공장 기공식에서 “정부는 기업들이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 전환에 발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국내 전기차 시설 투자 등에 대한 세제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투자 촉진에 걸림돌이 되는 사항들도 신속히 해결해 나갈 것”이라며 “현대차그룹이 세계 모빌리티 혁신을 주도할 수 있도록 정부도 원팀으로 뛰겠다”고 약속했다.
4일 삼성디스플레이 투자협약식에서도 윤 대통령은 “정부는 토지이용규제 완화 등을 통한 신속한 산업단지 조성과 기업 유치로 충남의 첨단산업 생태계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들겠다”면서 “삼성디스플레이와 소부장 기업들의 새로운 도약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응원한다”고 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민간 투자에 대한 확실한 지원을 약속한 정부, 어려운 환경이지만 미래에 더 큰 기회를 만들기 위한 ‘투자’를 흔들림 없이 진행하는 우리 기업들의 노력은 한국 경제 전반의 자신감과 국내 투자 의지를 끌어올리는데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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